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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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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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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0일 12시 12분 등록

그제 있었던 일입니다. 서울에서 약속이 있어서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약속 장소로 가는 길에 아내가 따로 볼 일이 있어서 내게 잠깐의 시간이 생겼습니다. 마침 근처에 중고 서점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기뻤습니다. 중고 서점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니까요. 나는 아내에게 서점에 가서 책 구경하면서 기다리겠다고 말하고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서점 문을 열자 번화한 도시와는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손때 묻은 책으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주어진 시간이 30분도 채 안 되었으니까요. 발걸음이 빨라지고 눈은 커졌습니다. 심호흡을 하고 좋은 책을 찾아 안테나를 높이 세우자 세포가 하나하나 깨어나는 느낌입니다. 스마트폰으로 관심이 있었던 책들을 검색합니다. 값이 비싸 구입을 주저했던 책들과 절판된 책들이 주요 타깃입니다. 스마트폰 화면에 이런 책이 검색되면 누구 보다 먼저 내 손에 넣기 위해 걸음이 빨라집니다. 빨리 걸으면서도 주변에 있는 책들을 살핍니다. 신기하게도 관심 있던 책들은 바로바로 눈에 띕니다. 내 안의 사냥꾼 본능이 깨어나는 순간입니다. 낚아채듯이 책을 잡고 표지부터 맨 마지막 장까지 훑으며 책 상태를 가늠해보고, 두세 문단을 읽고 뒤표지에 적힌 책값을 확인합니다. 상태가 괜찮고 한 문장이 내 심장을 찌르면 낙점입니다.

 

20분만에 책을 담는 바구니에 열두 권의 책이 쌓였습니다. 볼일 마치고 서점에 들어온 아내가 한 손으로는 버거워 양손으로 바구니를 들고 있는 나를 보며 웃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보물을 발견했느냐고 묻는 표정입니다. 나는 민음사에서 나온 두 권짜리 <괴테와의 대화>를 정가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구입했다고,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과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을 정가의 3분의 1 가격으로, 법정 스님이 추천한 <여기에 사는 즐거움>을 2,600원에 손에 넣었다며 웃습니다.

 

윤광준 선생은 <마이웨이>에서 “몰입이란 다른 것이 보이지 않아 선명한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아! 나는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책을 찾아보고 그 책을 읽는 과정에 나는 몰입합니다. 내가 하나의 세계를 만들 수 있다면 그 바닥에 책이 깔리면 좋겠습니다.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책의 숲이면 좋겠습니다. 파리에 가서 ‘셰익스피어 & 컴퍼니’ 서점을 가고 싶은 이유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곳은 책으로 가득한 공간이고, 무엇보다 책에 미쳐 자신의 세상 하나를 만드는 데 헌신한 인물의 정신과 흔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가 왜 책으로 가득한 서점 형태의 유토피아를 만들었는지 살짝만 봐도 공감할 수 있을 듯합니다. 나 역시 책에 살짝 미친 사람인 탓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집념과 노력으로 구축된 완결의 세계와 아우라를 사랑할 필요가 있다. 그 안에 켜켜이 쌓인 시간이 녹아 있고 사투를 벌인 인간정신이 들어 있다”는 윤광준 선생의 말에 동의합니다. 또 그는 말합니다.

 

“맹목적인 애정으로 좋아하는 것에 빠져들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그 다음에는 시간과 노력, 돈을 퍼부어야 실체에 다다른다. 실체를 알게 되면 저절로 미쳐간다. 미쳐 있는 사람의 행복은 미쳐본 사람만 안다.”

 

윤광준 선생은 “카메라는 차가운 기계일 뿐이다. 자신의 손을 거쳐야 따뜻한 피가 도는 생명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아는 기계와 결합해서 무한의 조합과 가능성을 열어준다. 사진 찍는 순간 비로소 온전한 자기를 발견한다”고 말합니다. 그에게 카메라가 있다면 내게는 책이 있습니다. 책 그 자체는 건조한 문자의 나열일 뿐입니다. 책과 내가 감응하고 교감할 때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나의 모습을 확인하고, 흐릿하던 진면목를 발견하며, 잠들어 있던 존재를 깨워 의식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책을 고르는 시선은 나를 탐색하는 시선이고, 고른 책을 읽는 과정은 나를 찾아 떠나는 탐험입니다.

 

책은 내게 기쁨입니다. 마음에 드는 책을 찾아 헤맬 때 내 가슴은 설렙니다. 직접 고른 책을 읽으면 즐겁습니다. 스피노자는 “기쁨이란 정신이 좀 더 높은 상태로 옮아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조금 다르게 말하면 의식의 차원을 상승시키지 않는 것은 진정한 기쁨이 아닙니다. 책이 내게 주는 희열은 의식 수준의 상승입니다.

 

책을 들고 행복해 하는 나를 보며 아내가 이곳에 하루 동안 풀어놓으면 잘 놀 것 같다며 농을 겁니다. 나는 맞다고, 심심하지 않을 거라고, 밥도 필요 없다고 답합니다. 내게 책은 양식이고, 책 고르는 일은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니까요. 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이고 인생의 친구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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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준 저, 마이웨이, 그책, 2011년 2월

 

* 알림 : 구본형 선생님 유고집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 출간

구본형 선생님의 유고집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 : 구본형의 자기경영 1954-2013>이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 구본형 선생님이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쓴 ‘구본형 칼럼’ 604편 가운데 저자의 생애와 사유의 정수를 보여주는 60편을 골라 묶은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 혹은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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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0 12:53:27 *.62.172.84
오~호! 승완선배님^^
오늘 마음편지 특히 더 좋으네요^^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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