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승완
  • 조회 수 2572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3년 12월 17일 07시 49분 등록

며칠 전 열쇠가 고장나서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열쇠로 문에 달린 자물쇠를 잠글 수는 있는데 어쩐 일인지 열쇠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자물쇠가 망가진 것일지도 모릅니다. 1시간 가까이 끙끙대다가 포기했습니다. 열쇠가 고장나면 자물쇠는 소용이 없고, 고장난 자물쇠와 열쇠의 관계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득 그 즈음 읽고 있던 이현주 선생이 쓴 <사랑 아닌 것이 없다>에 나오는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여기에 열쇠가 있음은 저기에 자물쇠가 있음을 뜻한다. ‘여기’와 ‘저기’는 시공(時空)의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언제나 함께 있는 ‘여기’다. 마찬가지로 열쇠와 자물쇠도 늘 함께 있다. 열쇠는 자물쇠 때문에 있고 자물쇠는 열쇠로 말미암아 있다.”

 

이현주 선생은 열쇠를 잃어버려서 아파트 문을 열지 못하다가 새 열쇠를 손에 들고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손에 쥐어진 ‘열쇠’가 말을 건넵니다.

 

“안에 있는 자는 열쇠를 몸에 지니지 않네. 왜냐하면 안에는 자물쇠가 없으니까. 아무것도 잠그지 않는 세계가 ‘안의 세계’지. 안에 있으면 거기에는 장벽도 없고 문도 없어. 문이 없는 데 자물쇠가 어찌 있으며 자물쇠가 없는데 열쇠가 어찌 있겠는가? (...) 열쇠란 ‘바깥에’에 있는 자한테만 있는 물건이거든.”

 

이게 뭔 소리인가. 열쇠가 말을 하다니! 열쇠랑 대화를 나눈다고? 그렇습니다. <사랑 아닌 것이 없다>의 부제는 ‘사물과 나눈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사물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일까요? 그의 말을 들어보지요.

 

“한동안, 제 눈과 귀를 사람이 만들어낸 것에서 돌려 사람을 만든 것으로 모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눈에 띄는 대로 사물들과 대화를 시도해 보았지요.

 

사람도 사물이요 나무도 사물이니 말이 안 통할 리 없지만, 하도 오래 서로 말을 나누어보지 않아선지 사물들과 대화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더군요. 무엇보다도 대화에서 먼저 중요한 건 내 말을 잘하는 것보다 상대의 말을 잘 듣는 일인데, 그러려면 내 생각 내 판단을 비워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더란 말씀입니다.”

 

그래서 연습 삼아 주변의 사물들과 진지하게 대화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런 연습을 통해서, 제가 풀이고 풀이 저라는 진실을 몸으로 한번 저리게 깨닫고 싶었습니다.” 물론 풀은 풀이고 사람은 사람입니다. 경계가 명확하지요. 하지만 때때로 꽃에서 사랑을 보고 사랑이 꽃으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경계가 흐릿해 집니다. 공감의 궁극입니다. 꽃과 사랑이, 그녀와 내가 온전히 합일 되는 순간도 있습니다. 무경계입니다. 풀이 내 안으로 들어오고 내가 풀 안으로 들어갑니다. 내 안에 그녀가 살고 그녀 안에 내가 존재합니다. 열쇠와 자물쇠가 필요 없는 사이, 서로 안에 있는 관계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서로 안에 있는’ 관계가 될 수 있을까요? ‘쓰레기통’이 이현주 선생에게 한 말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사물을 볼 때마다 마음을 모아서 주의 깊게 보아라. 그렇게 주의 깊게 볼 때 너는 네가 보는 사물과 함께 깨어나게 된다. 그런 일을 되풀이해라. 습관이 되도록 반복해라. 하루아침에 비밀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런 일은 일찍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호박씨’도 힌트를 줍니다.

 

“후광(後光)이란, 성인(聖人)들 머리가 아니라 그것을 알아보는 눈길에 있다네. 자세히 그리고 그윽하게 보시게. 존재하는 모든 것에서 후광을 보게 될 터이니.”

 

틱낫한 스님도 말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우리 안에 있는 행복의 씨앗에 매일 물을 줄 것인가? 기쁨 배양하기, 사랑 실습하기가 바로 그것이다. 마음 모으기 에너지를 지닐 때 우리는 이런 수행을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을 모으지 않고서 어떻게 아름다운 가을의 황금 들녘을 볼 수 있겠는가? 내리는 비의 기쁨을 어떻게 느낄 수 있겠는가? (...) 마음을 모으는 일(mindfulness)은 우리로 하여금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낙원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주의 깊게 보기는 관찰(觀察)이 아닙니다. 관심(關心)도 아닙니다. 관찰은 육안(肉眼)으로 보기이고 관심은 심안(心眼)으로 보기입니다. 관심에서 나온 관찰, 관찰에 의한 관심이 주의 깊게 보기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모아서 보면 겉과 속을 모두 볼 수 있고, 그러면 나와 너 사이의 경계는 흐릿해져 마침내 ‘우리’가 됩니다. 내가 바로 그것이고, 그것이 바로 나입니다.

 

 

20131217-1.jpg

이현주 저, 사랑 아닌 것이 없다, 샨티, 2012년

 

 

* 안내 : 하루 2시간의 자기혁신 ‘단군의 후예’ 12기 모집

변화경영연구소에서 ‘하루 2시간 자기혁신’ 프로젝트 <단군의 후예> 12기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100일간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는 새벽기상 습관화와 새벽활동 수련을 통해 1만 시간의 법칙을 실천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세요.

 

20131217-2.jpg

 

 

IP *.34.180.245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