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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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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17일 18시 54분 등록

나는 내 삶의 주인인가?

 

월급쟁이라는 오줌통

회사 얘기를 조금 더 해야겠다. 월급쟁이가 두 달 넘게 자리를 비운다는 것, 그것도 제 좋아 가는 것이고 마침 그곳이 사람이 죽어 뉴스에 오르내리는 히말라야라는 것, 쉬울 수가 없다. 회사에서 내 낌새가 어느 정도 드러날 무렵, 그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사람들은 내가 정말에 가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친하게 지내던 일부 동료들에게 내 뜻을 확실히 그러나 조금은 느슨하게 말 해 놓았으나 언제나 반신반의였다. 이때 그룹 사장단의 대폭적인 인사이동이 단행된다. 당시, 지난 5년간 회사가 속한 업계는 초호황기를 구가했으나 ‘08년 말 불어 닥친, 이름도 생소한 sub prime 모기지 사태, 리먼 사태 등으로 회사는 끝이 없는 침체 중이었다.

 

모두들 이번에 새로 올 신임 사장은 사장이 아니라 과장 수준의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까칠하기로 정평이 나있고 특히 재무 분야에 정통하며 타이트한 관리로 아래 사람들이 결재와 보고 때마다 곤욕을 치른다는 말이 떠돌았다. 아니나 다를까 신임 사장은 부임한 직후부터 회사의 기치를마른 수건도 다시 짠다로 내 걸었고 덮어놓고 매주 토요일 오전 근무 실시안이 공포됐다. ‘무쇠주먹 위에는 부드러운 벨벳장갑을 껴야’함에도 회사는 불황을 핑계로 내/외적으로 밑도 끝도 없는 긴축을 강요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돈놀이가 내 처지를 콱 움켜잡았다. 뭔가 거꾸로 가고 있었다. 억압된질서는 항상 뒤쪽을 바라본다는 말은 정확했다. 어렵사리 만들어진 좋은 문화들이 후퇴됐다. 회사의 진취성과 상상력은 질식됐다.

 

회사는 설상가상으로 내가 몸담고 있는 부문의 수장으로 그룹 내에서는 악명 높은 3인방 중 한 사람인호랑이 상무를 내정시킨다. 그 분은까칠한 김대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고까칠한 김과장으로 불리는 사장을 수년 간 보좌해온 사람이었다. 이로써 모든 사람들이 기피하는 경영진, 그러니까 호랑이 3인방 중 첫째와 둘째가 내 직속 상사로 배치됐다. 결과적으로 그룹의 주력 회사이니만큼 가용한 모든 관리력을 집중하는 차원에서 있을 수 있는 인사 조치였으나 딴 짓을 계획 중인 나로서는 있어서는 안 될 최악의 패착이었다. 회사의 모든 사람들은 이내 곧 긴 겨울의 동면 모드에 들어갔다. 팀장들은 호랑이 상무의 지시 하나라도 빠뜨릴세라 주말도 없이 동분서주했고 사장님과 상무님의말씀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확성기를 입에 댄 채 임직원들에게 전파하기 바빴다. 회사의 모든 사람들은낫질하는 속도보다 더 빨리 자라는 풀을 베기 위해 매일 소진되고 있었다. 보기 안쓰러운 발버둥 속에서내 얘기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보이지 않았다. 현실은 공고한 벽을 쌓는 중이지만 이에 대항하여 전열을 가다듬을 미네랄이 나에겐 없었다.

 

나는 내 삶의 주인인가?

이런 중에도 훈련은 계속되었고 마음은 초조해져만 갔다.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해 일요일 오후까지 무박으로 계속되는 혹독한 훈련이 끝난 다음날 다시 출근한다. 어젯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는 회사 직원들에게 멀쩡한 놈처럼 보여야 했다. 바쁘게 돌아가는 직장에서 제 개인의 일로 아쉬움과 편의를 토로하며 예외로 치부되기는 싫었다. 그래야 갈 수 있다 생각했다. 에베레스트혼자 중얼댄다. 밤새 걸었던 산들이 회사 모니터에 그대로 박힌다. 당시, 휴지를 항상 주머니에 휴대하고 다녔다. 언제 어디서 저도 모르게 흐르는 코피 때문에 곤욕을 치른 일이 많았다. 업무보고를 끝까지 마친 후 화장실로 달려가 흐르는 코피를 무표정하게 닦았다. 그래야 비장하다 생각했다. 그리고는 다시 지긋지긋한 훈련에 자신을 구겨 넣는 냉혈한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의 위치는 회사에서 가장 많은 일을 해야 할 과장 직급이었고 팀 내에서는 팀장 다음의 두 번째 위치였기 때문에 큰 프로젝트가 떨어질 때 마다 모든 걸 주도해서 업무를 이끌어나가야 했다. 주말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황에서 훈련을 위한 월차나 휴가를 내는 건 언감생심이다. 그러나 원정은 휴가 수준을 넘어 휴직이 아니면 갈 수 없었다. 원정의 총 기간은 출발일과 도착날짜까지 짧게는 70일에서 길게는 90일 정도 소요된다. 어림잡아 두 달 반 정도는 고스란히 원정을 위해 써야 하는 날이 그렇다. 막막해져 온다. 그러나 휴직은 말도 꺼내기 힘든 상황이다.

 

그 즈음, 대원 구성이 마무리되고 본격적인 훈련이 계속되자 산악회 내에서도 내 거취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우리가 즐기고, 가려는 산이 생계까지 져버리며 떠나야 하는 곳인가,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산을 위해 우리 삶을 과연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고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는가. 근본적인 질문에 모두 제 일처럼 밤을 새워가며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의 배려와 회사에서의 휴직이 관철되지 않는다면 참가해서는 안 된다는 명확한 결론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다. 나는 확인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꿈은 회사와 가족을 위해 언제든 물러설 수 있는 후 순위에 배치해 놓고 있다는 것을.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보니 이 사태는 큰 산 하나를 등정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나는 내 삶의 주인인가를 묻고, 확인하는 문제였다.

 

사직서와 휴직서를 같이 들이밀다

한 달여, 꽤 긴 시간이 흘러 상무님은 나를 따로 불렀다. 나는 상황이 종국에 이르고 있음을 직감했지만 여차하여 얘기가 잘 되지 않을 때에 조용히 내밀 사직서를 품고 상무님 방엘 들어갔다. 보내준 편지를 잘 읽었다 했다. 내 뜻이 여전히 유효한가 물었다. 그리 많은 얘기를 나누진 않았다. 나는 휴직서와 사직서를 동시에 내밀었다. 3일 뒤, 인사팀에서 내가 제출한 휴직서가 담당 상무의 최종 결재를 거쳐 접수됐다 했다. 대표이사에게 보고해야 했던 인사팀장은 자초지종이 듣고 싶다 했고 나는 조곤조곤 말했다. 인사팀은 사례 없다는 말을 되풀이 했지만 이미 나는 상관없었다. 그래도 일단은 휴직서가 접수된 터라 절차에 따라 진행됐고 이튿날 사장님이이 바쁜 와중에…’ 한 마디 하시고는 내 휴직서에 최종 서명했다는 말을 들었다.

 

회사 내에서는 모두가 불가능할거라 했다. 오늘 대표이사 결재를 마지막으로 보기 좋게 넘어 섰다. 에베레스트를 이미 오른 듯하다. 나는 현실보다 강하다. 네팔 행 비행기가 뜨기 3일전의 일이다. 마음을 먹고 사직서를 쓴 다음,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일이 스스로도 놀라웠다. 대표이사의 허락이 있은 직후부터 홍보팀에서는 갑자기 사진을 찍으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고 내 과거사에 대해 인터뷰하며 요란을 떨었다. 회사는 내 사연을 지역신문에 개제했고 도전의 아이콘으로 추앙했다. 요란함은 승자의 전리품 같이 부산했다. 싫지 않았다. 이로써 긴 싸움을 승리한다.



IP *.161.53.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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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8 18:43:11 *.133.149.97

그렇죠,^^  모든 꿈과 소망은 믿음과 열정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현실이 됐죠 ^^ 


뜻을 세우고도 이루지 못했다면  

아직 그 뜻이 간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 니케의 미소를 보았는가  p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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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3 02:44:52 *.215.153.2

매 순간 순간 열정적인 삶이 엿보입니다. 

글 제목인 "나는 내 삶의 주인인가? "가 제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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