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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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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29일 21시 42분 등록

160 정도의 키에 유독 큰 눈, 그래서 더 유별나게 처량한 눈가의 깊은 주름살, 무릎 수술로 불편한 왼쪽 다리 탓에 뒤뚱거리며 걷는 노파, 배우지 못해 바닥까지 드러난 지식의 간소함으로 세상에 속고 넘어져 가난한 인생. 그녀가 나의 어머니, 이 진순 여사다.


어머니가 충청남도 시골마을에서 태어나서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고 나를 당신의 첫아들로 출산하기 전인 24년 동안은 어떤 삶을 사셨는지 나는 잘 모른다. 어렴풋이 어머니의 형제들로부터 들었던 기억은 있으나 내가 너무 어렸을 때 들었던 터라 가물가물하다. 다시 그들로부터 어머니의 꽃다운 젊은 시절에 대해 듣고 싶어도 남북통일만큼이나 골이 깊은 이념적 갈등이 우리를 갈라놓았다.


십여 년 전, 외할머니의 유산 문제로 그들에게 감정의 칼부림 같은 배신을 당한 어머니를 울분을 토하며 옆에서 지켜본 내가 어찌 그들에게 나의 눈과 입과 귀를 열고 어머니의 꽃다운 24년을 듣고 앉아 있을 수 있겠는가?


나는 과감히 어머니의 처녀시절에 대한 기억은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나와 이 세상에서 함께 한 49년의 어머니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유능한 영화감독이 나와 어머니의 49년을 2시간짜리 영화로 상영해 준다면 고마울 만큼 기억에 남는 장면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만큼 나는 내 삶에만 도움이 되는 지식으로 내 제한적인 뇌의 용량을 채웠고 꽉 찬 용량 중 어머니 기억을 휴지통에 버리고 다시 돈이 되는 지식만 채워 넣은 결과라고 단정한다.


#나의 욕망 그리고 후회


그리고 이제야 후회한다. 이젠 제법 정리가 된 것 같다. 누가 나를 납치하여 감금한 후, 셋 셀 동안 나의 어머니에 대해 한 단어로 말하라고 윽박지른다면, 나는 한치 망설임도 없이희생이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그만큼 어머니를 이용했다.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어머니에게 윽박질러 돈을 구해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때만큼은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잔소리하고 화를 낼 때 보다 더 찢어지는 소리를 냈으리라. 적어도 어머니 심장은 그렇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 못된 철없는 행동은 내가 당진의 한 시골 중학교를 졸업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골 중학교에서 반에서 1등을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니다.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와가면서도 시험 보기 하루 전 공부만으로도 성적의 맨 앞에 내 이름을 올릴 수 있음은 시골의 훈훈한 인심과 닮아 있었다. 반에서 1등은 좋은 점이 있었다. 내 친구들은 그래도 유복한 가정에서 공부 좀 하는 아이들로 채워졌다. 내가 그들을 유혹했다기보다는 그들이 나를 불쌍히 여겼기 때문이리라.


나의 친구들은 시골의 중학교를 졸업하면 대전으로 유학을 가기로 했다고 한다


유행처럼 유복한 아이들은 모두 가난한 교육이 판치는 시골을 떠나는 것을 영웅적인 결정을 한 것처럼 으스댄다. 그들과 친구인 나는 어느 순간 내 가정 형편도 그들과 다름없다고 착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해서는 매달 고정적으로 하숙비를 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욕망은 화가 되어 어머니를 공격했다. 농사일밖에 모르는 아버지는 화만 내고 어머니에게 알아서 하라고 책임을 떠넘긴다.


어머니는 내 욕망의 하숙비를 벌기 위해 낮에는 농사일을 하고 저녁에는 식당 일을 나가셨다. 농사를 짓지 않는 겨울에는 보험설계사로도 일했다. 하숙비가 어떻게 벌려 내 하숙집 주인에게 바쳐졌는지 애써 알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캐나다 어학연수를 가기 위해 대학교 시절 휴학까지 하면서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그때도 나는 대전으로 유학 가려고 졸라대던 중학교 3학년 때의 나를 카피하고 있었다. 그 동기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역시나 친구들이 하기 때문에 나도 해야 했다.


나는 발에 무좀이 있다. 치료를 해도 6개월 지나면 재발한다. 내 아내와 딸들은 징그럽다고 내 발을 멀리한다. 아이들과 한 달에 한번 인천 부모님 집에 인사차 들를 때면, 어머니는 내 발바닥을 거친 두 손으로 어루만진다. 어루만짐은 가엾다는 한숨과 함께 10분을 넘기고 20분을 넘긴다. 희생은 사랑처럼 뜨겁다.


49년이란 긴 세월을 희생만 하며 사신 나의 어머니가 앞으로 49년을 더 산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힘든 일이다. 어머니가 희생한 세월과 동일한 날짜를 계산하여 내가 보답하기엔 나도 어머니도 이젠 모두 늙었다. 그래서 더 애절하다.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어머니가 더 그립고 눈물이 난다.


그래도 기회는 있다


이 세상의 일이 모두 2,500만 년을 주기로 되풀이해서 일어난다고 미국의 천문학자 홀은 말한다. 비록 그가 만들어 낸 유머라고 해도 이 말이 사실이길 나는 간절히 소망한다. 그래서 나의 어머니와 윤회와 윤회를 거듭하다 2,500만 년이 지나 다시 만나길


그리고 나는 나의 엄마의 엄마로 태어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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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1 03:59:45 *.52.38.80

집에는 커다란 절구통과 공이, 가마솥이 있었다. 지금은 민속촌에나 가야 볼 수 있는 그런 환경, 수 많은 전쟁을 겪고 피난과 가난을 겪었던  어머니 삶,  남도의 작은 섬에서 태어나 여자가 무슨 공부냐는 시절에 혼자 글을 깨우치려 친척의 아이를 돌보며 공부하던 어머니, 대 목수였던 아버지와 살면서도 대통령 자식 낳겠다던 어머니 , 공부 잘하고 운동 잘해서 장학생에 지원금까지 준다는 사립에 안 보내고  있는 집 자식 과외시켜서도 못가는 명문고에 들여보내시며 판검사 모여살던 동네에서도 꿇리지 않고 당당하시던 어머니,  동지 섣달에도 내가 시합을 하면 찬물로 목욕재계하고 떡해놓고 기도하고 기도하던 어머니, 독립운동하러 떠나셨던 시어머니 행방을 알 수 없어도 긍지를 갖고 기원하던 어머니,  그 어머니를 보살피라고 대통령배 우승한 후 커다란 트로피들고 귀향한 나를 보시고 기뻐하시던 아버지가 내게 마지막으로 당부하시며 떠나셨다. 그렇게 독일 유학의 꿈을 미루고, 45년이 지나도 버리지 못하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정상인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여러번의 수술과 질병과 절망속에서도 다시 또 다시 일어나 칼을 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사랑하는 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하던 전쟁은 바로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위한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환갑의 나이가 된 지금에도 꿈을 꾼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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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s
2020.12.01 22:48:36 *.232.180.62
그래도 두 부모님중 한분에게는 은혜를 받았네요.
전 두분 모두에게 은혜를 못받았거든요.
유치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보다는 낫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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