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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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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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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2일 16시 10분 등록

지난 1월 한 달 동안 나는 스님들 동안거 하시듯 오두막에 콕 처박혀 밀린 숙제에 전념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마침 올 겨울이 유난히 춥고 눈도 많아서 오두막에 틀어박혀 있기에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숲에 몇 번의 눈이 쏟아졌고 추운 날씨 덕분에 쌓인 눈은 녹지를 않았으니 내려가는 일도, 이곳으로 올라오는 일도 쉽지 않은 겨울 시간이었습니다. 자연 왕래가 뜸하니 홀로 있기에 이보다 좋은 여건이 없는 한 달이었습니다. 작년보다 연료비가 두 배쯤 더 들어간 것을 빼면 참 좋은 겨울을 보낸 셈입니다.

 

이따금 눈 덮인 숲을 거닐며 즐거웠고, 뜨거운 아랫목에 배를 깔고 엎드려 수천 년 전의 선생과 책으로 만나는 일도 기뻤습니다. 겨울 오두막 생활의 재미 중에서는 겨우내 하루에 한 두 번씩 거실과 마루를 서성이면서 마당에 심어놓은 매화나무 꽃눈에 살 오르는 풍경을 보는 재미가 제일이었습니다. 매일같이 영하 14도는 기본일 만큼 추위의 끝이 보이지 않는 1월이었습니다. 하지만 매화나무 새 가지에 송송 맺힌 꽃눈은 그 추위 속에서도 제 살을 조금씩 조금씩 불리고 있었습니다. 어제 보고 오늘 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없으나, 일주일쯤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 차이가 분명했습니다.

 

사람들은 꽃을 보고서야 봄을 느끼는 일에 익숙합니다. 그래서 도시에서는 개나리나 목련의 꽃을 보며 봄을 확인하는지도 모릅니다. 모든 변화를 주로 결과로 인지하는 습관에 익숙해서 그 변화의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속에 존재하는 중첩의 시간과 노고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목련이나 개나리가 이른 봄에 제 꽃을 피우기 위해 이미 오래 전부터 감당한 노고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이 피운 꽃의 눈은 사실 이미 그 전해 여름철에 무성한 잎사귀들 틈에서 만들어지고 대서의 뜨거움과 상강의 찬 서리, 소한과 대한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조금씩 부풀어올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나는 마당의 매화나무가 제 눈부신 하얀 꽃 피우기까지 그가 감당한 오래된 준비와 노고를 고스란히 살피고 느낍니다. 그에게서 나는 봄이 겨울과 완전히 단절되어 찾아오는 것이 아님을 배웁니다. 봄은 늘 겨울과 함께 동거하다가 겨울이 사위어 소멸하는 지점에서 드러나는 것임을 분명하게 봅니다. 삶이 이와 다르지 않은 것을 자연 알게 됩니다. 정월 초하루, 그리고 이어지는 입춘을 맞으며 생각합니다. 우리 삶 역시 저 매화나무나 목련이나 개나리의 꽃눈과 다르지 않구나. 요즘 세상이 오직 다 자란 나무가 맺는 풍성한 열매만을 조망하고 기억하려 하지만, 모든 성장은 나무들의 방식처럼 시작과 진행과 완성 사이에 늘 고되고 고된 중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 자주 잊고 사는구나. 그대 삶의 고단함 속에도 봄의 꽃눈이 늘 함께 깃들어 있음을 잊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입춘의 날 크게 길한 기운 받으셔서 그대에게도 이제 곧 따스한 봄 스미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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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2 16:11:26 *.20.202.217
설을 쇠기 위해 노부모님 사시는 곳으로 떠납니다. 인터넷이 안되는 곳이라서 미리 글을 올리게 됩니다. 양해 있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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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녀석
2011.02.05 21:21:33 *.7.108.204
아름다운놈이라는 이름으로 메일을 받고 잠깐 놀랐습니다. 그 닉네임은 제가 언젠가 쓸려고 했던 이름이었거든요. 오늘 심학산둘레길을 걸으면서 봄이 이미와 있음을, 겨울과 봄이 단절되어 있지않음을 저도 보고말았습니다. 설날과 입춘이 하루차이라는 것이 신기했는데 용규님도 그러했군요. 이제 칩거마치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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