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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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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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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10일 19시 39분 등록

산에 가기 위해 사직서를 썼다

 

내 체구는 왜소하다. 체력도 좋지 못했다. 무엇보다 부러진 다리로는 결코 세계최고봉을 오르지 못할 거라는 사실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세계 최고봉 등정 계획은 출혈을 감수한 막대한 물력이 투입되므로 승산 없는 자가 끼어들어 물을 흐릴 수 없는 노릇이다. 맞는 말이다. 고소 등반에서는 제 아무리 체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제 몸 하나 간수하기 어렵다. 더구나 체력도 되지 않는데 의욕만 앞서 나서게 되면 자신은 물론 팀 전체에 불확실성만 높인다. 혹여 사고라도 난다면 다른 원정 대원들에게 심적, 물적 부담과 함께 원정대의 등정 가능성을 빼앗는다. 다른 대원들에게도 일생 대의 큰 꿈이었을 세계 최고봉 등정 기회를 잃게 하고 팀웍을 무너뜨릴 수 있다. 옳다. 그래서, 나는 갈 수 없다.

 

생각해보니 나는 직장에 매여 있는 처지였다. , 이제 막 뛰놀기 시작한 세 살배기 아들에게 아빠가 가장 필요한 시기였고 다리가 부러진 사고의 이력이 여전히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니는 사람이었다. “그 다리로, 애 아빠가, 일 안하고 어딜…” 순간 쓴 웃음이 흐른다. 무슨 염치로 원정에 참여할 수 있단 말인가. 조용히 뜻을 거두고 마음속으로 원정을 접는다. 접어야 한다. 접었다. 뜻을 꺾으니 편하다. 히말라야 원정에 참여했을 때 겪어야 할 가혹한 주변정리와 주위 사람들에 대한 불필요한 저항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회사에서는 또 어떻게 두 달간 자리를 비울 것인가. 혹여 비울 수 있다 하더라도 뒷날 겪게 될 불이익과 후사는 불 보듯 뻔하다. 회사에서 휴가 문제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집안의 평지풍파는 어떻게 잠재울 것인가. 삶이 사나워지겠다. 조용히 살면 이 모든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시때때로 울컥 솟아오르는 악마적 갈등 또한 멈추질 않았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를 유혹한다. ‘이미 떠나지 않기로 마음먹은 일이지 않은가. 불기둥에 차가운 물을 뿌려라.’ 파우스트가 말한다. ‘아니다, 부인하지 마라 네 욕망에 솔직하라.’ 메피스토는 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많은 송사는 어찌할 것이냐, 아서라, 삶이 시끄러워질 뿐이다. 거기는 사지(死地)일뿐더러 떠나 있는 기간 동안의 가족 생계는 어찌하려느냐.’ 파우스트는 반문한다. ‘가지 못한 너를 견딜 수 있겠느냐. 애써 이 떨림을 누를 필요는 없다.’

 

가슴 속 불덩이를 자신에게 도저히 숨길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좋다. 나는 계약한다. 내가 원정에 참여 하는 대가로 잃어야 할 것이 있다면 잃겠다. 그러나 지금, 여러 사람에게 공언하진 말자 대신 혼자 조용히 준비를 시작하겠다. 내가 그곳에 가지 말아야 할 이유는 23일 동안 쉬지 않고 읊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그곳에 가야 할 이유는 단 하나였다. 현실에 질식 당하던 내 꿈.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란 말인가

나는 장고에 들어갔다. 꿈이냐 밥이냐를 놓고 잠들 수 없는 밤이 3일간 지속됐다. 밥보다 꿈이 먼저라는 결론을 내리는데 잠은 중요하지 않았다. 첫 날부터 고민의 중압 때문인지 식욕이 사라졌다. 나에게 물었다. 삶은, 밥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는가. 고민할 것 없다. 밥이 먼저다.

 

이틀째 날, 헝클어진 머리 그대로 출근했다. 가슴에 물었다. 꿈이 사라진 삶의 모습은 어떠할까. 그 새벽, 떠나지 못한 나를 보았다. 구질구질하게 살아보려 애쓰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다 말하며 살고 있었지만 흐릿하고 풀린 눈을 하고 있었다. 인화성 짙은 사건들을 애써 피해간 삶의 무늬를 온 몸에 두르고 있었다. 가지 못한 길을 언제나 그리워만 하고 있었다. 사람들 앞에선 언제나 주뼛주뼛 했고 내 아이에겐 제 아비의 삶에 대해 해 줄 말이 없었다. 쥐어 박히면 쥐어 박히는 대로 얻어터지면 얻어터지는 대로 살고 있는 나를 보았다. 어릴 적, 입이 찢어져라 해맑게 웃던 밝은 아이는 사라지고 굳게 다문 입술의 무표정한 얼굴이 유일한 표정이 되어 살아가고 있었다. 그 많던 꿈은 죄다 사라지고 그나마 남아있던 흰 산 오르려던 꿈도 현실에 밟혀 종식됐다. 왜소했지만 하나의 작은 우주로써 몸부림치던 인생 하나가 무너져 있었다. 현실에 얻어터지는 중에 신화는 없던 일이 되었다.

 

사흘째 되던 날 입술이 부르텄다. 하늘에 물었다. 자신의 오지를 찾아 나서라는 음성을 들었다. 터진 입술이 됐을 때, 나는 불현듯 허리를 곧추 세우고 정좌했다. 나는 그제야 나를 찾아 나선다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알아차렸다. 두려웠지만, 내 앞에 놓인 내일부터가 진정한 내 영토가 될 것임을 직감했다. 나는 오지로 들어서기로 했다. 그것도 가장 어두운라는 수수께끼 숲으로. 그 곳에는 아무런 길도 없다. 만약 그곳에 어떤 길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누군가의 길이다. 그것은 나의 길이 아니다. 누군가의 길을 따라 간다면 내 자신의 잠재력, 기쁨, 행복을 깨닫지 못할 것 같다. 그러나 그 길에 반드시 따르는 고통과 고난이 나는 또한 두렵기도 했다. 3천 년 전, 오이디푸스라는 사내가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 자신의 수수께끼를 풀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마침내 알고 난 뒤, 천륜을 거스른 인간적 고통에 두 눈을 스스로 찌르고 왕의 자리를 박차고 거지가 되어 세상을 떠돌 수도 있다. 나는 졸리지 않는 눈을 감는다.

 

나흘째 날이 밝았다. 나는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됐을까.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어떤 사소한 결정에도는 없었다. 다 해져 빛 바랜 바지를 입고 다녀도 입이 벌어지는 가격에 허름한 옷을 그대로 입고 다녔고 나에게 근사한 저녁 한번 산 적 없었다. 학교를 가라 해서 학교를 다녔고 돈 벌어야 사람 구실한다 해서 취직했다. 그리하면 나도 여느 어른들처럼 훗날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꼬박꼬박 월급 받기 위해 회사 이익에만 충실히 복무하고 있었으며 부잣집 종살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었다. 머리 젖히며 즐거워야 할지금은 없고 보이지도 않는 미래가 지금을 가득 채웠다. 미래를 위해 지금을 헌납하는 자들이 생을 대하는 태도는 가엾다. 말 잘 들어 취직했지만 자신의 꿈과 전혀 맞지 않는 일 그리고 회사, 미끈한 그네들의 자세와 반듯한 목소리 너머로 무력한 청춘은 자신도 모르게 압살된다. 안정된 생활 속에 제 모든 걸 가두고 그저 회사의 일에만 발 벗고 나선다. 결국 나도 거친 현실에 내 욕망과 꿈은 표면처리 되어 밋밋해지고 종국엔 개미만큼 작아진 이름만 유골함에 새기고 세상을 떠나게 될 터. 평범함으로 똘똘 뭉친 나에게 묻는다.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살 것인가? 잊혀 진 것을 회복할 것인가?

 

나도 절벽에 두 다리를 흔들거리면서 이 세상에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고 싶다. 누르면 눌리고 짜내면 내 마지막 진까지 내어주는 삶을 걷어차기로 한다. 씨발, 나도 한번 춤추듯 살아 보리라. 다른 사람이 시켜서 사는 삶이 아니라 내가 내린 결정으로 내 삶을 한번 살아보리라. 생의 단명한 그 맛을 나는 봐야겠다. 준비되지 않아도 해야 할 때가 있다. 아무도 내가 준비되기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저질러야 비로소 준비 되는 때가 있다. 내 혀끝으로 맛보는 인생을 살리라. 실험으로 가득 찬 삶, 그 환장할 우연에 인생을 걸리라.

 

사표를 쓰자

출근해서 아직 아무도 오지 않은 사무실 책상에 정좌 하고 사직서를 썼다.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 다 쓴 사직서를 작업복 안주머니에 품었다. 편했다. 그리 편할 수 없었다. 아주 긴 싸움을 스스로 끊어낸다. 생각해보니 이 지리하고 길었던 싸움의 상대는 표면적으론 직장이라는 현실이었으나 한 꺼풀 벗겨진 적장의 얼굴은 내 자신이었다. 나를 깊이 몰라 벌어졌던 사달이었고 내 자신을 내면으로부터 한 번도 길어 올리지 못해 빚어진 스스로의 불찰이었다. 지난 밤 긴 고민의 성과는 어렵사리 내린 출정의 결정이 아니라 나를 스스로 깊이 대면해 봤다는 것이고, 내 안으로 들어가 겁에 질려 웅크리고 있던 나와의 잔잔한 대화였다. 나는 나를 안아주었다. 어찌 그리 나에게 미안했던가. 꼭 안았던 어깨를 풀었다. 눈물도 닦아라. 표정을 고치고 자세도 고쳐 앉는다. 상무님께 장문의 편지를 썼고 내가 내린 결정을 차분하게 앉아 글줄에 담아 보냈다. 나는 직장에서 내 거취를 두고 하는 줄다리기를 그만 두고 불필요하게 쏟은 고민의 에너지를 훈련에 쏟기 시작했다.

 

여전히 가슴에는 사직서가 있었고 나는 겁나지 않았다. 사직서는 또 하나의 내 자신이었고 내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사직서는 다른 사람이 시키는 길대로 갔던 삶에 대한 경멸이었고 내 인생에 대한 독자적 기획이자 아침에 일어나 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급행 티켓이었다. 두려움이 사라진 충분한 이유다. 반듯한 인생, 상처 없는 인생을 걷어찼다. ‘다친 다리, 상처 많은 다리가 미끈한 다리보다 튼튼하다. 누군가에게 업혀야 한다면 튼튼한 다리를 골라야 한다.’ 상처투성이 인생, 잘 산 인생이라 믿는다. 나는 반듯한 인생과 정면으로 붙어보기로 했다. 나서야 할 때 나서지 않고 갈등해야 할 때 갈등하지 않는 건 비겁한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것을 신중함이라 부르며 심미적으로 채색하지만 실은 겁에 질려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는 비겁함이다.



IP *.161.53.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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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1 10:57:02 *.94.41.89
[ 세상은 그것을 신중함이라 부르며 심미적으로 채색하지만 실은 겁에 질려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는 비겁함이다. ]


존재의 위대함을, 다시금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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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2 14:43:18 *.52.38.80

예전에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

 나는 모든 사람이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시합에 나가면서 그들을 선동했었습니다.

" 나는 지금,  이길 수 없는 시합에 나가기 위해서 너희들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다. 이길 수 없는 시합에 나가는 것은  마치 이길 수 없는 전쟁에 자살하라고 등 떠밀려 나가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그것은 내 사전에 없는 일이다.

그러나 보라 인류 역사에 남은 전쟁의 기록을 보라.  그것은 모두 시작하기전에는 이 길 수 없는 전쟁이었다.

내게는 세계 무대에서의 경험과 충분한 지식과 방법 그리고 튼튼한 심장이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너희의 굳건한 믿음이다. 왜나면 시합은 너희가 하며, 고통스런 훈련과 인내의 산을 넘어야 하는 것도 너희들이기 때문이다.     

이기기 원한다면 너희 허약한 몸과 마음은 오늘 이 곳에 묻고 내일 다시 태어나라,

그것이 싫다면 강요하지 않겠다. 떠나라.  비록 살아있는 동안 내내,  도망친 이순간을 후회할 지 모르겠지만 . . .  

남아있는 이들에게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해 우리가 함께 한 이 순간들을 기억할 때 자랑과 긍지를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 


 우리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그들 뿐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 그리고 세계 펜싱사에  잊혀지지 않는 순간을   남겼습니다.

(세계 랭킹 200 위 밖에 있는 선수 4명, 그중 2 명은 선발될 때 국제시합을 한 번도 뛰어 본적이 없는 선수로 키 160 정도의 3명과  170 1명의 선수가 세계 랭킹 1위 3위 5위 7위의 올림픽 우승 후보였던 독일을 8강에서 이기고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습니다.)   


-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을 때,  시간이 멈추어선 그 순간에 오직 하나의 질문에 답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이 길에 마음을 온전히 담았느냐?"    -니케의 미소를  보았는가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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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3 09:06:33 *.78.108.44

씨발 나도 한번 춤추듯 살아보리라. 

내 혀끝으로 맛보는 인생

그 환장할 우연. 


*

눈가엔 흐릿한 무엇이

입가엔 흐뭇한 미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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