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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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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6일 01시 00분 등록

1990년 핵천체물리학자 하인츠 오버훔머는 자신이 창립한 ‘우주의 핵(Nuclei in the Cosmos)’ 학회의 과학자들과 독일의 유명한 마울브론(Maulbronn) 수도원을 방문했습니다. 8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이 수도원은 예술적으로도 가치가 있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알프스 북부의 명소입니다.

 

수도원은 16세기 중반부터 개신교 신학교로 용도가 바뀌었는데,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 등이 이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마울브론 신학교는 소설가 헤르만 헤세가 14살에 입학하여 6개월만에 자퇴한 곳이기도 한데, 그는 <수레바퀴 밑에서>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 수도원의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수도원의 여러 건물 중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품은 수도원 북쪽의 간부용 식당 근처에 위치한 분수라고 합니다. 14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이 분수는 원형 수반 3개를 위로 갈수록 크기가 작아지는 순으로 놓은 형태입니다. 오버훔머 일행이 분수대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한 과학자가 분수대를 둘러싼 창문의 위쪽을 가리켰습니다. 그 창문을 보고 오버훔머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4시간 만에 끝내는 우주의 모든 것>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모든 창문의 문양은 놀랍게도 호일이 예건하고 파울러가 발견했으며, 또한 우리가 적색거성에서의 생성에 필요한 미세조정을 계산했던 그 탄소 핵의 특별한 상태를 도식적으로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탄소 핵의 상태는 바늘구멍과도 같아서, 이와 같은 상태가 없었다면 우주에는 생명이 거의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배열의 탄소 원자핵은 다른 복잡한 원자핵들과는 달리 오로지 3개의 헬륨 핵으로만 구성되었다. 만약 원자핵의 이러한 상태를 도식으로 나타내면 바로 수도원의 그 창문에 나타난 배열과 똑같다.”

 

이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약간의 과학 지식이 필요합니다. 원자 차원에서 생명체의 탄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소는 탄소입니다. 탄소는 단백질이나 유전자와 같이 생명체에 필요한 복잡하고 다양한 분자들을 만들어냅니다. 별 중에서 수명을 거의 다하여 별의 표면 온도가 떨어지고 붉은 색으로 변한 것을 적색거성이라 부릅니다. 탄소는 적색거성의 내부에서 헬륨 연소가 일어날 때 생성됩니다. 탄소의 생성은 ‘삼중알파과정(Triple Alpha-Process)’이라 불리는 매우 짧은 순간에 이뤄지는데, 1952년 천체물리학자 프레드 호일은 짧은 시간에 생명체에 필요한 많은 양의 탄소 핵이 형성되려면 특별한 구조로 되어 있어야 함을 예측했습니다. 1953년 윌리 앨프리드 파울러는 실험을 통해 호일의 예측이 사실임을 증명했고, 훗날 이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마울브론 수도원이 명사들을 배출하고 사춘기의 헤르만 헤세에게 깊은 영향을 준 것은 우연일 겁니다. 탄소의 생성을 가능케 하는 특별한 배열도 우연일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분수대 옆 창문의 문양과 탄소 핵의 특별한 구조의 일치 역시 우연일까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우연 이상의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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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http://www.kuech.com/blog245.htm

 

과학의 역사를 보면 획기적인 이론의 탄생에서 절묘한 우연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어떤 연구에 몰두해온 과학자가 큰 장애물에 직면했을 때 연구 과제와 전혀 다른 곳에서 해답을 얻거나, 꿈에서 실마리를 얻곤 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우연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신비체험에 가깝습니다. 뉴턴은 연금술을 진지하게 연구했고, 화학자 프리드리히 케큘레는 꿈에서 꼬리를 무는 뱀을 보고 벤젠의 분자식을 발견했으며, 198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세포유전학자 바바라 맥클린톡은 자신이 연구하는 생명체와 하나가 되어 유전자의 ‘자리바꿈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이런 예는 많습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특별한 지식을 획득할 때의 느낌이나 상태는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환희나 구도자들의 삼매경과 비슷하다”고 말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기적이란 자연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연에 관해 이제껏 알려진 것과 모순될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연과 기적처럼 과학과 예술과 신비 역시 반대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어떤 이치가 밝혀지면 과학이고,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체험적으로 진실인 것은 신비, 이 둘 사이에 위치한 것은 예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자연과학과 종교 간의 결합을 보여주는 이런 기이한 우연성에, 즉 생명의 근간인 탄소와 거의 1,000년의 역사를 가진 어느 수도원 창문에 나타난 그 문양과의 미묘한 연결고리에 여전히 감탄하고 있다.”

- 하인츠 오버훔머, <4시간 만에 끝내는 우주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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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인츠 오버훔머 저, 이종완 역, 4시간 만에 끝내는 우주의 모든 것, 살림, 2011년

 

* 안내

변화경영연구소의 8기 연구원 문윤정 님이 신간 <외로운 존재는 자신을 즐긴다>를 출간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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