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書元
  • 조회 수 3084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4년 1월 18일 00시 14분 등록

오열이 터진다. 차량에서 내려진 운구의 행렬이 한줌의 가라앉음으로 변하는 화장장의 문턱으로 들어설 때 앞선 한 가족들의 슬픔은 함께 땅 끝으로 내려앉는다.

‘당신이 가면 나는 어떻게 살라고. 이 애들은 어떻게 하라고.’

한 여인의 곡소리는 이별을 전하는 그대의 발걸음을 부둥켜 놓지 않는다. 훠이 훠이 이승에서의 삶을 뒤로하고 하늘로 올라가는 그대의 살아온 역사와 흔적을 부여잡기에, 당사자나 놓지 않는 이나 서로가 망설여지기는 매한가지다. 이방인인양 지켜보던 우리가 이제는 그 차례가 된다. 매형이 어머님의 영정 사진을 부여잡고 얼떨결에 상주 역할이 되어버린 나 자신이 뒤를 잇는다. 세상 한가득 슬픔과 애환을 끝까지 놓아버리지 못한 그 시간의 굴레를, 이제는 풀어드리기 위해 또 다른 길로 향하는 그녀 앞에 우리는 차디찬 정신으로 임한다. 본인의 이름을 확인하고 살아있음의 생명을 상징하는 나무관속에 있던 식어버린 육신. 그 몸은 뜨거운 불의 화기 속으로 선선히 내어 들어간다. 한발 한발 내딛는 자욱 속에서 그녀는 어떤 상념으로 그녀를 지켜보는 이들은 각기 어떤 생각으로 거닐고 있을까.

 

꽃다운 나이 이북에서 월남한 생면부지 한 남자를 만나 인연을 맺고 평생의 언약을 약속하였던 당신. 그 앞에 배우자란 사내는 아무 책임감 없이 훌쩍 세상을 뜨고, 그렇게나 울음이라는 외로움을 토해내던 한 아이를 포대기에 앞으로 삶의 무게인양 짊어지고, 서울 밤거리 하늘 세찬 비속에 시뻘건 십자가의 문을 밤새 두드리던 그날 밤. 당신은 이렇게 절망했었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어쩌자고 자식과 나만을 남겨두고 떠나갔는지. 남겨진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가라고. 과부라는 타이틀의 이목 앞에 놓인 세상은 서슬이 퍼랬다. 선뜻 선량한 손을 내미는 이가 없었기에 어떻게든 자신 스스로의 힘으로 냉정한 땅을 딛고 일어서야 했다.

한겨울 차디찬 하늘 앞에 놓인 어느 날에도

뜨거운 더위가 아스팔트 땅을 녹일 듯 그 땀내 나는 어느 날에도

강도의 캍로 위협과 덩치 큰 사내의 주먹에 코뼈가 으스러져 자신을 추스르지 못한 어느 날에도

대머리가 벗겨진 전직 대통령의 거룩한 명을 받고 삼청 교육대란 명분으로 죄인 아닌 죄인의 낙인이 찍혀버린 그곳을 다녀온 어느 날에도

그녀는 사무친 현실을 기어이 부여잡고 철없이 칭얼대는 삼남매를 뒤로한 채, 자본주의 시장 색색의 종이돈을 벌기위해 그렇게 비틀거리는 몸뚱이를 부여잡고 그리도 그리도 삶의 터전으로 휘적휘적 향했다.

애비 없는 년은 자식복도 없더니만 이라는 읊조림이 한평생 그녀를 갉아 매고

착한 성격이라는 포장 하에 온실속의 보호초로만 자랐던 형이라는 작자는 그녀에 앞서 이승을 고하고

막내라는 여전히 세상모르는 놈은 그녀를 이제 이렇게 마지막 떠나보내는 입장에 섰다.

 

떠나는 자와 남는 자. 그들 앞에 빨간 전광판의 글씨는 생방송 프로야구 중계를 하듯 자막으로 상황을 실시간으로 내보낸다. ‘화장중’. 서글픈 몸뚱이는 천천히 울음을 내린다. 자신의 마지막을 지탱해주던 뼈들의 무게와 생명줄의 신호를 헐떡여 보내주었던 장기들이 하나둘 저승 불에 녹아내릴 때 그녀는 어떤 상념에 젖어들고 있을까. 한 많은 세상에서의 안녕일까. 마지막 고함의 덧없음일까. 자식들에 대한 절절한 애달음일까. 아니면 드디어 그 고된 무게의 형틀을 벗어버릴 수 있다는 처음 느껴보는 황홀한 자유감일까.

타들어가는 불길은 서로의 이별을 함께하는 가족들의 가슴에 식지 않는 불씨를 남겨주고, 여인으로써 아내로써 엄마라는 존재의 역할로써 보다는, 몸서리치는 애환으로 정수리에 각인된 한 많은 슬픔은 나에게로 고스란히 회신이 된다. 천상병 시인 자신은 이승에서의 삶을 끝내고 소풍을 떠난다고 했기에 그녀의 그 길은 설레는 즐거움일까. 아니면 놓아버리는 아쉬움 혹은 애써 부여잡고 싶은 거칠디 거친 손마디일까.

 

살아있음의 기록물을 끝내게 한 불길은 가족에게 거룩한 흔적 하나를 선물한다. 하얀 백지에 놓인 흰 가루들의 집합체. 그대의 또 다른 모습이다. 같으면서도 다른 존재. 살포시 천으로 감싼 몸뚱이는 새로운 터전인 오동나무 함에 담겨 나에게로 향한다. 식지 않은 아침 밥상의 모락모락 김이 나는 기운. 살아생전 해보지 못했던 따뜻한 포옹인가. 나는 그녀를 부둥켜안고 겨울 바깥세상으로 잠시의 외출을 떠난다. 어디로 가고 싶으세요. 어느 곳을 보고 싶은지. 당신이 그렇게나 사랑했던 형의 흔적 옆으로 가실래요. 아니면 잿빛 기억 저편 당신 남편의 그곳으로 모셔 드릴까요. 나는 산으로 향했다. 그녀를 품어줄 나무를 찾았고 태곳적 태어났던 처음 그곳 땅으로 몸뚱이를 뒤덮었다. 그녀의 세계는 끝이 아니, 추억을 머금은 이들의 가슴에 다시 봄 내음의 잔상을 흘려 살아있게 하겠지. 그대가 살아온 새로운 시간을 뛰어넘는 그 세기로.

 

하지만,

그때 그대가 울부짖던 울음을 되풀이해서 남겨진 이들은 부르짖고

그대가 그리도 거부하던 삶을 나 자신 기어코 움켜잡음에 멍울진 가슴은 오래도록 다시 일어섬은 거부할 수 없는 주어짐이겠지.

 

 

‘삶의 어둠을 견디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고통 역시 개인의 몫이다. 각자에게는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가 있고 나눌 수 없다. 우리는 각자의 짐을 지고 인생의 길을 가고 있다.’

- 구본형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p147

IP *.160.136.86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