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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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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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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12일 10시 06분 등록

 

그곳은 어떤가요? 눈이 많이 왔나요? 눈을 어떻게 맞이했나요? 기뻤나요? 모처럼 순백의 세상을 만나며 감탄했나요? 헐거워진 나무 그 가지들 위에 쌓여 마치 그이가 겨울 꽃을 피워낸 것처럼 아름다운 장면에 두둥실 가슴이 차오르는 기쁨을 느꼈나요? 아니면 힘겨웠나요? 빠듯한 출근시간에 발을 붙들어두거나 약속시간을 지키기 어렵게 만드는 훼방꾼으로 느껴졌나요? 그래도 그곳은 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도로위의 눈이 치워지거나 녹아내렸겠지요?

 

이곳에도 눈이 왔어요. 쌓였지요. 아주 기뻤어요. 눈은 어떻게 저렇게 동시다발로 모든 공간을 채워낼 수 있을까? 하늘하늘 나풀나풀 헐렁헐렁 부정형의 간격으로 자유로운 춤사위처럼 내리면서도 어떻게 이내 온 천지를 하얗게 바꿔놓을 수 있을까? 눈이 그치고 쌓이면 새들이 떼로 날아올랐다가 흩어지고 다시 모여들고 내려앉고 다시 날아오릅니다. 이 애틋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은 눈이 쌓여 더욱 선명하게 들어오는 장면입니다. 이따금 여우숲 전체가 상고대를 만드는 장면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하지만 내게도 눈은 고민입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일이 불편해집니다. 나름대로 정돈을 해두지만 불쏘시개나 장작이 눈을 맞아 젖게 되면 연기를 맡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출타할 일이 있으면 더 난감하지요. 오늘 저녁에도 대전 남쪽 어느 숲으로 가야하는 일정이 있습니다. 눈이 내리고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도 나는 고민을 합니다. 강설량이 얼마나 되려나? 차를 평지까지 내려놓아야하지 않을까? 지난겨울 눈이 가득 쌓인 이곳에 4륜구동 SUV의 힘만 믿고 차를 몰고 올라오다가 오르막 끝부분에서 차가 멈추고 그대로 약 80m 정도의 경사를 거꾸로 밀려 내려갔던 경험이 선명하게 살아옵니다. 마치 거꾸로 봅슬레이를 타는 것처럼 아찔했던 그 순간...

 

하지만 나는 차를 저 아랫마을 어귀까지 내려놓지 않기로 결정하고 뜨거워진 구들에 배를 깔고 누워 맛있게 읽던 책을 봅니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처마 밑에 가지런히 쟁여둔 대빗자루가 선명합니다. ‘어차피 눈이 쌓이면 길을 터야하니까.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몇 백 미터 눈을 쓸고 내려가지 뭐... 지금은 순백으로 바뀌어가는 이 풍경과 구들의 따뜻함을 누리는 일에 오직 집중하자고.’

 

처음 몇 해 동안 나갈 일이 있는데 눈이 내리면 참 난감했습니다. 풍경에 감탄을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걱정이 일었고 다급한 상황에서는 짜증스러운 마음마저도 일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눈이 오면 눈을 쓸고 길을 트는 일이 지극히 당연하고 심지어 기분 좋은 시간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 후로 나는 내 삶에 닥쳐오는 일상의 난관을 대하는 자세마저 바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취하는 그 자세 중에 하나는 이렇습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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