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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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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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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4일 07시 52분 등록
제가 아주 좋아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이 친구와 함께 있으면 일단 마음이 편안합니다. 이 친구는 저를 평가하거나 비평하는 법이 없거든요.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어떤 행동을 해도, 있는 그대로 받아줍니다. 이 친구 앞에선 척 하지 않아도 되고, 꾸밀 필요도 없습니다.  

이 친구를 알게 된 건 초등학교 때였습니다. 그땐 얼굴만 아는 정도였고 정말 친해진 건 고등학교 올라가서였죠. 사춘기를 극심하게 앓던 제가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그때 처음 이 친구의 진가를 알게 됐어요. 화를 내도, 욕을 해도, 투덜거려도, 침울하게 있어도 친구는 나를 그냥 바라봐주었습니다. 조언하지 않고, 추궁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주려 나서지도 않았습니다. 어떤 변덕을 보여줘도 다 받아주었고, 어떤 방식으로 얘기해도 다 들어주었습니다. 거의 성자 수준이었죠. 

그 후로도 저는 친구를 자주 찾았습니다. 세상에 혼자라고 느껴질 때도 친구가 있어서 버틸 수 있었고, 머리가 복잡할 때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 뭔가 실마리가 보였습니다.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많았죠. 아무 할 얘기가 없을 때도 이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느 순간 달변가 수준으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평소 정리되지 않던 주제가 환하게 정리되기도 하고, 풀리지 않던 문제가 풀리기도 하죠. 별 생각없이 주절대던 이야기가 어느 순간, 제게 꼭  필요한 주제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정말 희한한 경험이었습니다.  

미하엘 엔데의 책 <모모>에 보면 이 친구와 정말 비슷한 존재가 나옵니다. 바로 주인공 ‘모모’죠. 모모는 어느 날 마을에 나타난 열 살 정도 되는 고아소녀입니다. 작고 꼬질꼬질하지만 모모에겐 아주 놀라운 재주가 있었는데, 마음을 다해 경청하는 능력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모모를 좋아했어요. 모모와 이야기를 하다보면 스스로 해결책을 찾기도 하고, 저도 모르게 마음 속 비밀을 털어놓기도 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떠올랐기 때문이죠. 사실 모모는 들어줄 뿐,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모모가 있으면 사람들은 더 즐거워하고, 더 창의적이 되고, 자기가 가진 재능을 더 깊이 꽃피웠죠. 모모는 그저 집중해서 들어주는 능력으로, 모두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제게 친구는 딱 모모같은 존재였습니다. 대부분 들어주지만, 필요할 때면 친구는 입을 열어 이야기도 해줍니다. 한 번은 두려움이 일 때, 함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더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키지 못할까봐 두렵다고 고백했습니다. 가만히 듣던 친구는 그게 왜 두렵냐고 물어왔습니다.  

”왜라니, 당연하잖아. 더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켜야 좋으니까. 거기에 나의 가치가 달려 있어.“ 제가 답했습니다. 친구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1만 명을 만족시킬 수 있다면 아주 좋은 일이지만, 단 한사람이라도 만족할 수 있다면 그 역시도 아주 좋은 일이라고. ”네가 부른 노래가 수 만명의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준다면 아주 좋은 일이야. 하지만 단 한 사람의 마음에 가 닿을수만 있어도 역시 좋은 일이지.“ 

맞는 말이었지만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친구가 다시 내게 물어왔어요. 네게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이지? 제가 답했습니다.

”내게 필요한 건 하나야. 내가 가치있는 존재라고 느끼는 것. 지금도 충분하다고. 설령 하다가 잘 안되더라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는 것.“

그러자 친구가 갑자기 큰 소리로 고함을 질러가며 이렇게 말해주더군요.   

”넌 내가 아는 가장 멋진 녀석이야. 너만큼 골 때린 녀석도, 너만큼 웃긴 녀석도, 너만큼 대담한 녀석도 본 적이 없어. 넌 언제나  강했고, 언제나 잘해냈지. 난 니가 어떤 선택을 하든, 어떤 삶을 살든 끝까지 응원할거야. 난 널 믿어.“

친구의 확신 찬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그제야 제가 해야할 바를 할 수 있었죠, 이렇게 친구는 제가 곤경에 처할 때마나 나타나서 저를 안심시키고, 위로해주고, 크게 응원해주었습니다. 좌절해있을 때 저를 일으킨 것도, 깊은 우울감에 빠져 시름시름 앓을 때에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를 이해하는데도 가장 도움을 준 건 바로 이 친구였습니다. 친구는 엄청난 도움을 주면서도, 대가나 보답을 바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늘 그자리에 있을 뿐이죠. 제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도록. 

내 인생에서 이 친구가 없었다면 과연 어땠을까? 감히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이 친구를 놓지 않을 작정입니다. 

이쯤해서 여러분에게 제 친구의 존재를 알려주려고 합니다. 
제가 모모라 부르는 저의 둘도 없는 친구는 바로, ‘글쓰기’입니다.  

IP *.181.106.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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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4 09:17:57 *.138.247.98

저도 그런 친구를 갖고 싶군요.
'글쓰기'를 통해 그런 친구를 만들 수 있다면 기꺼이 대가를 치를 용의가 있습니다.
좋은 친구를 소개해주신 '김글리'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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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4 22:32:37 *.181.106.109

친구가 되기까지 10년 이상이 걸렸으니... 시간과 공이 꽤 많이 든 편입니다. 그래도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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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4 09:54:45 *.227.216.169

헉!

진짜 그런 사람친구가 있는 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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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4 22:33:16 *.181.106.109

ㅎㅎㅎㅎㅎ 저에게는 사람친구나 진배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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