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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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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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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24일 17시 19분 등록

어제 월급쟁이, 오늘 히말라야

 

어제까지는 월급쟁이였고 오늘, 목줄이 풀린 내가 되었다. 지구별 용마루에 오르기를 학수고대했던 시간들이 마치 지금을 위해 존재한 것 같다. 지난 수많은오늘들이 장대 끝에 깃발을 올리며 내 승리를 승인한다. 아마 나는 정상에 오르지 못할 것이다. 아무려면 어떤가, 내 승리는 산을 올라야 완성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미 오른 것이나 진배없다. 네팔 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게 내가 오른 산이다. 그것이 내 목적이었다. 벼랑 끝까지 몰고 간 내 고민이 나를 키웠고, 허벅지가 터지는 훈련으로부터 배웠고, 일상을 끊어내는 단절로 정신적 근육을 굴곡지게 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비행기는 카트만두에 미끄러져 내렸다. 지상에 닿는 쿵 소리, 이제는 물러설 수 없고 빼도 박도 못하는 내 처지의 음성버전이다. 후끈 달아오른 네팔 땅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마른 입술에 굵은 침을 삼켰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 했는가, 흉내 내는 삶에서로 살아갈 앞으로 두 달여 간 원정기간은 그래서 기쁜 일이기도 하다. 고개를 꺾으며 춤 출 수 있는 시간, 내 생애 가장 위대한 시도, 가슴팍에 사직서를 붙들고 다니며 얻어낸 70, 최선을 다 한다, 다짐한다.

 

네팔의 낯선 공항에서, 마중 나온 우리 팀, 등반 셀파(Sherpa)인 치링, 옹추, 따시를 처음 만났다. 어설프게 웃어 보이는 중에 나는 마치 그들이 꿈에 보던 저승사자 같았다. 그들은 내 목에 꽃으로 만든 아주 긴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환영한다는 뜻일 텐데 나는 왜 느닷없이 꽃상여를 떠올렸을까. 그러고 보니 내 가슴팍에베레스트 원정대라 새겨진 오바로크는 검정 바탕에 흰색 실로 되어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흑백의 영정사진을 상상했다. 꽃상여는 뭐고 영정사진은 또 뭔가, 앞서지 마라.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산에서 죽어 내려오는 나를 지운다.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길, 카트만두(해발 1,320m)의 살인적인 매연이 목구멍을 갈라놓는다. 거리에는 시커먼 먼지를 덮어쓴 사람들이 시커멓게 오글대며 까맣게 있다. 희고 긴 치마를 입은 여인이 옆구리에 아기를 둘러매고 빠르게 걸었다. 사람들은 팔을 높이 들며 얘기했고 여기저기 무리 지어 있었다. 생경한 언어가 갑자기 소란스럽다. 녹이 쓴 오토바이가 쌩하고 내 눈앞을 지날 때, 비로소 나는 두려워졌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로 가는 상행 카라반이 시작되었다. 남체(3,200m, 마지막 마을) 를 넘어 텡보체(4,100m,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사원이 있는 곳)로 간다. 메마른 공기로 인해 입안은 항상 갈라지는 소리를 내는데 청포도 사탕을 입에 물고 이쪽 뺨에서 저쪽 뺨으로 굴려 보냈다. 사탕이 굴러간 궤적을 따라 없던 침이 생겨나고, 사라질 것 같던 인적 없는 오솔길이 입안에 침이 생기듯 열린다. 햇살이 내 척추에 내린다. 고소증세를 이겨내고 맑아진 머리는 내가 살아온 중에 가장 쾌청했다. 고소에 적응되자 죽을 것 같은 두통은 사라졌다. 머리를 두 쪽 내고 꺼내어진 뇌를 바람에 씻어 날리니 풍욕 된 뇌는 제 혼자 구만리장천을 걷는다. 사무실 모니터를 바라보는 일 외에는 어떤 미래도 어떤 장소도 나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소심했던 내가 히말라야를 걷고 있다. 그 눈부신 아침을 맞이했고 햇살아래 기뻐하며 그지 없이 걷고 있다. 경이로운 일이다. 사실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은 없다. 어떤 일이든 일이란 항상 밀려 있는 법이다. 밀린 일들을 밀어내고 산으로 갔더니 산은 왜 이제 왔냐는 듯 나를 바라본다. '밉다는 걸 게다.'

 

죽음의 지대

이방인을 맞는 에베레스트의 인사는 살갑지 않았다. 베이스캠프(5,400m)로 입성하던 날 처음으로 우리를 반긴 건 숨 막히는 호흡과 구토였다. 시시 때때로 내리 꽂는 눈사태의 엄청난 굉음에 몸을 움찔거리며 깜짝깜짝 놀랐다. 내 몸에 두려움이 충혈 된다. 낮아지는 산소포화도와 요동치는 맥박은 여기가 신의 영역임을 알려 주었다. 에베레스트는여기는 너와 같은 미물이 머물 곳이 아니다를 자신의 온 몸으로 말하고 있었고 희박한 산소로 내 숨통을 조여 오며 없는 식욕까지 모두 앗아갔다. 견디기 힘든 두통에 두개골을 부수어 뇌를 꺼내고 싶었다. 두려움에 떨수록 두려움은 커졌고 두려움이 다른 두려움을 낳았다. 마음은 오르기를 원했고 몸은 내려가기를 바랐다. 나는 살고 싶었지만 내가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목도해야 했다. 탱탱했던 피부가 늘어져 갔고 윤기 빠진 허벅지 살이 말라빠진 껍데기로 변하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았다.

 

산소 없는 8,000m 지대에서 4일을 보냈었다. 1초라도 더 있다간 죽을 것 같은 시간이 4일 동안 이어졌다. 먹는 족족 토해내야 했다. 배가 고팠지만 먹을 수 없었다. 오늘은 자야지 하며 낮에 터벅터벅 걷는다. 잠이 와서 미칠 것 같지만 텐트를 찢는 바람과 혹한에 잠을 잘 수 없다. 인간은 지상에서 모든 가혹한 곳에 여신의 이름을 붙여 두었다. 초모룽마 (티벳에서 부르는 에베레스트), 사가르마타 (네팔에서 부르는 에베레스트)대지(만물)의 여신이라는 의미로, 나는 지금 그녀 안에 있다. 뾰족하게 솟은 검은 봉우리에서 일견, 남성성을 연상할 수 있겠지만 여기는최초의 인종을 낳고문을 닫아버린 죽어있는세계의 음부. 황폐다. 그곳은 고함치지만 아무도 듣지 못하는 역설의 현장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내 민 낯을 보았다. 이곳은 생명을 아우르는 땅이 아니었다.

 

등반이 중반으로 접어들 무렵 4월 어느 날, 내가 있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시신 한 구가 빙하를 뚫고 떠올랐다. 주위사람들은 최소 10년 전 Ice fall 지대 (바위를 바수며 장대하게 흐르던 빙하가 가파른 경사를 만나 무너지며 생긴 빙하의 조각들이 ice fall이다) 에서 추락사한 사람으로 추정했다. 오랜 시간 동안 빙하가 융기와 침식을 거듭하면서 시신과 함께 움직였다 했다. 빙하가 움직이는 동안 사지(四肢)는 찢겨 나갔고 몸통만 이제야 지상으로 떠올랐다고 했다. 셀파들은 으레 있는 일인 듯 간단하게 염을 마쳤다. 미처 수습하지 못한 팔과 다리는 수색하기를 포기하고 몸통만 있는 시신을 아랫마을 롯지 (히말라야 산장) 로 운구했다. 지켜보던 나는 엄숙했고 두려웠다. 나는 빙하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내 눈 앞에 움직이는 빙하가 죽은 사람을 싣고 다니고 있었다. 나도 그 위에 실려 있다. 거대한 빙하는 그대로 여기를 뚫고 나간다. 이 무거운 덩치는 몇 천 년 동안을 바위 위에 얹혀 져 갈아내고 부수고 누르고 저항하는 것들을 흐물흐물하게 만들었을 터다. 인간의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억울하고 안타깝지만 내 실체는 살아있는 거대한 짐승의 터럭 끝에 매달린 미물이었다. 

 

그날 저녁, 히말라야의 다른 산, 마나슬루 (8,163m, 세계 8위봉, 히말라야 8,000m 이상14개 봉우리 중 8번째 봉우리) 로부터 비보가 날아왔다. 네팔 카트만두에서 우리는 한국의 다른 팀과 함께 이틀 동안 같은 숙소에 묵었었다. 그들은 마나슬루로 출정했고 등정 후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기를 약속하며 나란히 원정길에 올랐었다. 그렇게 그 팀과 헤어지고 한 달 뒤, 나는 그 팀의 전도유망한 산악인 2명을 히말라야 신께서 데려갔다는 소식을 시퍼렇게 날 선 바람과 같이 들었다. 우리는 등반을 중단했다. 참담한 소식에 한동안 슬픔을 가누지 못했다. 윤치원, 까만 얼굴에 무뚝뚝했던 사나이, 웃을 때 아이 같던 눈은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다. 그는 탈진한 후배를 끝까지 끌어안으며 지켰고 결국 산이 되었다. 박행수, 인사성만큼이나 밝은 표정,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눈매, 한 달 뒤 이 자리에서 꼭 다시 만나 삼겹살 먹자 하던 그의 붉은 두 입술이 잊혀 지지 않는다.

 

이듬 해 시신으로 발견된 박행수 대원의 손에는 장갑대신 양말이 꼭 끼워져 있었다 한다. 그날 그들의 상황을 짐작하려 눈을 감았다. 화이트아웃에서 절규하는 그들의 3D 환영이 온 방을 감싸다 이내 환한 웃음으로 바뀐다. 더 이상 가누기도 힘든 두꺼운 옷은 입지 마시라. 걷기조차 어려운 무거운 신발과 배낭을 이젠 내려놓으시라. 자신의 천복(天福)을 좇아 흰 산에서 영원히 사는 법을 택한 두 악우님의 명복을 빈다. 영면하시라. 그리고 여전히 살아남은 나, 그들의 죽음을 살아 있는 나와 연결시키며 나를 살려 달라했고 지켜주시라 빌었다. 두려움은 두려움으로 끝나지 않았고 제 자신을 위한 비열한 기도로 이어지고 있었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옆 까마귀를 보며 생각했다. 오를 수 있을까. 캠프 주변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돌들이 부러웠다. 나는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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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5 19:02:07 *.133.149.97

글의 내용이 진실하지만 잘 쓰셔서 그런지  흥미진진함이 더 느껴지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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