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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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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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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27일 08시 59분 등록

한 걸음씩 겨울에 다가서고 있습니다.  
저는 추위를 싫어해서 겨울이 오면 동남아로 대피하곤 합니다. 재작년엔 태국 치앙마이에서, 작년엔 베트남에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아무데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운 마음으로 이전 여행기록을 들춰보았습니다. 아, 마침 작년 기록이 있군요. 

작년 이맘때 2주 동안 베트남을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하노이로 입국해 며칠 머물다 남쪽으로 흘러 흘러 호이안과 달랏을 거쳐 호치민으로 들어갔습니다. 북부 하노이는 가을날씨 정도로 좀 쌀쌀했지만 남쪽의 호치민은 그야말로 불타는 여름 날씨입니다. 베트남은 2번째인데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드는 곳입니다.  베트남엔 다른 동남아시아에선 볼 수 없는 ‘눈빛’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더운 기후에 사는 사람들은 명랑한 성격에 온순한 눈빛을 가지고 있는데, 베트남 사람들의 눈빛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작지만 강단이 있고, 그들의 눈을 보고 있으면 뭐라도 해보겠다는 굳은 결의와 의욕이 느껴집니다. 그런 눈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흐뭇해집니다. 세계를 여행하면서 그 눈빛을 본 곳이 딱 3군데 있었습니다. 베트남, 쿠바, 그리고 한국. 모두 여러 의미로 호락호락하지 않은 곳들이죠. ㅎㅎㅎ   각설하고.

호치민에 머무는 동안 자주 가던 반미집이 있었습니다. 반미는 베트남식 샌드위치인데 간단하게 한끼를 해결할 수 있고 맛도 좋아 현지인들도 즐겨 먹습니다. 이곳은 천 원이면 속이 꽉찬, 아주 맛있는 반미를 팔아서 하루에 한 번은 갈 정도였습니다. 그 반미집 맞은 편에는 체구가 자그마한 중년의 아주머니가 앉아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못생기셨는데, 그도 그럴 것이 온 몸에 화상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드러난 살갗은 온통 검붉은 화상흉터로 뒤덮였고, 얼굴도 화상을 입어 코와 입은 진작에 사리지고 두 눈만 동그랗게 파여 있었습니다. 건강하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고, 일을 할 수도 없고, 돈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보이는 아주머니를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건 어떤 걸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과연 아줌마의 삶은 어떤 가치가 있는 걸까?  저는 돈이 있어야, 행복해야, 아름다워야, 건강해야, 능력이 있어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야 가치있는 삶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제 앞에 있는  아주머니는 그 중 어떤 것도 갖고 있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하루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사실 삶에 의미는 별로 필요없는 게 아닐까? 그냥 주어진 명대로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 자체가 가치 있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아주머니가 너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좋은 삶을 사셨으면 좋겠다는 마음만 들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담아 얼마간의 돈을 드리고 오는게,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습니다.    

따끈한 반미를 사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 제가 머무는 숙소 건물에 사시는 ‘할머니’를 만나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제가 있는 숙소는 호치민의 중심지에 위치한 5층 건물입니다.  이곳 2층 계단에는 박스를 깔고 사시는 할머니 한 분이 있었습니다. 집이 없어서 그곳에 사신다고 들었는데, 건물 입구에서 종종 할머니를 마주치면 마음이 좀 쓰였습니다. 제대로 식사는 하시나.   

마침 할머니 생각이 나서, 오늘 반미는 할머니를 드리려고 가져왔습니다. 다행히도 할머니를 현관에도 마주쳐서 따끈한 걸 그대로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반미를 드리자 할머니가 조금 놀라셨습니다. 왠 사람인가, 했던 것 같습니다. ㅎㅎ 따뜻한 식사를 드리고 나니, 기분이 좋습니다.  나눌 수 있어서 좋았고, 할머니가 따끈한 걸 드실 생각을 하니 또 기분이 좋았습니다. 할머니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저는 저와 관련된 일이 아니면 신경을 쓰지 않는 편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나고 남은 남’이었는데, 그 경계가 흐물흐물 해지더니 내가 남처럼 느껴지거나 남이 나처럼 느껴질 때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온 몸에 고단함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나, 마음이 힘든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많이 쓰입니다. 너무 아프지 않게, 조금 더 건강하게, 조금 더 행복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분들의 소식이 밤낮으로 들립니다. 아직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괜히 마음이 더 추워집니다.  그 마음에 군불을 때려고 괜히 지난 여행 이야기를 한 조각 꺼내봤습니다. 오늘 마음편지에는 군불 땐 것처럼 따스함을 보내고 싶습니다. 부디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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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7 10:35:18 *.133.149.97

마음이 따뜻해지는군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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