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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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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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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24일 00시 27분 등록

16년차 프로그래머에서 상담심리사로 전환한 그녀의 닉네임은 젠느이다. ‘젠느는 좋아하는 만화책 주인공의 이름에서 따온 말이라는데, 그녀의 시원하고 지적인 외모에는 부모님이 주신 푸근한 이름보다 젠느가 썩 잘 어울린다. 초등학교 때 별명은 앙마였다. 남에게 지지 않으려는 악착같은 모습에서 연상된 악마를 소리나는 대로 발음한 것이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딸 셋 중 맏이인데 부모님이 큰아들처럼 기대하셨어요. 은연중에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고 여겼나봐요. 전공도 전산이라 더욱 그랬구요. 그러다 대학 졸업 후 혼자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낯선 환경에 위축되고 외로움을 느꼈지요. 말씨도 달랐고, 입사동기가 모두 남자인데다 업무 특성상 동료간에 정을 느낄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서초동에서 단칸방을 얻어 살았는데, 퇴근하고 신호등 앞에 서 있을라치면, 불이 환하게 켜진 아파트단지 앞에서 지금 저 불빛속에서는 가족들이 단란하게 식사하고 과일을 먹고 있겠지 싶어 한없이 위축되고 부러운 마음이 들었어요.”

 

그 외로움은 2년 뒤 지금의 남편을 만나면서 끝난다. 그녀는 흑백이었던 서울 생활이 총천연색으로 바뀌는 기분을 느끼며 서울에 정착했고, 결혼과 함께 대기업으로 회사도 옮겼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효율적인 전산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당당한 사회인으로 인정 받는 기분이 좋아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세월은 빨라서 맞벌이하랴, 어린 두 딸 키우랴 정신없이 사는 동안 십 수 년이 후딱 지난 즈음, 자신의 생활에 회의가 생겼다. 성취감보다는 소진감이 커진데다 관리업무가 점점 커지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한 때는 고맙고 든든한 회사였는데 이제는 자신을 옥죄는 창살 없는 감옥 같았다. 어느새 30대 후반인데 아는 사람이라곤 가족과 직장사람들 밖에 없었고, 시계추처럼 집과 회사만 오가는 마음 속에 엄연한 허무가 자리잡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어디선가 보이지 않는 손이 다른 길을 가야할 때가 되었다는 손짓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퇴직을 고민하면서도 쉽게 결정할 수는 없었다. 만만치 않은 월급을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퇴직 사유도 변변치 않은 것 같아 사표를 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또 회사가 다른 회사와 인수합병되었으니 조만간 정리 차원에서 희망퇴직이 시행되지 않을까 예측하기도 했다. 그렇게 2년 정도 지났을 때 희망퇴직 공고가 났다.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1주일 안에 결정해야 할 정도로 갑작스런 공고였는데도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오래 기다려왔지만 막상 선택의 순간이 되자 쓰나미 같이 밀려오는 갈등으로 망설임이 컸다. 하지만 앞으로 고위관리자의 위치를 노리며 조직생활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진짜 나다운 삶을 위해 고심할 것인지 고민 끝에 그녀는 퇴직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후 3년간 인생2막을 위한 모색에 들어간다. 그 즈음 그녀는 내 글쓰기강좌에도 참여했는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녀의 치열함이 어찌나 뜨거운지 마치 데일 것 같았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정말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섭렵했어요. 자기 내면의 탐구와 성장을 목표로 하는 셀프리더십 프로그램, 글쓰기, 책쓰기 프로그램, 코칭, 다중지능상담사 등 관심이 가는 곳에는 웬만하면 발을 담가 본 편입니다. <오마이뉴스>에서 시민기자로도 활동했구요. <오마이뉴스>에는 11주간 진행된 노무현 강독회에 갔다가 우연히 유러피언드림프로젝트에 합류하여 취재하러 프랑스까지 갔던 기억이 나네요. 2010년이었는데 당시 저출산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면서 대책마련을 위한 해외사례 취재였어요. 그 때 알게 된 활동가들이 NGO 합류를 권해 그럴까 고민하기도 했었죠.”

 

그녀는 43세에 상담대학원에 입학했다. 간간히 프리랜서로 일하긴 했지만 어느새 직장을 그만 둔 지 3년이 지나 있었다. 그 많은 관심사 중 하나만 붙들고 늘어졌더라면 3년동안 뭘 해내도 했겠다는 생각에 좌절하기도 했지만 마침내 결정했다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다. 어차피 삶에 정답이 있을 리 없고, 언제까지나 고민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선택하여 걸어가는 그 길이 인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완벽한 로드맵이 있어야만 출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걸어가는 과정을 즐기다보면 어디라도 도달하겠지 하는 배포도 생겼다.

 

당시에 쓴 글에는 내가 언제 날개를 펴고 허공으로 뛰어내려 본 적이 있던가? 언제까지 미룰 것인가? 모든 지표들이 바로 지금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비장한 대목도 있지만, 뒤늦게 시작한 대학원 공부는 의외로 상담학 공부에 대한 열정을 살려 주었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즐기게 해주었다 그녀는 석사논문으로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상담사례개념화 방법연구>를 썼다. 어떤 사람도 자신의 내면에 스스로 원하는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 자원과 힘이 있는데, 그걸 찾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은 그녀가 스토리텔링과 상담을 접목한 방법론이다. 이런 그녀를 새로운 DNA를 가진 상담사라고 알아봐주는 지도교수를 만나 2016년에 박사과정도 시작했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2년간 학교부설 상담센터에서 일했다. 개인 내담자도 많았지만, 학교와 협약을 맺은 중학교나 군부대에 나가 집단상담도 했으므로 실무경험을 많이 쌓을 수 있었다. 상담을 수련하는 과정에는 자신이 상담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전문가에게 상담내용을 공개하고 조언을 듣는 수퍼비전과정과, 상담자 자신의 내면분석을 위해 전문가에게 상담받는 교육분석과정이 있다. 그녀가 다니는 학교에는 졸업을 위해 필요한 수련 횟수가 있는데 그녀는 의무 횟수를 훌쩍 넘었다. 특히 교육분석의 경우 석사과정에서 10회면 되는데 그녀는 총 80회의 상담을 받았다고 한다. 그녀에게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 엄청난 횟수에 다시 한 번 놀란다. 나도 자기성찰에 관심이 많지만, 글을 쓰면서 내가 이렇구나 하고 알아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하니, 그렇게 하면 자기만의 프로세스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얘기해 준다. 그녀는 수퍼비전과 교육분석을 계속 받으면서 자기 자신과 내담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역량이 커지는 것이 느껴져 이 길을 선택한 것에 만족한다고 한다.

 

물론 어려움도 있지요. 자신을 성찰한다는 것은 바라보고 싶지 않은 내면의 미운 부분까지 기꺼이 인정하고 수용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수퍼비전이나 교육분석에서 지적받는 자기의 아픈 부분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해요. 또한 변화에는 시간이 걸리죠. 그 과정에서 미진함과 모호함,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정체감을 견딜 수 있어야 해요. 또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니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하지요. 진정으로 상담자가 되기를 원한다는 건 일종의 구도자의 길을 걷는 것과 같아요. 다행히 제가 공부하기를 좋아하고 자기성찰과 인간의 마음에 관심이 많아서 과정을 즐기고 있습니다. ”

 

나는 그녀의 얘기를 들으며 길어진 인생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 분야에서 전문직장인으로 오래 일한 뒤에도 얼마든지 또 한 번 전문영역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이 증명된 것 아닌가. 43세에 석사과정, 중간에 2년간 실무경험을 쌓고 47세에 박사과정, 대략 50대 초에 박사를 딴다고 해도 후진을 양성하거나 연구소에서 일하는 등 전문성을 발휘할 기회는 많을 것이다. 그녀가 다니는 학교는 설립된 지 얼마 안 되어 얼마 전에 배출된 2호 박사가 올해 초 강단에 섰다고 한다.

 

그녀가 자기세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도 인상적이었다. 아버지는 직업군인이셨다.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총명한 맏딸인 그녀가 외국유학을 간다거나 하는 가정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녀는 16년간 성실한 직장인으로 살면서 경제적인 기반을 갖춘 뒤에 스스로에게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안식년을 수여했다. 그리고 3년간의 고군분투 끝에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아냈다.

 

“2022년 나는 교육심리학 교환교수로 미국에 1년간 머물게 되었다. 남편이 섭섭해 했지만 아이들도 모두 대학에 진학한 후라 큰 부담이 없었다. 학창시절에 많이 생각해 보았던 유학의 꿈이 오십이 넘어 교환교수라는 형태로 이루어질 줄 누가 알았을까?”

 

그녀가 한창 제2의 진로찾기에 고심하던 2011328일에 쓴 미래풍광이다. 미래풍광이란 장차 내가 이루고 싶은 고지를 진짜 이룬 것처럼 생생하게 써 보는 것이다. 향후 10년간 이루고 싶은 10개의 장면을 써 보자는 뜻에서 “10대 풍광이라고도 부른다. 고 구본형선생님께서 자주 활용하던 방법인데, 구선생님께서는 당신이 쓴 10대 풍광을 거의 다 이루었다고 하면서 사람들이 10년의 가치를 잘 모른다고 안타까워 하셨다.

 

진짜 자기로 사는 사람에게 관심이 많은 나는, 그녀의 미래풍광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럽다. 연구하고 상담하며 책을 쓰겠다는 포부가 그녀와 너무 잘 어울려서 내 가슴이 다 짠하다. 그것은 지금 이대로도 좋다는 낙천성이 지나쳐서 발전이 더딘 내가 보내는 찬사이며, 무슨 일이든 붙잡고 한계까지 밀고 간 적이 없는 내가 그녀의 승부근성에 보내는 박수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면 그냥 덮어둘 것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나의 기질과 관심과 소망을 면밀하게 검토해 볼 일이다. 그녀가 참여한 공저 제목처럼 시간은 갈수록 내 편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실업은, 지금 봉급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가지지 못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부를 가져다 줄 자신의 재능을 자본화하지 못하는 것이다.

--- 구본형,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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