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김용규
  • 조회 수 3062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4년 4월 24일 08시 06분 등록

좋아하는 친구가 긴한 일로 여럿이 만날 날을 정해 알려오는데 그 날짜에 오래 전부터 약속된 강연 일정이 잡혀 있었습니다. 서로 안타까웠습니다. 친구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강연을 그렇게 꾸준히 할 수 있어? 몇 년 동안 매달 꾸준히 강연 요청이 있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그래서 참 기쁜 일인데 신기해서...”

 

그러고 보니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는 강의를 업의 한 축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 중에 대학의 선생님들이야 학기가 열리면 늘 강의를 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박사학위나 면허나 자격증 같은 것 없이 제도권 밖에 서 있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많지도 꾸준하지도 않은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대중 강연은 대중으로부터 잊히면 자연스레 기회도 줄게 됩니다. 대중 강연을 하는 사람들이 내는 책을 살펴보면 잊히지 않기 위해 시류에 맞춰 대중에게 어필할 컨텐츠를 억지로 생산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습니다.

 

게으른 나는 2009년에 첫 책을 냈습니다. 2012년에 가벼운 책 한 권을 더했습니다. 그 사이 특정인들을 위한 책을 하나 공저한 적이 있습니다만 서점에는 공개되지 않은 책이었습니다. 출판가에서는 책의 수명이 반년도 되지 않는다고 개탄하는 형편에 비춰보면, 또 대중 강연자가 대중에게 어필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책의 생산임을 생각해 보면, 꾸준히 강연 요청이 있고 그 스케줄이 몇 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내 형편이 나도 신기하고 다행합니다.

 

친구의 궁금증을 계기로 나도 그 비결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대중을 만나는 주제는 숲입니다. 지금 숲에 대해 대종을 이루는 시선은 과학 혹은 자원적 관점입니다. 이 시선은 임학이나 산림학, 산림자원학으로 변하고 자랐습니다. 이것은 실용을 위한 시선으로 점점 강화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임업 생산적 시각이 가장 큰 줄기였습니다. 그래서 식물자원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그 생리적 병리적 측면을 깊게 파고들었습니다. 이 시선은 최근 시대 흐름을 따라 경관적 체험교육적, 치유적 자원으로서의 숲에 주목하는 시선으로 갈래를 폈습니다. 시선은 동시에 녹색댐이자 탄소저장공간 등 환경적 역할의 중요성에도 주목했습니다. 숲은 목재와 임산물 생산처로써의 지위를 넘어 휴양적 치유적 자원의 지위를 획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전국에 휴양림이라는 하드웨어가 생겨나고 숲해설가와 숲치유사, 등산지도 전문가 등 그것을 연결하는 다양한 직업과 자격이 생겨나기에 이르렀습니다.

 

나의 주제가 단지 이러한 시선에 있다면 나는 대중과 이렇게 꾸준히 마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나는 숲의 생명들을 나라는 생명과 동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축약하면 저 민들레 한 포기나 꾀꼬리 한 마리의 삶이 아무 것도 아니라면 나의 삶도 아무 것도 아니라는 관점이지요. 그나 나나 모두가 어떤 절대적인 힘에 의해 삶이 주어졌고 각자 열망을 품은 존재요 상처입고 또 극복하며 살다가 떠나는 존재라는 시선입니다. 이 시선은 숲 생명체를 통해 나와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세상 욕망에 한없이 끌려가는 나와 우리를 성찰하고 반성하게 합니다. 절망을 찢고 다시 일어서게 합니다. 진정한 자유와 숭고함을 향해 나가게 합니다.

 

그래서 나는 이 시선을 숲인문학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위의 갈래가 주로 머리에 의존하는 시선이라면, 숲인문학의 시선은 머리만이 아니라 가슴으로 마주하는 숲이요 온 감각을 열어 마주하는 숲입니다. 폐기한 자각과 영성을 회복하는 시선입니다. 자연 안에서 작아짐으로써 더 커지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 시선입니다. 나는 매일 그렇게 숲을 바라봅니다. 오늘 아침 다시 동트는 여우숲에서 새들의 노래를 듣고 바람을 마주하고 신록의 빛깔을 온 감각으로 느끼며 염원했습니다. 이 시선으로 대중을 안내하는 작업을 평생하며 살 수 있기를.

IP *.20.202.238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