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한 명석
  • 조회 수 8064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4년 1월 24일 10시 32분 등록

 

돌아가신 시어머니께서는 평생 동구 밖을 벗어나지 못하셨다. 차편이 귀하던 시절 걸어서 5일장에 다니신 것이 전부요, 차멀미가 극심하여 아예 나들이를 포기해 버린 것이다. 넷이나 되는 딸들이 타지로 나가 잘 살았지만, 딸네 집에 한 번 가시지를 못했다. 시어머니에게 세상이란 열여덟 세대가 사는 작은 마을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마흔 살에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갔다. 짧은 영어로도 홈스테이 안주인과 우정이 가능했던 뉴질랜드에서 나는 비로소 글로벌이라는 말의 뜻을 이해했다. 평면에 불과했던 세계지도의 곳곳에 실제로 존재하는 세상이 있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이었다. 내가 만일 청소년기에 해외여행을 갔더라면 포부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지금 내 꿈 중의 하나는 내 집처럼 드나들 수 있는 도시 세 군데를 품는 것이다. 내 관심과 동선과 활동범위가 그 정도면 적당하지 싶다.

 

선생님께서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상 하나에 대해 자주 언급하셨다. 세계가 아무리 넓고 사람이 아무리 많은들 정작 우리가 영향을 주고받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신 것이다. 시어머니가 존재하는 세상이 작은 마을이었고, 내가 열망하는 활동범주가 이국의 도시 세 군데에 불과하듯, 우리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는 세상은 그다지 넓지 않다. 서로 이해하고 존중받는 범위를 상정한다면 더 좁아질 수도 있다. 순간 나는 멈칫한다. 내 영역의 협소함에 진저리가 쳐진다. 아아! 나는 얼마나 작은가!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작은 세상이 곧 세계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하고, 살아있음의 경험을 나눈다. 나는 조촐한 글쓰기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갈수록 이 곳이 소중해진다. 내가 가진 전문성으로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이 사무치게 좋다. 나를 선생님이라 여겨주고, 내 말에 귀 기울이는 수강생들이 고맙기까지 하다. 나의 쓸모를 확인시켜주기 때문이다. 병석의 선생님께서 고맙다, 변경연!”이라고 하신 마음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의례적인 역할에 고착된 가족은 제외하자. 배타적인 종족유지 본능을 넘어 서로를 사랑하는 몸짓이 울타리를 넘어가는 가정은 인정한다. 먹고 살기 위해 버티는 직장도 제외하자. 조직과 구성원이 상생하는 건강한 의지를 가진 곳이라면 충분히 아름답다 하겠다. 이전에 없던 방식으로 돌연 신선하고, 스스로의 삶으로 주변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들에게 나는 열광한다. 그들이 주축이 되어 일군 작은 세상은 언제 봐도 각별하다. 부럽다.

 

나주 죽설헌의 박태후 씨. 그는 가난해서 수업료가 공짜인 원예고등학교를 다녔다. 그 때부터 집안의 자갈밭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말단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연금이 나오는 20년을 채우자마자 1996년에 그만두었다. 42세였다. 이제 40여 년이 흘러 울창해진 과수원은 주변의 강호 제현이 모여 노는 아카데미이자 살롱이 되었다. 공무원 연금 130만원으로 4인 가족이 살기에 충분했다고 한다. 5월부터 10월까지 보름 간격으로 열매를 수확할 수 있도록 유실수를 심었으며, 겨울에는 벽난로에서 고구마를 구워 먹는다. 노동에 치이지 않도록 아침에 한두 시간씩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 그림을 그린다는 그를 보면 언제 봐도 왕후장상이 따로 없다.

 

클래식 애호가인 정신과 전문의 박종호 씨는 독보적인 딜레당트(아마추어로서 예술을 즐기거나 창작하는 사람)로 꼽힌다. 클래식과 오페라에 관한 책을 열 권 이상 쓸 정도의 학식이 있는데다, 국내 최대의 클래식 음반 판매점 풍월당에서 각종 소공연을 이끌어 온 지 10년이 넘었다. 여행팀을 직접 인솔하여 유럽의 음악축제에도 간다. 저술과 강연, 여행의 삼박자로 자신이 사랑하는 영역에 헌신하는 열정, 꾸준히 성과물을 낼 수 있는 유능함, 자신의 세계로 이웃을 초대하여 함께 나아가는 리더십, 그리하여 마침내 전에 없던 라이프스타일 하나를 보태는 일! 나의 로망이다.

 

그러고보니 나도 첫 발은 뗀 셈이다. 누구보다 늦게 글쓰기를 시작했기에 인생의 중반에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의 심경을 잘 알고 있고 도와줄 수 있다. 외부접촉을 즐기지 않아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82 정도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 맞춤하다. 사람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가능성을 알아 봐 주는 일이라, 촉이 발달하고 의미중심적인 내 기질에도 딱 맞는다. 나의 조언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로 작으나마 풀이 형성되었다. 여기에 박태후 씨의 풍류와 장기적 전망, 박종호 씨의 도저한 전문성과 추진력을 더하여 좀 더 개성있고 소중한 공간으로 가꾸어 나가는 것이 나의 할 일이리라. 나의 기질과 언어와 가치관이 구현된 작은 세상! 일과 사람과 의미를 함께 추구하고 충족할 수 있는 곳, 그 곳이 바로 삶 자체임을 이 아침 새롭게 껴안는다.

 

나의 신화를 만들어간다는 것은 나의 세계가 없는 평범한 삶에서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의 세계 하나를 창조해내는 것이다.’

- <구본형의 그리스인 이야기> p18

 

 

*** 안내 1 : 제가 운영하는 카페 글쓰기를 통한 삶의 혁명에서 책쓰기과정 6기를 모집합니다. 글쓰기와 책쓰기를 함께 해결하는 전천후강좌라고 자부합니다.^^

http://cafe.naver.com/writingsutra/9985

 

*** 안내 2 : 김용규 선생의 자연에서 다시 시작하다강좌

변화경영연구소의 오프라인 카페 크리에이티브 살롱 9’에서 <숲에게 길을 묻다>의 저자 · 숲학교 오래된미래교장 김용규 선생을 모시고 2월 기획강좌 자연에서 다시 시작하다를 진행합니다. 김용규 선생은 마음편지의 목요일 필자이자 7년 넘게 자연과 대화하며 자연에 스며드는 삶을 실천해 온 숲철학자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주소를 클릭하세요.

- 강좌 소개 : http://www.bhgoo.com/2011/597861

 

 

 

 

 

 

 

 

IP *.209.223.59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