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김용규
  • 조회 수 2973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4년 1월 16일 00시 20분 등록

새해 첫날 먼 곳에서 벗과 그 가족이 백오산방을 찾아왔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온가족이 함께 여행을 하는 기회라며 기뻐했습니다. 또 성인이 된 두 명의 자녀들에게 내가 청년시절을 보내는 데 있어 어떤 귀띔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도 했습니다. 큰 아들은 이번에 환경교육 관련 학과를 선택해 대학에 입학하고 두 살 위의 큰 딸은 음악 선생님인 엄마의 재능을 받아 성악을 전공하며 교직을 병행 이수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내가 기억하는 벗은 워낙 의로운 선비의 모습이고, 부인 역시 따뜻한 학교 선생님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아들과 딸도 요즘 청년들과 달리 예의가 바르고 기상이 참 맑았습니다.

 

우리는 간소한 다과를 나누며 두 청년을 중심으로 즐겁게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 큰 정이 가는 아이가 하나 더 있었으니 그는 이 집안의 막내입니다. 갓 초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녀석이므로 형, 누나들과 터울이 제법 있는 셈이지요. 이 녀석이 가족들의 호칭을 부르는 방식이 참 재미있습니다. 꼬박꼬박 형님, 아버지, 어머니, 누님...’ 이렇게 부르는 겁니다. 처음에는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물론 나 역시 세 살 위의 형을 형님이라고 부르고 부모님 역시 같은 호칭으로 대하지만, 그것은 대략 대학을 들어갔을 때부터 시작한 호칭이었으니까 녀석은 상대적으로 아주 어려서부터 깍듯한 예절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어린 아이가 남다른 예의를 보인다는 것에 괜한 염려가 생겼던 것도 사실입니다. 혹시 어려서부터 지나치게 엄격함을 익히며 자라는 것은 아닐까? 내게는 그 엄격함이 부정적으로 작용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유년에 아버지를 꽤 무서워했습니다. 아버지의 심기를 거스를 경우 호된 꾸지람을 듣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삼십 대에 이르기까지 어른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당당하게 하지 못하게 하는 습관으로 작용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염려는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막내아들은 남다른 예의를 보이면서도 참으로 당당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아주 분명하게 표현했습니다. 예를 들면 죄송하지만, 저는 곶감보다는 귤을 더 좋아해요. ... 제가 입맛이 조금 까다롭거든요...” 하하, 뭐 이런 식이었습니다.

 

녀석은 또 궁금한 것이 있으면 쉬지 않고 물어 왔습니다. 자신의 집에는 없는 물건을 발견하면 그것이 무엇인지 관찰하고 만져보고 그 용도를 물었습니다.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면 그 사용법이 어떻게 되는가도 궁금해 했습니다. 방에 놓아둔 망원경을 발견하고 녀석은 그 괴상한 물건이 뭐하는 물건인지 스스로 이리저리 매만지며 탐구하더니 주저 없이 그 용도와 사용법을 질문해 왔습니다. 나의 벗은 염려하는 기색을 보였습니다. 형과 누나 사이에 대화가 단절되는 것도 그렇고, 남의 집 물건을 매만지는 것도 그렇고... 워낙 반듯한 사람이라 더욱 마음이 쓰이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벗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오히려 나는 막내아들의 궁금증과 그 표현, 그것을 해결해 보려는 모습이 무척 좋았습니다. 뒤늦게 공부에 눈을 떠가는 내가 공부와 관련해서 귀하게 깨친 것이 하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공부는 질문에서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알았습니다. 숲으로 들어오기 전 서울에서 숲 공부를 시작했을 때, 나는 제도권 교육 같았으면 절대 쉽지 않았을 질문을 마구 던졌습니다. 내가 숲 스승께 던졌던 몇 가지 질문들을 나는 지금도 확연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딱따구리가 둥지로 들어가는 장면의 사진을 보며 나는 여쭈었습니다. “사진을 보니 딱따구리는 들어갈 때 머리를 들여 밀며 앞으로 들어가는데 나올 때는 어떻게 나오나요? 꼬리부터 나오나요? 아니면 머리부터 나오나요? ... 환경에 따라 같은 나무도 정말 다른 선택을 하며 사는데 그 선택은 어디에서 이루어지나요? 인간은 뇌 같은 것이 나무에게는 없지 않나요? 정말 궁금합니다. ... 나무도 자살을 할까요? ...”

 

제도권 학교였다면 아마 나는 수업 몇 번 하지 않고 막바로 문제아로 낙인 찍혔을 것입니다. 입을 열면 선생님으로부터 핀잔이 쏟아졌을 테고,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스스로 질문을 차단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의 숲 스승님은 입을 틀어막지 않았습니다. 반복적이거나 유사한 갈래의 질문에 대해서는 눈치를 주셨지만, 새로운 질문에 대해서는 언제든 성심을 다해 안내해 주셨습니다. 당신이 모르는 질문에 대해서는 진심을 다해 서로가 답을 찾아가도록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나는 그때 정말 배우는 재미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고 그 과정을 통해 세상에 내 이름으로 책을 내고 나의 철학과 관점을 담은 독특한 주제의 강연을 할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나는 막내아들의 모습에서 그의 비범한 잠재력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 모두는 원래 그런 잠재력을 가진 존재였음도 떠올렸습니다. 유치원 아이들이 얼마나 소란한지,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의 수업 시간이 얼마나 시끄러운지 떠올려 보세요. 그들은 질문과 대답에 거침이 없습니다. 일방적 교육으로부터 상처받지 않은 그 시절에는 누구나 제대로 공부를 하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셈이지요. 바로 질문! 어떠세요? 자주 질문하고 계신지요?

IP *.20.202.74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