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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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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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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21일 13시 04분 등록

 

목백일홍

 

피어서 열흘 아름다운 꽃이 없고

살면서 끝없이 사랑 받는 사람 없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하는데

한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석달 열흘을 피어 있는 꽃도 있고

살면서 늘 사랑스러운 사람도 없는 게 아니어

함께 있다 돌아서면

돌아서며 다시 그리워지는 꽃 같은 삶 없는 게 아니어

가만히 들여다보니

한 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있는 게 아니다

수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릴 피워올려

목백일홍나무는 환한 것이다

꽃은 져도 나무는 여전히 꽃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제 안에 소리없이 꽃잎 시들어가는 걸 알면서

온몸 다해 다시 꽃을 피워내며

아무도 모르게 거듭나고 거듭나는 것이다

(도종환, ‘부드러운 직선에서)

 

팬도 아닌데 이효리가 보기 좋다. 청순에서 섹시로, 섹시에서 환경보호자로, 이제 이상순의 도움을 받아 작곡에 프로듀싱 공부를 하고 있는 그녀, 적절하게 모습을 바꾸며 진화해 가는 모습이, 그 과정에 주변의 도움을 이끌어내는 힘이 그녀의 매력이리라. 이효리는 아주 오래도록 친근한 모습으로 유명세를 누릴 것 같다. 36세에 은퇴한 후 팬들에게 늙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50년이나 아파트에서 은둔한 그레타 가르보 같은 사람에 비하면 얼마나 현명하고 현대적인가!

제 안에 소리없이 꽃잎 시들어가는 걸 알면서

……

아무도 모르게 거듭나고 거듭나는 것이다

여배우가 아니라도 시시각각 변화에의 도전에 부딪히는 나에게, 이 구절이 묘하게 위로가 된다. 모르지 않는 것이다. 꽃잎이 시들어가는 것을 번연히 보고 있기에 아무도 모르게 뿌리 한 번 더 용쓰고, 햇살 한 줌 더 받으려 나뭇가지를 비트는 것이다.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백일이나 피어있는 목백일홍-배롱나무, 우리도 그와 같아서 한 번의 성공에 자만하지 않고, 보기 좋은 젊음에만 의미를 두지 않고, 거듭거듭 자기 안의 새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 오래도록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 아닐지?  요즘처럼 인생이 길어지고 자극은 넘쳐, 인생의 고비마다 적절하게 새로워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에 이 시는 깊은 암시를 준다.

 

마음이 산란하여 두꺼운 책이 안 읽힐 때면  시집을 읽는다. 그러면 어김없이 위안을 받는다. 경쾌한 도발과 다소곳한 연민과 능청맞은 해학, 시에는 온갖 것이 들어있어 감탄하다 보면 다시 피가 도는 느낌이 든다. 시는 내 감수성을 덮어버린 두꺼운 딱지를 녹이고 새 살을 돋게 해 주는 연고다. 권태에 쩔어 있던 시야를 반짝거리는 발견으로 채워준다. 시는 단숨에 인생의 본질을 꿰뚫는 활이다. 아하! 눈이 밝아지며 돌연 마음도 가벼워진다. 시는 있는 힘을 다 해 우는 아기다. 오직 우는 것 밖에 모르면서 그 몸짓 하나로 어른들을 마냥 행복하게 만드는 표현의 재간둥이다. 그리하여 시집을 덮으면 살아있다는 것 만으로 가슴이 뜨거워져 다시 한 번 잘 해 보자는 마음이 된다. 

 

선생님께서도 늘 시처럼 살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느낌은 어떤 것이었을까 궁금하여 찾아보니 역시 시와 변화경영을 연결해 놓은 안목이 탁월하다.

 

시처럼 살고 싶다. 삶이 맑은 물 속의 작은 고기떼처럼 그 유쾌한 활력으로 가득 차기를 얼마나 바라왔던가. 삶이라는 대지 위를 내 인생은 여러 개의 시로 여울져 흐른다. 날쌘 고기처럼 도약하고, 깊고 푸른 물빛으로 잠복하고, 햇빛 쏟아지는 황홀로 새처럼 지저귀며 흐른다. 때로는 봄꽃을 실어 나르고, 때로는 폭우 뒤의 격동으로 몸부림친다. 이내 거울 같은 평화 위에 하늘과 나무 그림자를 실어 나르고 마침내 바다로 흘러들어 우주 속으로 사라진다. 그때 삶은 작은 강처럼 기쁨으로 흐르리라. –-2010. 12.7일자컬럼에서

 

시는 운율을 가지고 있다. 고조와 강약과 장단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음악과 같다. 빨리 흐르기도 하고 느리게 흐르기도 하지만 그것이 바로 속성이고 매력이다. 시는 또한 그 속에 여백을 가짐으로써 펄쩍 도약하고 여운을 가짐으로써 길게 끈다. 표현하되 표현 너머로 뱀처럼 미끄럽게 슬그머니 건너가고, 말하되 침묵을 담아 갑자기 가슴으로 섬광처럼 무찔러 온다. 빠름과 느림 사이에 시가 있는 것을 아닐까 ? 아마 시처럼 삶을 살거나 시처럼 경영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인간으로서 성공했고, 경영자로서 훌륭한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2009. 8. 30일자 컬럼에서

 

그리고 이거 아는지?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화려하게 피었다 지도록 배롱나무는 꿈쩍도 않는다. 살았나 죽었나 맨질거리는 수피를 쓰다듬어 볼 때까지 미동도 않던 나무가, 그 중 늦게 잎이 돋아난 나무가 누구보다 오래 붉은 꽃을 피운다. 인생의 중반에 새로운 기운이 절실한 사람이 기억해 두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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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2 14:35:03 *.1.160.49

지난 주 토욜날 꺼내 먹고 일주일을 꽁꽁 숨겨두었던 그 달콤한 쿠키를 꺼내 먹으며 글을 읽습니다.

자꾸만  '선생님'을.. '선배님'을...'언니' 라고 부르고 싶게 만드는 글결.

가서 안기고 싶기도 하고 가만히 안아드리고 싶기도 한 그 마음이

점점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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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3 13:04:03 *.131.205.106

효리처럼이란 제목에 읽지 않다가, 다시 그 제목 때문에 읽었습니다.

자신을 때에 따라 적절히 변화해가며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과거의 요정으로 살지 않고 계속 변화하며 사는 모습이.


선배님, 봄이 되면 여기 변경연 홈페이지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시를 나누고 싶습니다. 몇 년전 봄 한달을 시로 가득 채웠던 것처럼 그렇게 사부님의 1주기를 맞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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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4 09:06:37 *.133.122.91

효리와 시가 되는 그 도약이 좋습니다. 행과 행, 연과 연 사이의 그 도약을 꿈꾸어봅니다. 좋은 칼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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