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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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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22일 02시 55분 등록

‘1만 시간의 법칙’이나 ‘10년의 법칙’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여전히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타고난 재능과는 무관하게 한 분야에 일정한 노력을 기울이면 탁월한 성과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법칙들이 맞다 하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습니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자녀의 미래를 미리 설계해둔 부모에게서 태어나거나, 인생을 걸만한 대상을 어릴 때 발견한 운 좋은 소수와 경쟁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답이 나오질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계산이 통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 모양입니다. 소리꾼 장사익은 농부가 되기 싫어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은행원이 되고 싶어 상고에 입학한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보험회사에 들어갔습니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나온 그는 무역회사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하지만 역시 오래 머물지는 못했습니다. 사표를 내고 가구점에 취직했습니다. 그 후 독서실 운영도 해보고, 카센터에 취직도 해보았습니다. 그렇게 열네 번이나 직업을 바꿨습니다. 그런 그가 마흔 다섯이 되던 1993년, 생활 전선을 떠났습니다. 당시를 떠올리며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카센터에서 주차 일을 하며 지내다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지요. 여태까지 진정으로 노력하면서 살아왔는가? 죽을 힘을 다해 산 거는 아닌 것 같았어요. 앞으로 얼마나 살지 모르는데, 돈에 연연하지 않고 평소에 꿈꾸었던 삶을 딱 3년만 죽을 각오로 살아보자, 이렇게 작심한 거지요. 그래서 태평소를 배웠어요. 시켜만 주면 열심히 하겠다고 부탁해 친구 사물놀이패에 들어가 정말 죽을 둥 살 둥 열심히 했어요. 그렇게 살다 보니 어디선가 감춰져 있던 노래가 터져 나오는 겁니다.”

장사익은 놀라운 집중력으로 성과를 만들어내기 시작합니다. 1993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에 삽입된 태평소 연주로 세상에 자신을 알린 그는 그 이듬해 신촌에서 공연을 열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은 그를 안아주었습니다. 공연은 속된 말로 대박이 났습니다. 그 후 그는 사십오 년의 세월을 음악이 아닌 다른 것들로 허송한 것이 아깝다는 듯 작품들을 토해냈습니다.

감동적이지요? 마치 한편의 드라마처럼 극적입니다. 명치 저 아래 꾹꾹 눌러둔 열정이 금새 끓어올라 용솟음칠 것만 같습니다. 그가 그러했듯 꿈꾸는 삶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달리고 싶어집니다. 이쯤에서 그를 본받자는 그럴싸한 말로 편지를 마무리 짓고 싶습니다. 그런데요. 안타깝게도 현실은 사정이 다릅니다. 흥분한 가슴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아내와 아이들 얼굴이 떠오릅니다. 당장 다음 주면 해결해야 하는 대출이자 생각도 나네요.

한 쪽에선 계산기를 두드려보라며 겁을 주고, 또 한 쪽에선 전설 같은 무용담으로 기를 죽입니다. 저는 그 가운데 끼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우왕좌왕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제가 그리 밉지 않습니다. 아니, 도박을 하듯 모든 걸 내던지지도 못하지만, 계산기만 두드리다 지레 포기하지도 않는 제 자신이 오히려 안쓰럽고 사랑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을 이제는 믿기 때문입니다. 현실과 꿈을 모두 내려놓지 않으면 자연스레 삶은 고단해지지요. 그렇지만 그 뻐근한 피로감이 나쁘지 않습니다.

탁월함으로 향하는 길은 하나가 아니겠지요. 저는 오늘도 조금씩 읽고, 또 조금씩 씁니다. 그렇게 저는 계산기로는 설명할 수 없는 속도로 꿈에 다가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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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1.03.22 08:40:19 *.251.224.166
인생의 비의를 한 줄은 맛본듯^^  성숙하고 자신감있는 글이 참 좋네요.
특히 끝의 두 줄이 정말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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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
2011.03.22 16:45:14 *.131.184.182
누구나 자신만의 속도가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만의 속도를 찾는 것이 중요한거 같아요.왜냐하면 그래야 행복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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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규
2011.03.23 04:03:59 *.76.121.103
뻐근한 몸의 기지개를 펴고 이제 퇴근합니다. 
뻐근한 피로감. 저도 아주 좋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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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11.03.23 05:24:12 *.10.140.89
One step at a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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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3 10:31:13 *.190.114.131
생각의 속도에 편승한 당신을 응원해 봅니다..............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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