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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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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22일 06시 12분 등록

1999년 2월 터키 이스탄불,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윤기 선생님이 마르마라해(海)와 흑해 사이의 해변에 위치한 술집에 앉아 있었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던 그에게 ‘문득, 정말로 문득’, 그리스 신화의 영웅 이아손과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이올코스라는 나라의 왕손인 이아손은 아르고 원정대를 이끌고 흑해를 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난관을 뚫고 북방의 나라 콜키스까지 항해하여 금양모피(황금 양의 털가죽)를 고국으로 가져왔습니다.

신화시대의 그리스인들에게 흑해는 ‘거의 죽음의 바다’였습니다. 왜냐하면 흑해에 들어가려면 ‘쉼플레가데스’, 즉 ‘박치기하는 두 개의 바위섬’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두 바위섬은 흑해를 항해하는 배가 자신을 통과하는 순간 폭주기관차처럼 서로에게 달려와 박치기를 했습니다. 그러면 배는 여지없이 박살났습니다. 이아손은 금양모피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여러 난관에 직면하지만, 그 중에서도 아르고선(快速船)이 쉼플레가데스를 통과하는 장면은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에서 백미에 속합니다. 이아손은 그리스인 최초로 쉼플레가데스를 통과했고, 그 이후로 쉼플레가데스는 박치기를 멈췄다고 합니다.

당시 이윤기 선생님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책을 4권이나 쓰고 수십 권을 번역한 신화 전문가였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작업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이아손의 모험을 되새기면서 그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나의 책은 현장에서의 체험을 통하여 쓰였거나 번역된 것이 아니었다. 까만 활자만 잔뜩 찍혀 있는 나의 책은 터키의 ‘흐린 주점’만큼이나 어두컴컴했다. 컬러의 시대에 흑백 신화 책만 펴낸 것이다.” 그는 신화에 관한 많은 글을 쓰고 번역했지만 정작 신화의 현장 그리스를 직접 가본 적은 없었던 것입니다.

이윤기 선생님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자각했습니다. 신화의 현장에서 온 몸으로 신화를 만나고 탐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아손의 목적지가 콜키스였다면 선생님의 목적지는 그리스였고, 이아손의 목표가 금양모피였다면 선생님의 목표는 신화의 현장 방문과 사진 그리고 박물관의 유물 사진이었습니다. 그는 단단히 결심했습니다.
‘그렇다. 나도 나의 흑해를 건너자! 나도 나의 쉼플레가데스를 지나자! 나도 나의 금양모피를 수습해야 하지 않겠는가?’

1999년 7월 말, 선생님은 수개월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드디어 그리스로 떠났습니다. 그리스를 시작으로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로마까지 4개월 동안 그리스 신화의 현장과 박물관과 미술관을 구석구석 다니고 샅샅이 살폈습니다. 사실 선생님의 여행의 겉모습은 ‘참으로 초라’했습니다. 카메라 장비는 거의가 지인에게 빌린 것이었고, 비용을 아끼기 위해 값싼 호텔에 묵어야 했으며, 이동 수단은 가능한 대중교통을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험이 이아손이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 거듭나는 계기를 제공하고 새로운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이 여행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기반으로 여행 후 10년 동안 4권의 번역서 개정판을 내고 7권의 책을 새로 썼습니다. 여러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지금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 여행의 의미에 대해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나의 흑해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아손의 아르고호를 통과시킨 뒤부터 ‘박치기’를 그만둔 쉼플레가데스가 그렇듯이 이제 나의 쉼플레 가데스는 더 이상 나의 앞길을 가로막지 못한다. 나의 흑해를 향해 배우를 띄우기 시작하고부터 두려움과 망설임은 내게서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윤기 선생님의 이야기가 가슴 깊이 들어옵니다. 나 역시 나름의 ‘흑해’를 건너는 과정에 있고 험난한 ‘쉼플레가데스’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고 포기하고 싶습니다. 돌아갈 여력이 있을 때 돌아가야 한다는 유혹에 흔들립니다. 그런 내게 이윤기의 선생님의 말씀은 정신을 깨우는 죽비 소리 같습니다.

“먼 길을 가자면 높은 산도 넘고 깊은 물도 건너야 한다. 먼 바다를 항해하자면 풍랑도 만나고 암초도 만난다. 이 장애물들이 바로 개인의 흑해, 개인의 쉼플레가데스다.

이것이 두려워 길을 떠나지 못한다면, 난바다로 배를 띄우지 못한다면 우리 개개인에게 금양모피는 없다. 흑해와 쉼플레가데스는 누구에게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쉼플레가데스 사이를 지나고 우리의 흑해를 건너야 한다. 시작 없이, 모험 없이 손에 들어오는 ‘금양모피’가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가 넘어야 하는 산은 험악할 수 있고, 우리가 건너야 하는 강은 물살이 거칠 수도 있다. 우리가 건너야 하는 바다도 늘 잔잔하지는 않다. 하지만 명심하자. 잔잔한 바다는 결코 튼튼한 뱃사람을 길러내지 못한다. 신화적인 영웅들의 어깨에 무등을 타면 우리는 더 멀리 볼 수 있다. 내가 영웅 신화를 쓰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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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기 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 웅진지식하우스, 2010년
* 홍승완 트위터 : @SW2123

* 교육 안내
<늦지 않았다>의 저자이자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인 한명석 님이 글쓰기 강좌인 ‘글쓰기를 통한 삶의 혁명’을 진행합니다. 자신 안의 창조 본능을 깨우고 글쓰기 실력을 키우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프로그램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세요.

IP *.237.95.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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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2 09:18:17 *.13.10.209
이런~~~~~~~~지금까지 난 박살난 배 속에서

이미 죽어버린 내 썩은 살들을 수습하느라............

정작 금양모피는 바다에 던져버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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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2.22 14:11:48 *.237.95.227
새로운 금양모피를 찾아 열심히 항해하고 계시지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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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1.02.22 13:14:02 *.254.8.100
어릴 때 땅 따먹기하듯 조금씩 자기 영토를 넓혀가는 모습이 참으로 신선합니다.
거기에,
따로 부탁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필요를 짚어주는 너그러움까지 있으니,
'흑해'를 건너는 사람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강좌소개 고맙구요,
승완씨의 항해를 지켜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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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2.22 14:13:38 *.237.95.227
한 선생님, 커뮤니티에 강좌 소개글 올리실 때,
강좌 베너나 이미지 있으면 함께 올려주세요. 전에 그런 베너를 본 것 같은데...
그러면 마음편지에 강좌 소개할 때 베너나 이미지를 함께 넣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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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2 19:07:09 *.124.233.1
용기를 내어 흑해를 항해하는 형님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네요.
외롭고 힘든 길 거쳐 반드시 금양모피를 수습하시리라 믿습니다.
후배는 발 자취 따라 가겠습니다.
좋은 글 고마워요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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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1.02.23 12:36:16 *.237.95.227
경인아, 나 역시 그대의 멋진 모험에 박수를 보낸다.
함께 각자의 흑해와 쉼플레가데스를 넘자.
이 모험을 통해 우리 모두 금양모피를 수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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