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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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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8일 08시 39분 등록

우연히 마음에 드는 것을 만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눈이 커지고 관심과 함께 만남이 이어지면 관계가 형성됩니다. 만남은 우연이지만 관심과 사랑이 더해지면 인연입니다. 여기서 ‘마음에 드는 것’은 책일 수도 있고, 시, 사람, 물건일 수도 있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집 <여행>은 그렇게 만난 인연입니다.

 

이 시집에 처음으로 실린 시는 ‘여행’입니다. 시집 제목으로 삼은 걸 보면 시인에게 중요한 시인 듯합니다. 내게도 깊이 들어왔습니다. 아래 옮겨봅니다.

 

사람이 여행하는 곳은 사람의 마음뿐이다.

아직도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 오지뿐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여 떠나라

떠나서 돌아오지 마라

설산의 창공을 나는 독수리들이

유유히 나의 심잠을 쪼아 먹을 때까지

쪼아 먹힌 나의 심장이 먼지가 되어

바람에 흩날릴 때까지

돌아오지 마라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람의 마음의 설산뿐이다

 

사람의 마음을 여행한다는 건 낭만적인 일이지만 동시에 어려운 여정이기도 합니다. 특히 그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의 그것이라면, 게다가 그 사람의 설산 같은 오지라면 그 어려움은 더욱 클 듯합니다. 시인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설산의 창공을 나는 독수리들이 유유히 나의 심장을 쪼아’ 먹는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쪼아 먹힌 나의 심장이 먼지가 되어 바람에 흩날릴 때까지 돌아오지 마라’고 합니다.

 

내가 낭만주의자임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이제껏 이상주의자인줄 알고 있었는데, 나는 이상을 좇기에는 마음은 좁고 힘도 부족한 사람입니다. 낭만이 이상과 끈기와 만나지 않으면 허당임을 모르지 않기에 이런 여행은 내게는 힘든 일입니다. 그럼에도 나는 떠나고 싶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 ‘여행가방’이 나를 부추깁니다.

 

너는 왜 떠날 생각을 하지 않니

언제까지 여기에 머물려고 그러니

이곳은 더 이상 머물 곳이 아니야

어머니는 떠나시려고 하는데

아버지는 이미 떠나셨는데

너는 도대체 누굴 만나려고

머뭇거리고만 있는 거니

그동안 내가 무거웠다면

얼마든지 가벼워질 수 있어

떠나가는 동안에 가끔 노래도 부르고

배고프면 컵라면 하나 사 먹고

잠시 풀잎 위에 머무는 바람이 되면 돼

그동안 차가운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내 너를 위해 떠났지만

이젠 네가 나를 위해 떠나야 할 때야

제발 나를 이곳에 처박아두지 말아줘

떠나지 않으면 여행이 아니야

 

내 마음속에 묵혀둔 여행가방이 말합니다. 이제 떠나라고. 어디로? 내 마음속 오지로, 사랑하는 이의 마음속으로, 때때로 어렴풋이 바라만 봤던 마음속 설산을 향해. 거기서 온갖 것을 만나고, 온갖 사건을 겪으며, 마음의 사계절을 보내라고 합니다. 원치 않는 것을 만나고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을 겪을까봐 두렵습니다. 하지만 이 비좁은 마음 안에서 ‘버릴 수 있는 자존심’의 위로를 받으며, 그런 자존심이 너무 많음을 슬퍼하며 머물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는 이제 떠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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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저, 여행, 창비, 2013년 6월

 

* 안내1 : 구본형 선생님의 유고집 <구본형의 마지막 수업> 출간

구본형 선생님의 유고집 <구본형의 마지막 수업>이 출간되었습니다. 구 선생님이 타계 직전까지 진행하셨던 EBS FM 라디오 ‘고전읽기’의 내용과 604편의 ‘구본형 칼럼’, 그리고 375편의 ‘마음편지’에서 고전에 관한 내용을 편집 및 농축하여 한권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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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내2 : 문윤정 저자의 ‘여행 작가의 모든 것’ 강좌

변화경영연구소의 오프라인 카페 ‘크리에이티브 살롱 9’에서 <여행 작가의 모든 것>의 저자 · 여행 작가 문윤정 선생님을 모시고 3월 기획강좌 ‘여행 작가의 모든 것’을 진행합니다. ‘여행’과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강좌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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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8 17:27:13 *.247.149.205

떠나긴 어딜 또 떠나? 이젠 돌아 와야지 형은.

이제 내가 떠날 차례. 바통 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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