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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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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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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5일 17시 40분 등록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에게는 뇌에 중증 장애를 지니고 태어난 아들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오에 히카리(光). 히카리는 부모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어린 시절 음악에서 삶의 빛을 발견하고 뛰어난 실내악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장애가 줄어든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나이 마흔이 넘으면서 선천성 지적장애와 시각장애 그리고 간질에 몇 가지 성인병이 더해지고, 다리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2006년 초, 겐자부로는 히카리의 건강을 위해 매일 한 시간씩 산책을 겸한 보행 훈련을 시작합니다. 어느 날 산책을 하다가 히카리가 돌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별일 아니지만 중증 장애를 가진 히카리에게는 위험한 사고입니다. 깜짝 놀란 아버지는 자신보다 무거운 아들의 상체를 안고 머리를 다치지 않았는지 살펴보고, 아들도 깜짝 놀라 어쩔 줄 모릅니다. 이 모습을 보고 한 부인이 달려와 “괜찮아요?”라고 물으며 히카리의 어깨에 손을 댑니다. 겐자부로는 부인에게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두어 달라”고 강하게 말합니다. 히카리가 ‘가장 바라지 않는 일은, 낯선 사람이 자기 몸을 건드리는 것과 개가 자신을 보고 짖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부인은 화를 내며 가버립니다.


그런데 그 부인 말고 또 한 사람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녀는 두 사람과 적당히 떨어진 거리에서 겐자부로에게 휴대전화를 꺼내 보였습니다. 겐자부로는 소녀의 행동에서 ‘내가 여기서 당신들을 지켜보고 있다, 구급차나 가족에게 연락할 필요가 있으면 휴대전화로 협조하겠다’는 메시지를 보았다고 합니다. 잠시 후 아들과 아버지가 함께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합니다. 소녀는 그 모습을 보고 자전거를 타고 떠나면서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습니다. 겐자부로는 “그 소녀의 미소 띤 인사를 잊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이 일화는 오에 겐자부로가 쓴 <말의 정의>에 나옵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야기에 나오는 부인처럼 행동했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그 소녀처럼 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또 하나, ‘도움의 손길을 거절한 것에 대해 나는 어떻게 반응했을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나 역시 부인처럼 이해하지 못하고 화를 내며 돌아서버렸을 것입니다.


선의를 가지고 돕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겐자부로도 이 점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는 불행한 인간에 대해 깊은 주의를 갖고, ‘무슨 힘든 일이라도 있습니까?’하고 물어보는 힘을 가졌는가의 여부에 인간다움의 자격이 달려 있다는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의 말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갑작스럽게 넘어진 것에 동요하는 저희도 그 자리에서 불행한 인간입니다. 이쪽이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의 적극적인 선의를 보여준 부인도 베유가 평가하는 인간다움의 소유자입니다. 오히려 이런 때에도 자신에게 집착하는(베유는 거기에서의 해방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저 자신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럼에도 겐자부로 부자가 겪은 일화는 선한 의도와 적극적인 태도 이상의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그것은 ‘주의 깊은 눈’입니다. 주의 깊은 눈은 표면과 이면을 함께 볼 수 있는 시선입니다. 나뿐만 아니라 상대의 처지를 헤아릴 줄 아는 마음입니다. 겐자부로는 말합니다.


“불행한 인간에 대한 호기심만 왕성한 사회에서, 저는 주의 깊고 절도 있는 그 소녀의 행동에서 생활에 배어 있는 새로운 인간다움을 찾아낸 것 같았습니다. 호기심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만, 주의 깊은 눈이 그것을 순화하는 것입니다.”


위 문장에서 ‘호기심’을 ‘선한 의도’와 ‘적극적인 태도’로 바꿔도 될 듯합니다. 내게는 안 좋은 버릇이 있습니다. 누군가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성급히 결론을 내리거나 조언 할 준비부터 하는 것입니다. 속단은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고 조언은 선의에서 나오지만 그것이 상대에게,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조언이 가장 쉬운 일임을 모르지 않기에 조심하려고 하지만 그 버릇은 내 속에서 꿈틀꿈틀 살아 있습니다. 시원한 결론 내리기나 적극적인 조언보다 내게 필요한 것은 ‘주의 깊은 눈’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주의 깊은 눈’을 뜰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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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저, 송태욱 역, 말의 정의, 뮤진트리,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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