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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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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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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1일 12시 05분 등록

1달 전쯤 전화기를 공짜로 바꿔주겠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만해도 일이 이렇게 복잡해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쓰던 전화가 자꾸만 오락가락하던 차라 공짜폰을 집으로 바로 보내준다는데 제안에 두 번 고민도 안 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쯤은 그런대로 잘 썼구요. 그런데 며칠 전 계속 미뤄두던 은행업무를 처리하는 중에 휴대폰 본인인증을 하려는데 계속 에러가 나더군요. 이상해서 전화를 걸었더니 메이저 통신사가 아니면 본인인증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한달 전에 바꾼 전화기는 속칭 알뜰폰이었던 거죠. 통신사 이동이 없다고 알고 있던 저는 황당했습니다. 콜센터에 상황을 설명했더니 잘 못 공지된 점은 정말 죄송하나 규정상 3개월 동안은 해지가 안 된다는 답변만 계속할 뿐이었습니다. 속이 상했지만 은행업무가 급했던 저는 하는 수 없이 업무처리가 가능한 번호를 새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겨우 은행일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전화 한 통을 하려고 해도 그냥 되지가 않습니다. 저만해도 저장되지 않은 번호는 잘 받지를 않으니까요. 먼저 문자를 보내고 기다렸다가 전화를 해 전화번호 바뀐 사정을 설명하고 용건을 처리하는 일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물론 그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소원하게 지내던 사람들과 핑계김에 안부를 나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좋은 기회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부담스럽게만 느껴지는 걸까요?

 

하필이면 4년만의 복직준비로 마음이 분주할 때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엄마가 일하러 나가 있는 동안 아이들이 불편없이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만으로도 남은 시간이 모자라는 상황이니까요. 이리 동동거리고 싶지 않아 충분히 여유있게 잡은 일정이었는데, 닥쳐서 정신없고 싶지 않아 미리미리 차근차근 준비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 시간들이었는데 어찌 또 이리되고 마는 것인지. 결국 또 이도 저도 제대로 못하고 마음만 상하는 시간들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 맥이 풀립니다.

 

도대체 지난 4년 너는 뭘 한 거니? 자신 있다더니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이리 질질대면 어쩌겠다는 거야? 까짓 거 전화통화가 뭐 그리 어렵다고 그리 절절 매는 거야? 그렇게 쓸데없이 진을 빼니까 정작 해야 할 일도 자꾸만 엇박자가 나는 거잖아. 뭐 하나 마음에 들게 해내는 게 없으니. 너 정말 이것 밖에 안 되는 거니? 너 겨우 이렇게 되겠다고 그 아까운 시간을 4년이나 썼던거니?

 

어느 한마디 반박할 여지가 없는 다그침이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눈물을 삼키는 것 뿐이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하소연할 데도 없었습니다. 저를 이리도 힘들게 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저 자신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제 안의 또 다른 저는 늘 주장합니다. 다 너를 아끼기 때문에 이러는 거라고. 다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거라고. 네가 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러는 거라고. 그래요. 그것도 너무나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말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언젠가가 지금은 분명히 아니라고. 아직은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더 많은 게 현실이라고. 이런 나를 그대로 인정해주지 않으면 당신이 그토록 원하는 그 언젠가는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거라고.

 

어쩌면 그녀도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알면서도 좀처럼 어쩌지를 못하는 것이기가 쉬울 겁니다. 그 마음이 어떨지 알기에 도저히 그녀를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그녀에게도 필요한 건 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녀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역시 편안하게 기다려주는 것이겠지요?

 

바뀐 번호가 익숙해지는 데는 제법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셀 수도 없을 만큼 싸우고 또 화해할테구요. 하지만 이젠 무섭지 않습니다. 그 시간들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품어가게 되리라는 것을 믿으니까요. 그리고 우리가 깊어지는 꼭 그만큼씩 우리가 품을 세상도 그리되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으니까요. 

 

이제야 알겠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는 것은 해치워버려야 할 미션이 아닌 삶 자체라는 것을. 변화의 불편함을 즐기지 못하고 따로 즐길 삶 따위는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삶이란 흔들리는 것이고 균형을 잃었다가 이내 다시 그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되돌아오는 불안정한 체계인 것이다. 오직 죽은 것만이 변하지 않는다. 변화는 삶의 원칙이다.      

 

 

                                                                                                             - 떠남과 만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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