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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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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19일 00시 02분 등록

방학. 금번 휴식을 이렇게 명명하였습니다. 학생들이 학기를 마친 후 호흡을 잠시 내려놓는 것처럼 같은 개념입니다. 백수라는 말보다는 때깔 나고 어감이 좋습니다. 아이들이 그 기간 늦잠을 잔다고 하여 다그치는 부모는 없겠지요. 물론 학원이다 뭐다해서 더욱 바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방학이란 참 기다려지는 좋은 시간입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소망을 앞둔 개학이 그 너머에 있기 때문입니다.


일어나 밥을 짓습니다. 밤톨이 터지듯 쌀이 익어 흐를 때의 소리와 아련한 향내. 엄마의 젖내처럼 고요한 아침의 풍경입니다. 내가 지은 쏠쏠한 밥이 누군가의 일용할 양식으로 변할 때의 만족감은 작은 수고의 기쁨입니다.

배웅. 손을 흔드는 마늘님. 파자마 차림으로 그 앞에 서있는 남자. 오늘 어떤 하루가 펼쳐있을까요. 옆집 대문이 열리는 소리에 냉큼 집안으로 들어섭니다. 맞벌이로써 함께 출근할 때와는 다른 느낌입니다. 전업주부의 빙의라고 할까요. 최근까지 나 자신 그리고 모든 아버지들의 모습이기도한 당신. 잘 다녀오세요.


한 끼의 배부름 여정이후 따라오는 흔적들. 고무장갑을 끼고 그릇을 수세미로 닦아 깨끗이 헹굽니다. 먹고 쌓이고 치우고. 인간은 얼마나 오랫동안 이 역사를 되풀이했을까요. 모든 어머니가 그러하였겠지만 적잖은 세월 일련의 반복 행위를 한다는 것은, 애정과 거기에 담긴 의미성을 곱씹지 않고서는 쉽지 않을 터입니다. 가사노동이라고 하는 것이 실행자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는 한 생색이 나지 않으니까요.


오늘은 벼르던 현관 청소를 해보려고 합니다. 평소라면 손도 되지 않을 것이지만 밥값을 해야 할 입장이기에 물티슈를 꺼내 얼룩진 바닥을 열심히 닦습니다. 가족들의 일차적 출입관문인 이곳. 나가고 들어오고. 그 작용으로써 일과와 업적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니 때 묻은 발자국들의 모양새가 괜스레 사랑스러워집니다. 그녀가 퇴근해서 들어설 때 얼마나 흐뭇한 얼굴 표정을 지을까요.

땀이 송굴 맺힐 즈음 신발장을 열어보았습니다. 겨울용 부츠, 정장 구두, 운동화. 내친김에 구둣솔을 꺼내 전문구두사의 흉내를 내봅니다. 솔로써 문지르고 닦고. 반듯했던 구두굽이 닳은 생김새가 그동안 마음고생을 드러내는 것 같아 마음이 울컥거립니다. 관리 업무로써의 스트레스, 새로 입사한 직원들과의 화합 등 현재 어려움들이 묻어 나오는듯해서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추운 겨울날 오다 노부나가의 신발을 가슴에 품고 다녔었다죠. 당시 최고 실력자였던 그에게 충성심으로써 했던 일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따뜻한 그의 배려가 겹쳐집니다. 아마도 오늘은 참잘했어요 도장을 받게 되지 않을까요. 칭찬에 설레는 어린소년의 모습이 내 앞에 서있습니다.


이제는 음식물을 버릴 차례.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층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인사를 해야 할까요. 괜히 겸연쩍어집니다. 체육복 차림에 손에든 비닐봉투가 낯선지 거울너머로 흘깃거리는 그녀.

“쉬는 날인가 봐요.”

“네.”

방학이라고 자신 있게 얘기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삼시세끼 챙김과 뒤처리를 지워나가다 보면 창문너머 해가 저뭅니다. 각자의 길을 향했던 가족 구성원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올 시간. 아빠, 엄마, 아이들. 그들은 모여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가라는 이야기꽃을 내어놓습니다. 즐거움 외에도 사람간의 갈등, 예기치 않은 사건, 경제적문제 등 해결해야할 과제들도 있습니다. 이로 인해 잠자리에서 풀리지 않은 문제와 씨름하며 여러 꿈을 꾸기도 합니다. 개꿈일수도 혹은 로또 복권을 사게 되는 행운을 만날 수도. 이도저도 아닌 잡념의 생각에 뒤척이다보니 어느새 아침 해가 솟습니다. 하루가 시작됩니다.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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