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연지원
  • 조회 수 3247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4년 2월 24일 11시 09분 등록

 

2131CB37530AA45F139E2B

 

"영화 봤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상영을 안해 원정가서 봤어요! 꼭 봐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는 내내 울화가 치밀고 울고 돈이 뭔지..." 한 네티즌이 다른 도시로 차를 몰고 가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관람했다는 말입니다. 이런 네티즌들이 많더군요. 상영관이 워낙 적거든요.

 

개봉관이 적은 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어둔 네티즌이 있어 옮겨 봅니다. "개봉극장이 몇군데니 이런 거는 솔직히 이 영화가 비판적이고 감동적인 영화인 거는 알겠는데 재미가 별로 없고 흥행이 잘 안될 거 같으니깐 조금 개봉하는 거지용." 제 생각은 이와 다릅니다. 사실은 이렇거든요.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광고비도 12억원을 들여 같은 시기에 개봉한 영화 중 가장 많이 썼고 개봉예정작 중에서 예매율도 1위였다" 박성일 제작총괄 PD의 말입니다. <또 하나의 약속> 측은 롯데시네마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습니다. 특히 롯데시네마가 상영관 배정에서 가장 부당했다는 주장입니다.  

 

"롯데시네마는 개봉 전 예매율 9위였던 영화 <피 끓는 청춘>에 92개 상영관을 배정한 것과 달리 예매율 3위였던 <또 하나의 약속>에는 21개의 상영관만 배정하는 등 불이익을 줬다." 개봉 당시 CGV는 전국 상영관 48곳, 메가박스는 32곳을 배정했는데, 가장 적었던 곳이 롯데시네마입니다.

 

217D413B530A939A32D7B7

 

위 그림은 현재 상영작 중 예매율 10위까지의 영화입니다. 개봉 전과 달리 <또 하나의 약속> 예매율이 많이 떨어졌지요? 어쩔 수 없습니다. 상영관이 워낙 적으니까요. 10편 중 평점이 9점은 넘은 영화는 3편 뿐입니다. <수상한 그녀>, <겨울왕국> 그리고 <또 하나의 약속>입니다. 8점대는 <신이 보낸 사람> 한 편이고요. 평점 순으로 재배열하면 <또 하나의 약속>이 1위입니다. (아래 사진)

 

2405393B530A9399309C70

 

 

개봉관이 적은 이유는, 한 네티즌의 말처럼 "재미가 없고 흥행이 잘 안 될 것" 같아서가 아닙니다. 관객들의 반응이 뜨거울 뿐만 아니라, 저처럼 영화 전도사 노릇을 하는 이들이 많으니까요. 전도사?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 이 영화를 복음처럼 권하고 있습니다. 영화가 복된 소식(福音)을 담은 것은 아니지만 말이죠.  

 

<또 하나의 약속>은 2003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 입사해 2005년 백혈병 진단을 받고 2007년 세상을 떠난 고 황유미 씨의 실화를 담은 영화입니다. 삼성은 어제(23일) 영화에 대한 첫 반응을 자사의 블로그에 올렸는데, 허구적이며 영화가 투쟁 수단으로 변질된 것 같아 안타깝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편 영화의 주인공인 황씨의 아버지 황상기 님의 인터뷰는 아직도 삼성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했지요. 실제는 영화보다 더욱 심했다는 전언입니다. 아래 그의 인터뷰 전문을 한 번 보시죠. 투쟁에 지치고 힘들 것 같은 사람은 온데간데 없고, 달관한 분의 인터뷰가 퍽이나 감동적입니다.   

[황상기님 인터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25259.html]

 

순제작비 10억원을 들인 저예산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투자사가 없어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는 제작두레로 만들어졌습니다. 민감한 소재 탓입니다. 현재 40만 관객을 넘었고, 손익 분기점은 70만입니다. 시민들이 손해를 보지 않은 그 선을 넘어 수익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수익금은 황상기 님과 반도체 직업병 피해 근로자 유가족 모임 '반올림'에 후원한다고 하네요.

 

사실 이런 영화 외부의 소식을 적을까 말까 고민했습니다. 영화 자체로도 충분한 감동을 전하는 영화라고 생각하니까요. 삼성이라는 기업이 우리 사회에 미친 긍정적인 요소도 많지만, 그것으로 어두운 이면까지 합리화할 순 없습니다. 영화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에 초점을 잘 맞춰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했고(명료한 주제의식), 사람들의 본성을 적재적소에서 예리하게 드러냈습니다(탁월한 표현력).

 

유가족들이 왜 투쟁을 포기하게 되는지 (대의 대신 실리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 묘사),  삼성 직원들은 왜 불의한 현실에 눈을 감아버리는지 (개인의 안녕 혹은 평생을 몸담은 직장에 대한 충성심) 등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자기는 못해도 다른 이들이 진실을 밝혀 주기를 바라는 직원들을 묘사한 것도 훌륭히 표현했습니다. 내용이 아닌 표현 면에서도 훌륭한 작품입니다. 

 

253EA838530AA54C0223DB

 

영화를 보는 내내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수년 전, 관련 기사를 얼핏 보아 삼성에 다니는 지인에게 보여주며 물어보긴 했지만, 지인은 대답을 못했고 나의 관심도 거기가 끝이었습니다. 물론 한 개인이 모든 사회 문제에 예리한 비판의식을 가질 순 없고, 사회 활동가가 되어 이런저런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기에는 개인의 삶이 팍팍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보다는 좀 더 진한 사회의식을 품고서 살고 싶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바람을 전혀 행하지 않은 제 삶이 느껴졌으니, 부끄러울 수 밖에요.

 

영화가 관객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수오지심은 제 성향에 기인한 감정이니까요. 영화를 보고나면 저마다의 고유한 감정을 느끼게 되겠지요. 어떤 분은 격분을 하고, 어떤 분은 슬픔을 느끼고, 어떤 분은 당장 반올림에 후원하실 테고요. 각자 자신을 전율시킨 감정을 실천으로 행하면 될 겁니다. 선한 의도를 굳건하게 행할 때 다른 사람을 전율시키는 삶이 되어갈 테니까요.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병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영화는 엔딩 부분에서 유가족들의 승소 장면을 보여주지만, 이후 삼성 측에서 항소를 했고 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지난 2007년 이후 산업재해를 제보한 노동자는 모두 180명이고 그 가운데 70여 명은 이미 세상을 등졌습니다. 숫자가 늘어나는 데에 이 영화가 도움이 되고, 변화의 촉발점이 되면 좋겠습니다. '더 많은 분들이 관람하시도록 영화를 알리자.' 극장을 나오면서 나 자신과 한 약속입니다. 작고 미약한 약속.  

 

[영화 제작 뒷이야기 하나] 영화엔 안 나오는 진짜 마지막 컷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47&aid=0002046387

IP *.9.168.72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