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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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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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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28일 11시 50분 등록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은 과로가 아니라 걱정이나 불안이다

- 러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은 날부터 나에게 불면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잠을 제대로 못 이루자 ‘처자식까지 딸린 마당에 돈을 못 벌게 되면 어떡하지?, ‘이러다 백수 되는 거 아냐?, ‘만약에 일이 잘못되면 직장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나? 아니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문득 예전에 겪었던 공황장애의 악몽이 떠올랐다. 어느 공원 벤치 앞,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이유를 알 수 없는 과도한 불안감에 패닉 상태에 떨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지금은 그런 위태로운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앞날이 어찌 전개될지 모른다는 막연함이 불안을 느끼게 했다. 이후에도 불안을 동반한 불면은 규칙적으로 찾아왔다. 중요한 강의가 있던 밤에는 선잠을 자다 깨다 반복했다. 비몽사몽 상태에서 강의를 하다 돌아오는 날도 있었다. 분명 내가 선택한 결정이었는데 내 진짜 마음은 그렇지 않은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인생의 불확실성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직장이라는 울타리가 주는 안정감에서 벗어나자 나는 갑자기 무방비 상태에 노출되었다. 물론 딱히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준비도 어느 정도 한 상태였고, 또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도 정해놓은 상황이지만 직장이 주는 안정감이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 나는 아직 직장인의 때를 벗기지 못하고 있었다.

 

안정의 감정은 훈련의 결과이다. 직장인 대부분은 스스로 일을 할 때보다 누군가의 지시와 명령을 받아야 안정감을 느낀다. 안정은 편안함을 준다. 그러나 안정에 길들여지면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애를 쓰게 된다. 도전과 모험은 사라진다. 삶이란 도전과 시도를 통해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성장하는 것인데 이런 기회는 차단이 된다.

 

안정이라는 감정을 조금 깊이 들여다보면 거기에 불안이라는 어린아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 지금이 불안하기 때문에 우리는 안정을 갈망한다. 안정은 실제로는 불완전한 안정인 것이다. 직장을 다녀도 직장을 나와도 불안이라는 감정은 없어지지 않는다. 불안이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사람들은 불안감에 휩싸이면 그 감정의 해소와 상관이 없는 일을 하면서 ‘잘 될 거야’라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에 빠진다. 나 역시 그랬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허함이 종종 가슴을 휘감을 때 나는 군중 속으로 더 파고들었지만 혼자였다. ‘닦고 조이고 기름 치자’고 외치면서 성급하게 불안에서 탈출하려고 했고 그럴듯한 목표를 세우고 불굴의 의지로 돌파해야 하는 강박증에서 머뭇거렸다. 그러나 이제는 알게 되었다. 정당한 고통을 직면해야지 그것을 회피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그 누가 대신할 수 없다. 불편한 순간에 잠시 멈추고 있는 그대로 내 불안을 한번 바라보자. 정말 뭐가 얼마나 불안한지 일단 직면해야 한다. 그 과정 없이는 본질에 다가갈 수 없다. 나는 믿는다. 막다른 길에서 만나는 깨달음은 무엇에 비할 수 없는 강력한 자기통찰로 연결된다는 것을.

 

불안과 대면할 때 어른이 된다. 불안은 어찌 보면 삶의 본질적 요소인데 자기 힘으로 대처해본 적이 별로 없다. 늘 대신 해결해줄 사람을 찾는다. 그러니까 나이 먹어도 어른이 되지 못한다. 불안에서 벗어나려면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자기를 느껴볼 수 있어야 자기 확신이 생긴다. 요즘 주변을 보면 직접 몸으로 부딪히거나 자신을 시험할 수 있는 과정이 철저히 차단되어 안타깝다. 시행착오를 해보면서 의미를 해석하고 자기 확신으로 연결되는 선순환의 고리를 찾아야 한다. 여행이나 문화적 체험 등은 온몸의 세포가 다 살아나는 경험이고 우리가 충분히 할 수 있고 자기 객관화를 이루어내는 과정이다.

 

그러던 어느 잠 못 이루는 새벽, 인생은 어차피 불확실한 것, 불확실한 상황을 내 마음에서 받아들이고 파도를 타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지금의 일상을 그대로 유지하는 데서 오는 마음의 불편함이 앞으로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감수해야 하는 불안보다 크지 않느냐?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불안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것이다. 불안해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실제로 뛰어들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되면 불안은 작아질 것이다. 불안은 곧 불안에 대한 불안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런 생각이 솟구치자 불면은 차츰 사라졌다. 불안은 불안해하는 것을 현실로 만든다. 마치 청중 앞에서 발표할 때 실수하지 말아야지 하면 실수하게 되는 것처럼. 불안에 대한 불안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불안 자체를 겁낼 필요가 없다는 것, 불안의 포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 불안에는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 이것이 내가 떠날 때 얻은 첫 마음가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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