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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2014년 3월 7일 11시 47분 등록

어제 오전 늦게야 모모님이 올려놓은 글을 읽고 알았습니다. 제주도에서 당신이 임종을 맞았다는 것을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이런 날이 설마 오랴 했는데 말입니다.


‘로이스야 내 생일이다. 선물사들고 오너라.’


작년 가을, 당신의 60세 생일에 몇몇의 친구들과 당신을 만났습니다. 그것이 당신과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살이 좀 빠진 것을 제외하면 투병 중이라는 사실조차 믿기 어려웠습니다. 제주도에서 새로운 사업을 펼칠 거라며 들뜬 목소리로 말하는 당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삶의 의지로 충만해보였습니다. 죽음을 친구 삼으니 두려울 것이 없고 하고 싶은 일을 미룰 이유도 없다 했지요.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지만 멋지게 사는 일만 남았노라고도 했지요. 위로하러 갔던 우리는 오히려 당신에게서 위로를 받고 돌아왔습니다.


소식을 듣자 마자 당신을 만나러 용인 평온의숲'으로 갔습니다. 달리는 내내 뿌연 구름으로 뒤덮였던 하늘이 평온의숲에 이르자 청명하게 바뀌어 있었습니다. 평온마루 로비에 마련된 키오스크에서 당신의 이름을 쳤습니다. 화면에 당신 이름과 사진이 떴습니다. 그런데 살포시 웃고 있는 당신의 눈이 왜 그리도 슬퍼보이는지요. 한 줌의 재로 남겨진 당신의 현실이 믿기지 않아 유골함 앞에 망연히 서 있기만 했습니다. 시간의 엄정함 앞에서 아무 것도 되돌릴 수 없는 이 무력함을 어찌해야 합니까.


주변 사람들이 요즘 들어 부쩍 더 많이 제 곁을 떠나고 있습니다. 소식으로만 죽음을 듣게 한 당신 역시 그러합니다. 당신이 밉습니다. 아니 가엽습니다. 너무 갑작스럽게 악화되어서 그럴 정황이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연락을 하지 않을 걸 보면 죽는 순간까지 당신은 외로웠던 게 분명합니다.


당신은 의분이 많아 도시에는 머물 수 없었던 사람입니다. 하나를 알면 열을 아우르는 총명함을 가졌지만 도시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일찍 은퇴하여 청평에 자리를 잡은 사람입니다. 그곳에서 붓을 들고 이루지 못한 화가의 꿈을 스스로 이루어낸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술마저도 상혼에 찌든 현실을 견디지 못해 결국 붓도 내려놓은 사람입니다. 아침이면 산에 오르고, 저녁이면 손 때 묻은 턴테이블에 블루스 LP판을 올리는 것이 당신의 유일한 낙이었지요. 누가 뭐라는 사람 없는 그곳에서 밤이 이슥하도록 맘껏 볼륨을 올리며 당신은 홀로있는 자유를 만끽했습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자유가 당신의 멍에가 되었습니다. 세상을 판단하는 더듬이가 아직도 퍼렇게 살아있는 당신에게 청평은 그 더듬이를 내릴 만큼 고립된 곳은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내면이 한 없이 가라앉을 즈음 당신은 운명처럼 저희 카페를 알게 되었습니다. 조심스럽게 올린 글 하나가 도화선이 되어 모닝페이지와의 사랑이 시작되었지요. 사람들의 신뢰가 당신 안에 한 줄기 빛으로 스몄고, 당신은 문을 활짝 열고 안에 쌓였던 것들을 거침없이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건축과 미술에 능했던 당신은 글에도 능했습니다. 동서남북을 종횡무진하며 당신의 감수성은 글 속에 피어났습니다. 비록 독수리 타법이지만 그림 한 편을 완성하는 열정과 무게로 당신은 무섭게 글을 썼습니다. 엄선한 블루스곡과 함께 당신은 하루 한 편씩 글을 올렸습니다. 그런 재미가 1년 반 당신을 그 어느 때보다 생기있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당신은 손수 지은 청평 아틀리에로 우리를 자주 초대했고 우리는 가끔 그곳에서 파티를 열었습니다. 진공관 앰프를 통해 흘러나오던 아날로그 사운드와 우리가 나눈 이야기와 웃음들은 그림엽서와 같은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누구보다 인생을 맘껏 누렸고 누구보다 꼿꼿하게 삶을 세우려 한 사람이건만 왜 당신을 생각하면 '외로움'이란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 걸까요. 사람이 싫다며 도시를 떠난 당신이건만 당신이 못내 그리워한 건 사람이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당신의 닉 ‘황야의이리’마저도 애잔하게 다가옵니다.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않겠다는 당신의 노마드적 다짐을 담은 이름이겠지만 왜 저에게는 뿌리내릴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한 외로운 자의 모습으로만 보이는 걸까요. 당신은 늘 씩씩했지만, 그것으로도 당신의 외로움은 가려지지 않았습니다.


봉안실을 나와 평온마루 마당 벤치에 앉았습니다. 고요와 적막만이 넓은 산허리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보았습니다. 흘러가는 뭉게구름 사이로 당신의 얼굴이 언뜻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당신이 내게 하는 말도 들렸습니다. 

 

'로이스야, 인생 참 무상한 것이다. 그러니 미루지 말고 살고 싶은 인생을 살아라.‘


그 순간 비로소 참았던 눈물이 터졌습니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당신이 하는 말은 내가 내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는 것을요. 그때 흘린 눈물 역시 당신이 아니라 내 인생을 향한 것이라는 것도요. 아니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태생적인 한계를 지닌 모든 인간을 향한 눈물이었다는 것을요.  

 

당신, 고맙습니다.

그곳에서는 부디, 신의 자리 하나 마음 속에 마련해두시길. 그래서 더 이상 외롭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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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7 16:32:33 *.64.231.52
제가 알기로 이리님은 누구보다 자기 확신을 가지고 산 사람입니다. 

세상을 맘 먹은대로 잘 헤쳐나왔고,

시시한 밥벌이에 목숨걸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삶을 만들어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평범한 대한민국의 남자들과는 달랐습니다.

그런데 그를 보면 늘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가슴 언저리가 아팠습니다.

나보다 더 잘 사는 사람을 향해 왜 그런 아쉬움을 가졌느냐고요.

그건 나에게는 있는데 그에게는 없는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신념이 강한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잘 주도합니다.

그러나 남의 말은 잘 믿지 못합니다.  

뚜렷한 신념 때문에 결국 사람들로부터 소외됩니다.  

금이 많은 곳에는 사람들이 잘 깃들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모페를 만나 그어둔 금을 많이 지우고, 

대문 빗장을 열고 우리를 초대하는 이리님을 보면서 기뻤습니다.

그의 인생이 좀더 많은 친구들과 행복해지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연락도 없이 가버리니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아직도 그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릿합니다. 

 

실은 그를 보면서 나를 봅니다.

우리 인생을 봅니다.

그의 외로움은 근원적으로 우리 모두의 외로움입니다.

마음에 '그분'을 위한 자리 하나 만들어

그 모든 걸 혼자 감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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