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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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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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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19일 00시 37분 등록

 

모처럼 지게를 지고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틈날 때마다 장작을 패서 쌓아두고 있지만, 덩어리가 큰 장작에 불을 붙게 하려면 마땅한 크기의 잘 마른 불쏘시개가 꼭 필요합니다. 숲에 눈이 가득 쌓이기 전에 불쏘시개로 쓸 작은 나뭇가지들을 주워 아궁이 옆 한 켠에 쌓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더 근원적인 이유는 고요해진 겨울 숲을 걷고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했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이야말로 방 안에서보다 훨씬 깊은 침묵과 비움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동지를 앞 둔 겨울 숲의 오후 네 시 반은 어둠이 내리기까지 한 시간도 남지 않은 시간입니다. 곧 어둠이 내릴 것입니다. 하지만 숲에서 홀로 이 어둠을 만난 시간이 벌써 팔 년, 내게는 어둠이 다가서는 시간에 쫓겨 서두를 일이 없습니다. 그늘에는 눈이 쌓였고, 빛이 좋은 자리에는 눈이 녹아 있습니다. 눈이 녹은 자리에는 잿빛에 다시 검은 물감을 섞은 듯한 빛깔의 낙엽들이 축축히 젖은 채로 쌓여 있습니다. 그 위로 검은 빛깔의 말채나무 열매가 수북이 쌓여 있기도 하고, 어느 자리에는 산사나무 열매가 드문드문 떨어져 있습니다. 이따금 일본잎갈나무 솔방울이 작은 가지와 함께 떨어진 자리도 나타납니다.

 

열매가 떨어진 자리에 선명한 흔적이 남은 나무들도 있습니다. 층층나무가 그렇고 말채나무가 그렇습니다. 나무들의 겨울눈은 모두 당당하게 제 꼴로 달려 겨울을 견디고 있습니다. 비목나무의 꽃눈과 잎눈은 씩씩하고 앙증맞습니다. 생강나무 꽃눈에는 살이 한 가득 오르고 있습니다. 가죽나무나 개복숭아나무의 꽃눈에는 털이 덮여 있습니다. 이 나무와 저 나무 사이에 드리워진 어둑함을 재빨리 가르며 날아가는 새 몇 마리가 눈길을 이끕니다. 한동안 지게를 채울 생각도 잊은 채, 그렇게 숲의 겨울 풍경으로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얼마가 지났을까요? 일본잎갈나무가 떨어트린 긴 나뭇가지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털 장화를 신고 쌓인 눈 위를 밟으며 이곳저곳을 뒤져 땔감을 주워 모았습니다. 금방 반 짐 가량 지게를 채웠고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게 작대기를 짚고 비탈길을 내려올 즈음 공간 모두는 어둠으로 변해갔습니다. 동쪽 먼 하늘에 보름달에 가까워진 달이 떠올랐습니다. 이제 곧 별들도 하나 둘 제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나무에게도 어둠, 새에게도 어둠, 멧돼지나 고라니, 토끼에게도 어둠이 놓이는 시간입니다. 모두는 족히 열두 시간 넘게 어둠의 시간을 보내야 빛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마련해 온 불쏘시개를 잘게 잘라 아궁이에 붉을 지폈습니다. 어렵지 않게 불이 붙었습니다. 조금씩 더 큰 나뭇가지들을 넣어 불을 키우다가 더 큰 장작을 올리고 제법 굵은 통나무 한 토막까지 집어넣었습니다. 굴뚝에서 뽑아 올린 연통으로 연기가 점점 더 힘차게 솟아오릅니다. 마침내 아궁이의 문을 닫았습니다. 어둠은 더욱 짙어졌지만 달빛의 위력도 더욱 커졌습니다. 별빛도 훨씬 선명합니다. 말 그대로 깊은 고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평화로움에 젖어 짙어진 밤 숲의 빛깔과 어둡고 푸른 하늘빛과 별들을 오랫동안 바라보았습니다.

 

내게는 한 없이 깊어지는 시간, 참 좋은 시간이 종종 저 어둠과 함께 찾아옵니다. 나는 나무들도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무와 풀들은 늘 두 방향으로 자라니까요. 그들은 빛을 향해 하늘로도 자라지만, 어둠을 향해 땅 속으로도 자랍니다. 오늘 나는 모든 성장이 그렇게 두 방향이 어우러져 완성을 향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어둠을 지우거나 피해서 이룰 수 있는 성장은 없을 것입니다. 어둠을 통해 더욱 단단해지고 깊어지는 것! 틀림없이 성장을 관통하는 하나의 법칙일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어두운 시간, 어두운 측면 만나더라도 내 삶의 절망이 되게 하는 일 없어야 하겠습니다. 오히려 단단해지는 시간, 단단해지기 위한 측면이 되도록 애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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