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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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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15일 05시 54분 등록

아침에 해가 떠오르자 우리는 108 번의 절을 했습니다. 한 사람이 절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절을 하며 소원을 빌라 했습니다.

처음에는 지금 막 배운 절하는 법에 매여 그 자세를 익히느라 무엇을 소원해야할지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이윽고 절하는 동작이 제법 몸에 익숙해 진 다음에야 내가 무엇을 간절히 소망하는 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4 가지를 마음 속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절을 한 번 할 때 마다 한 가지씩 소원을 빌었습니다. 4 가지 소원이 차례로 되풀이 되었습니다.


절을 올리고 소원을 반복하는 동안 점점 뚜렷해져 가는 미래의 아름다운 장면들은 90 번 째의 절에 가까워 지자 조용히 뒤로 물러서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윽고 아무런 상념도 일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 동작 이 자세 이 몸의 움직임에 정성을 다하기 시작했습니다. 움직임 하나에 모든 마음을 쏟아 넣었습니다. 몸에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마지막 절을 올리고 일어났습니다.

마음에 한 가지 기쁜 깨달음이 물결 쳐 왔습니다. 그동안 목표에 대하여 오래 동안 가지고 있던 의문이 순식간에 풀어지는 듯 했습니다. 마음은 잔잔한 희열로 밝은 물결 위 햇살처럼 춤추었습니다.

꿈과 목표를 가지는 순간 우리는 응집하고 이루려고 하고 전력을 다하고 이윽고 그것이 되거나 그것을 이루게 됩니다. 성공이 내 손에 쥐어 집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종종 나는 목표만을 위해 달려 나가고, 삶의 주변를 넓게 보지 못하고, 이내 균형을 잃고 결국 목표에 갇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삶은 없고 오직 목표만 남는 사람들을 보며 그것이 성공인지 의심하곤 했습니다.

절은 하며 떠오른 구체적인 장면들은 내 비전이었고 꿈이었고 목표들이었습니다. 절을 거듭하고 기원을 거듭하다 보니 서서히 이 영상들이 사라지면서 오히려 나는 삶의 경이로움에 감동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절을 하고 있는 이 순간에 모든 정성을 다하고 싶었습니다. 순간 소원은 사라지고 이 시간의 감동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삶 자체를 통째로 껴안고 사랑하고 흠뻑 빠져드는 것, 바로 삶 그 자체에 대한 정성이야말로 내 꿈을 이루는 자세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목표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삶이 들어서는 그 순간, 그리하여 목표와 삶이 일치되는 그 자리.

‘가서 열심히 살아라. 네 짧고 짧은 인생을 아끼고 순간 마다 너를 바치며 촌음마다 살아 있음으로 살아라’ 그 목소리가 내 속에서 가득 차올랐습니다. 참 해일 같고 폭풍같은 아침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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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6.15 10:29:43 *.253.249.91
세렌데피티의 첫날밤은 무척이나 피곤햇던 모양이다. 아침햇살이 창가에 비치는 걸 인식치 못하고 깨어나지 못했으니...
밝은 햇살을 맞이하며 제일 처음 눈에 뛴 장면은 사부님의 절하는 모습이다. 내가 알고 있는바는 선생님은 절실하지는 않지만 카토릭신자인줄 알았는데 108배를 하는 모습이 신기하게 보였다. 그러나 절은 왜 했습니까?는 뭇지도 못했다.
108배는 불교의 유산이다. 특히 계신교에서는 우상숭배의 표상으로 일체 사물에 절을 못하게 한다. 석두스님의 은사께서 당신의 제자가 항시 삐딱하여 부처님께 3000배를 하라고 명했다. 절을 다마치고 나온 석두스님께 "부처님께서 너의 절을 잘 받아주시더냐?" 라고 질문하니 석두 왈 ~ 3000배 모두 저에게 한 절이였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합니다. 불가에서는 바로 너가 불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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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놈
2007.06.16 01:17:58 *.126.57.198
한 2년 전, 숲에 들어 마음이 가는 나무 아래서 눈을 감고 한 20여분 편안히 앉아 호흡의 흐름만을 느끼려고 애쓴 적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 처럼 '마음이 잔잔한 희열'로 가득차고 오로지 나무와 숲, 나아가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되는 느낌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합일의 경험이었습니다. 이후 저는 어떤 나무와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참 위험하고 또한 과학으로 설명해 내기 어려운 일입니다.
초아 선생님의 말씀처럼, 그 옛날 동양의 철학이 하늘과 땅(자연)과 나(사람)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거나, 하나임에서 출발한 까닭을 그 이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신의 존재를 믿기 시작하게 되었으며 신과 자연과 인간을 분리하기 시작한 서양의 사조가 얼마나 이 세상의 문명을 진보케 했는지, 또한 반면 얼마나 엔트로피의 증가를 초래하여 장기적 고통을 초래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선생님의 글이 참 좋았습니다. 가슴에 아주 잔잔하지만 깊은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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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6.16 11:47:16 *.72.153.12
저는 그날 108배 체험을 하면서, 처음부터 소원 빌라는 말을 무시하고, 그냥 했습니다.

언제 그렇게 진지하게 절이란 것을 해본 적이 없었죠. 그러는 동안, 미워했던 사람도 떠올라 그 사람 앞에 있는 듯, 미안해서 사과하고 절하고, 사랑한 사람, 고마운 사람.... 고맙다고 절하고.
미안하고, 고맙고. 그러다가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데, 엎드려서 울고 싶었습니다. 간신히 참고 절을 계속했죠.
여전히 미안하고 고맙고. 미움과 사랑과 미안함과 고마움이 마구 짬뽕이 되고. 그리고 모든 인연들이 고맙고... 또 미안하고.

어느새 108배 시간이 끝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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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
2007.06.16 13:33:23 *.227.204.115
오늘 사부님 글 너무 좋습니다. 사정없이 제 마음을 후벼팝니다.
108배에서 이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니 참으로 뛰어난 통찰력입니다. 목표지향적인 사람들이 일에서는 커다란 성취를 이루어내지만 삶의 영역에서는 구멍이 나 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이럴 때 다시 삶으로 돌아와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이윽고 삶에 흠뻑 빠져들 때, 마주치는 순간마다 마음을 내 놓을 때 삶이 충만해지고 또 목표에도 성큼 다가가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아, 삶과 목표는 그렇게 어울릴 수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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