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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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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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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1일 17시 39분 등록

죽음의 지대

 

급격한 사면에 황량히 뻗은 선명하고 가느다란 길. 저 길을 가면 내 꿈도 나오고 기쁨도 나올 테지만 어쩌면 좌절이나 패배, 슬픔도 나온다. 물끄러미 길을 노려보지만 외려 길은 휘어지고 숨고 나타났다 다시 끊어지며 나를 농락한다. 저 길을 가야 한다. 밑도 끝도 없는 사역동사가 이미 사라지고 없는 힘을 쥐어짜라며 보챈다. 이 끝없는 고도와의 싸움은 내 몸뚱아리 중 어느 하나가 잘리거나 내가 죽어야 결국 끝이 날까. 생각은 두려움을 향해서만 치닫는다. 느닷없이, 내 몸으로부터 나온 내 아들이 나를 보우해 줄 것만 같다.

 

고소증세는 거의 모든 것으로부터 의욕을 빼앗아갔다. 밥을 먹는 것도 물을 마시는 것도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도 귀찮았고 벌 수십 마리가 내 머리에 들어앉아 돌아다니는 듯했다. 급하게 혈관확장제를 털어 넣는다. 약발이 빨리 듣기를 기도하고 고통이 나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기도했다. 신앙과 종교는 나약한 인간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 했던가, 그 발명을 향유하는 무리에 끼지 못한 나를 자책하며 나를 죽이지 마라 기도하고 이겨낼 수 있게 해 달라 기도했다. 기도했다. 또 기도했다. 무기력한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다. 기도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내 모습을 보는 일이 괴로웠다. 해발 3,400m, 상보체, 머리채를 쥐어 잡고 급하게 펜을 들었다. 틈 날 때마다 끄적이던 엽서는 유서가 되었다.

 

히말라야 원정의 성패는 고산병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있다. 고소증세는 원정기간 내내 끼니처럼 따라 다닌다. 인간이라면 예외 없다. 남대문 지퍼 내릴 힘이 없어 누군가 지퍼를 내려줘야 소변을 본다. 무기력이 온 몸을 지배해 시커먼 크레바스를 가로지르는 알루미늄 사다리 앞에서 주저앉는다. 다리에 힘이 풀려 드러눕고 일어서고 다시 드러눕기를 몇 번인지 모른다. 귀에는 벌이 날아다니고 머릿속은 소주3병을 들이킨 다음 날의 숙취와도 같다. 잘 수 없는 것, 먹지 못하는 것 모두 고소증세다. 자신이 보고도 믿을 수 없고 태연 하려 해도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고통은 또 어떤가. 아서라, 혀를 내 두른다. 머리도 흔든다. 고소증세만 생각하면 에베레스트 쪽으로 오줌도 누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도 훌륭한 치료법은 있다. 내려서는 것이다. 올랐기 때문에 아픈 것이다. 고개를 쳐들고 계속 오르려는 인간에게 자연이 베푸는 자비는 없다. 비단 산에서만은 아닐 것. 잊어서는 안 된다. 무조건 내려가야 한다. 고소증세는 고도를 높이면 어김없이 나타나고 고도를 내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거짓말처럼 없어진다. 신이 오만한 인간에게 주는 근사한 처방이다.

 

어느 날은 밥 먹다 트림이 나왔다. 트림으로 호흡의 밸런스가 깨져 100m 달리기를 한 듯 숨을 헐떡였다. 밥을 넘기기가 매우 힘들다. 한 숟갈을 뜨고 하늘을 몇 번 쳐다보고 다시 한 술 뜨기를 식사가 마칠 때까지 계속한다. 매 끼니마다 이 짓은 반복된다. 잘 들어가지 않음에도 억지로 먹는다. 먹은 만큼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불문율이 있다. 숟가락 놓기 전에 세 번 더 먹기. 토할 줄 알면서 세 번을 더 퍼 넣고 숟가락을 놓는다. 마지막 하나까지 꾸역꾸역 넣어라. 그래야 산다. 먹는 게 노동하는 것 마냥 힘이 든다.

 

진도를 나가보자. 이번에는 똥이다. 모두 토하고 물과 스프만 먹고도 나오는 게 똥이다. 신기할 따름이다. 에베레스트에서 똥을 눌 때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심호흡 크게 하고 똥을 눈다. 바지 벗는데 만도 호흡은 이미 가빠온다. 똥을 누기도 전에 숨이 차기 시작한다. 본격적인 본론으로 들어가면 황천길을 왔다 갔다 한다. 똥이 먼전지 호흡이 먼전지 참으로 난감하다. 똥을 누려면 호흡을 할 수 없어 힘을 줄 수 없고, 호흡을 하려면 힘을 주지 못해 똥을 누지 못한다. 엉덩이가 얼어가는 건 둘째 문제다. 오래 앉아 있자니 숨은 넘어가고 그냥 일어나자니 마음먹은 게 아깝다. 그 곳은 자꾸 얼어간다. 결국 성공하고 텐트로 들어가면 대원들의 축하의 박수가 터진다. 으슥하다.

 

등반은 어김없이 계속된다. 캠프3를 오르며 드러눕고 다시 서고, 다시 드러눕고를 반복한다. 피로한 몸은 공중분해 될 것 같고, 지친 다리는 힘을 잃어간다. 그러나 젠장, 매정하게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너무도 선명하다. 기침을 격하게 해서 갈비뼈 가 부서진 것 같은 느낌, 몸은 받아들이지 않지만 먹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역설, 진이 쏙 빠져 피곤해 미칠 지경이지만 호흡곤란과 추위로 잠을 이룰 수 없는 황망함. 70도 각도의 빙벽이 천 미터로 뻗은 로체페이스”에 확보 줄을 걸고 기대면 가슴이 답답해 호흡을 할 수가 없다. 앞발로만 서 있어야 해서 발이 아팠으나 수직의 빙벽에 발 디디며 쉴 곳은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지만 혼자 울음을 참아가며 캠프3에 올랐다. 막상 나를 기다리던 후배와 대장님을 보니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힘들고 서럽고 억울해서 캠프3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서로의 어깨를 부여잡고 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그렇게 서러울 수 없었고 이 고통을 누구에게도 얘기할 수 없었다. 그날 밤은 또 어찌 그리 추웠을까. 영하 40도의 추위에 황량한 설사면에 선 텐트 한 동, 세 명이 침낭 2개로 날 밤을 샜다. 모두들 제대로 자지 못했지만 내가 잠시 눈을 부쳤을 때 침낭 하나를 온전히 다 덮었던 모양이다. 분명히 반 만 덮고 잤었는데함께 울던 동지가 적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오래 됐지만 지면으로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그렇게 캠프3 고소적응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나는 히든 크레바스(hidden Crevasse) 에 빠졌다. 다쳤던 왼쪽 발목에 통증이 심해 혼자 뒤쳐져 하산하는 중에 사단은 벌어졌다. 빙하와 빙하 사이의 큰 틈을 크레바스라 하는데 그 틈이 눈으로 덮여져 있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크레바스를 히든 크레바스라 한다. 크레바스인지 알 수 없어 이 위로 사람들이 그냥 지나가지만 어느 순간, 덮인 눈이 싱크홀처럼 꺼지는 현상이 발생하는 데 이 때 재수 없이 그 위를 지나는 사람은 빠지게 된다. 나는 불행 중 다행으로 이 크레바스에 온 몸이 빠졌으나 양 팔이 빙하 사이에 걸렸다. 그래도 빨리 빠져 나오지 못해 추가 함몰이 발생하면 꼼짝없이 지옥과 같은 시커먼 틈 사이로 떨어진다. 아무도 없는 설벽에 혼자 고함쳤다. 죽을힘을 다해 허공을 파닥거렸다. 어찌나 발버둥을 쳤던지 곡절 끝에 올라와 앉으니 사지에 힘이 풀려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었다. 용을 썼으니 사생결단의 심호흡이 이어진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내가 빠진 구멍만 시커멓게 뚫려있다. 오줌이 나올 뻔했다. 바람은 또 왜 그리 미친 듯이 불어 대는지. 크레바스 빠진 경험은 혼을 빼놓았고 경황이 없는 중에 오른손 우모장갑이 유유히 바람에 날아가고 있었다. 내 신세 같이 흐느적거리며 날아간다. 화를 낼 힘도 없이 날아가는 장갑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본다. 느닷없는 물음이 번개같이 내리친다. 나는 왜 이 곳을 오르는 걸까? 산에 가면 밥이 나오나 돈이 나오나? 왜 이런 거지같은 일들이 벌어지는가? 이리 힘든 곳을 왜 그리 박박 우기며 왔을까? 지옥 같은 에베레스트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다. 그것은 목숨을 내어 놓는 일이기 때문에 내 아들이, 친구가, 우리들의 누이, 오빠가 오른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아래가 보이지 않는 설벽에서 자칫 미끄러져 추락하거나 심각한 고산증세로 숨이 넘어가고 폐에 물이 들어차거나 동상으로 손끝, 발끝이 썩은 나목과 같이 시커멓게 변해갈 때 그대는 그대의 목숨을 내놓고 죽어가는 이를 살려낼 자신이 있을 때 가야 하는 곳이다. 히말라야는 그런 곳이다. CF의 연예인들이 미끈한 얼굴을 하고 나와 하얀 설산에 둘러싸여 형언할 수 없이 기쁜 표정으로 멀리 동트는 햇살을 바라보거나 히말라야의 밝은 달빛아래에서 누구도 누릴 수 없는 밤을 즐긴다. 우리감수성을 사로잡고 있는 오늘날의 문화는 본질에 있어서 허구. 이런 허구가 히말라야의 모습들을 침범하여 상품성을 높이는데 활용되는 것이 거북살스럽다. 그런 아름다운 모습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눈사태와 악마의 입, 크레바스에 빠져 발버둥 치는 산악인들의 모습이 환영처럼 보이는 것은 나 만이겠는가.

 

나는 지구촌의 히말라야가 거기를 오르는 자들만의 것이라는 유아적 소유욕을 드러내고자 하는 게 아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히말라야로 가, 지겹기 짝이 없는 회사인간의 탈을 벗어내기를 누구보다 희망한다. 단조로운 인생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 단조롭지 않은 길로 들어서기를 온 마음을 다해 바라고 있으며 그 단초가 히말라야에서 시작되었음을 나의 사례를 들어 담담하게 소통하고 싶다. 바람을 타고 날아 영혼을 모이스처하는 그곳으로 내 아는 모든 사람들을 데리고 수백 번 다녀오고 싶다. 그러나 다만, 오르는 일 자체가 상업화 되고 상품화 되는 것을 경계한다. 탐험과 극기의 가치가 자본화 되고 돈벌이의 수단이 될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그곳을 오르는 자에게 돌아가는 장면을 누누이 목격했다.

 

해외 일부 국가에서는 뛰어난 현지의 가이드를 고용하고 경험 있는 등반가들을 모집하여 대규모 상업원정대를 꾸리고 자금을 쏟아 붓는다. 8,000미터 이상을 오른 인간의 가치를 허구적으로 각인시키고 참가자들은 그 허구성에 부응하여등정자의 지위를 스스로 부여해 너도나도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을 지불하고 개고생에 동참한다. 일생 동안 단 한 번도 아이젠으로 걸어보지 못한 사람들, 안전벨트를 처음 메어보는 사람들, 피켈을 난생 처음 매만져 보고 양끝을 들어 신기한 듯 이러 저리 살피는 사람들을 데리고 히말라야를 오른다. 단언컨대 그 사람들이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이상, 사고는 예견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위험을 당하면 서로를 돕지 않기 때문이다. 철저히 허구로 치장된 히말라야의 모습을 돈으로 처바른 결과는 죽음이다. 일반인들을 호도하여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산을 상업화 시킨 인간들에게 주는 혹독한 시그널이다. 히말라야에서 극기와 탐험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동료의 죽음을 보듬고 동상으로 까맣게 변한 발을 씻어줄 수 있어야 한다. 눈사태 속에서 동료의 이름을 부르고 떨어진 크레바스 속으로 제 몸을 던질 수 있는가? 올해도 어김없이 히말라야에 등반 시즌이 찾아왔다. 매년 상업등반대의 사망자가 늘어간다. 안타까운 죽음이다. 에베레스트는 현재까지 누적 사망자수가 300여 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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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1 21:39:47 *.133.149.97

어떤 영화였는지 잘은 모르지만 만년설이 있던 산을 오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 내용으로 기억한다.

"도대체 왜 그렇게 거기에 가고 싶어 하는 거예요 ? "  

그러자 대답했다.   "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거기 가보면 알게 되겠지 ! "  

----- 

선수가 물었다 

" 오래 서있을 수도 없는데, 왜 시상대의 맨 윗쪽에 서려고 하는거죠 ?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바쳐야 하는데두요?"

제가 대답 했습니다

" 글쎄,  그 위에 서는 것은 목표지 목적이 아니다,  내 생각엔 말이야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단다.

 네가 거기 가면 그것이 왜 목표인지 알게 돼 ! 또 그래야 하지 !  그렇지 않으면 넌 길을 잃게 돼, 거기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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