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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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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25일 23시 36분 등록

나는 내 편한대로 걷고 내 맘에 드는 곳에서 멈춰 서고 싶다.

돌아다니는 삶이 내게 필요한 삶이다.

화창한 날씨에 아름다운 고장에서 서두르지 않고 맨발로 길을 나서서

한참 가다가 마침내 기분 좋은 것을 얻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모든 삶의 방식들 중에서 내 취향에 가장 맞는 것이다.

- 루소 -

 

“누구시죠?”

“출판사인데요. 이벤트 응모하셨죠?”

“혹시 당첨되었나요?”

“네,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한 분은 동행할 수 있습니다.”

 

공지영 작가의 신간을 구입하면서 응모한 이벤트가 당첨되었습니다. ‘공지영 작가와 함께 하는 1박2일 지리산 힐링여행’ 입니다. 중학생인 딸에게 같이 가겠느냐고 묻자, 순순히 ‘좋다’고 해서 의아스러웠습니다. 학교 독서동아리에서 책도 많이 읽고, 글짓기 상도 가끔 받긴 했지만 사춘기와 시험 스트레스 탓인지 신경이 곤두서 있고, 대화를 시도하는 자체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행은 좋았습니다. 남도의 유명한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한옥의 정취가 살아있는 운치있는 숙소에서 짐을 풀었습니다. 3시간 코스로 지리산 노고단에 올라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서른을 맞이하던 시절, 삼년 동안 친구들과 매년 12월 31일에 떠나 새해 일출을 맞이한 곳이 노고단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녁에는 공지영 작가의 [지리산 행복학교]에 나오는 시인들이 대거 술자리에 참석했습니다. 버들치 시인으로 알려진 섬진강 박남준 시인이 멋진 시낭송으로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낙장불입 이원규 시인은 전 재산이라는 오토바이에 달린 성능 좋은 스피커를 떼어 와서, ‘부용산’ 이라는 노래를 안치환의 목소리로 들려주었습니다. 총각이었던 최도사는 이제는 아내와 함께 통영에서 굴을 직접 가져와서 싱싱한 굴과 소주를 맛보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작곡한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 2006년 공지영 작가의 책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를 읽고 만든 노래입니다. 소설은 잘 모르겠는데 공지영 작가의 산문집을 읽다 보면, 편안한 위로를 얻을 때가 있습니다. 그건 늦은 밤, 오뎅탕을 한 그릇 끓여 놓고 친한 벗과 함께 서로 소주를 주고 받으며 얻게 되는 따뜻함 같은 것입니다. ‘내 인생이 왜 이 모양일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괜찮다. 괜찮다’ 하며 토닥 토닥 등 두둘겨주는 듯한... 그런 고마움을 전하고, 직접 그린 악보를 전달해 주었습니다.

 

푸짐한 남도의 반찬과 얼큰한 참게탕도 좋고, 지리산 시인들의 청량한 에너지도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딸과 좋은 추억을 갖게 된 것입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본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추위와 바람으로 힘든 산행을 하며, 아이를 부축해주고, 자연스럽게 둘만의 대화를 나눈 것 또한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창작의 영감을 준 작가에게 직접 노래를 불러줄 수 있었던 것이 기쁨이라면, 딸과 여행하며 아버지와 딸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기회는 행복입니다. 행복은 발견의 영역이 맞는 것 같습니다.

 

수요일과 목요일 1박2일로 지리산을 다녀오고, 금요일부터는 2박3일로 제주도에 다녀왔습니다. 지리산은 갑작스러운 이벤트 당첨으로 갔지만 제주도는 몇 개월 전부터 약속했던 변화경영연구소 동료 연구원들과의 여행입니다. 우리는 1년에 한 번씩 여행을 가기로 했고 올해는 제주도로 정했습니다. 연구원 여행은 ‘기획하지 않는 자유로움’이 특징입니다. ‘제주도에서 놀자’ 라는 큰 틀만 잡고, 세부적인 계획은 그때 그때 자유롭게 선택합니다. 숲길을 걷다가 온천을 가고, 올레 길을 걷다가 요가명상을 합니다. 책을 집필하기 위한 논의를 하다가, 첫 키스의 경험을 나누고, 바닷가에 앉아 노래를 부르다가 춤을 추기도 합니다. 촘촘하게 짜여진 일상을 거부하고 싶은 적당한 수준의 일탈인지도 모릅니다.

 

여행 또한 발견의 영역입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는 그 무엇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먼 곳으로 떠나야 고민하던 일이 더 작아 보이고, 더 많은 부분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시간 속에서 자신을 찾는 것이 발견의 영역을 더 크게 확대할 것입니다.

 

세상은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70년대, 커다란 카세트플레이어를 어깨에 둘러매고 노래를 부르며 엠티를 갔다면, 지금은 손안에 들어가는 스마트폰의 노래를 들으며 제주도의 밤바다를 거닐 뿐입니다. 푸르고 깊었던 제주도의 밤바다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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