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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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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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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1일 08시 58분 등록

 얼마 전 세 명의 여인이 백오산방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한 계간 잡지의 겨울호에 실을 인물로 나를 인터뷰하겠다며 찾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중에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여인이 내게 물었습니다. 인터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대뜸 뜬금없이 날아온 질문이었습니다.

제게는 왜 종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까요?” “…………, 무슨 말씀인지?” 감을 잡지 못하는 내게 부연하는 그녀 말이 다른 여자들은 키스를 할 때 종소리가 들린다고 하는데, 나는 여태 해본 경험에서 단 한 번도 종소리를 듣지 못했거든요. 왜 그런 걸까요?” 참고로 그녀는 미혼이었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처음 만나는 내게 그런 질문으로 긴장을 깨는 걸 보니 이 사람 참 재미있는 사람이구나. 아니, 형식 따위에는 걸림이 없는 자유한 영혼을 가진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혹시 내가 산중에 살고 있다고 나를 모든 것에 통달한 도인으로 여기는 건가?’

하여튼 질문이 재미있고 진지해서 잠시 키스와 종소리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녀 말대로 그것이 여자들이 듣는 소리라면, 나는 남자여서 그 소리를 들어본 기억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다만 그 아득해지는 무아의 경지는 여러 차례 경험해 본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종소리가 들린다고 표현하는 것이겠구나 짐작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키스가 만드는 종소리는 첫 키스에 가까이 있는 기억일수록 더 강렬했던 것 같습니다. 한 눈에 내 마음을 빼앗아서 제어할 수 없는 본능으로 이끌렸던 그 순간순간들에서 나는 늘 (그녀가 표현하는) 종소리를 들었음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다시 가만 생각해보았습니다. 이 여자는 왜 그 황홀한 소리를 단 한번도 듣지 못해온 걸까?

어쨌든 자못 진지한 그녀의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아서 그 순간에 일어선 직관을 따라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키스를 머리로 하시는 모양이지요. 가슴과 몸이 먼저 뛰어들고, 그렇게 아래로부터 차오르는 황홀감이 머리를 무장해제시키는 것. 그것이 달콤한 키스의 정석 같은데, 당신은 머리부터 전율로 채워야 한다고 생각하나 보죠.”

나의 대답에 그녀는 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역시 말은 서로 깨우침을 나누기에는 공허한 수단입니다. 도끼질 잘 하는 법을 말로 일러보았자 몸을 써서 직접 그것을 익히고 기억하지 못하면 허빵인 것 같은 이치인 것이지요.

 

사실 숲으로 떠나온 이후 나는 자주 종소리를 듣습니다. 이제 할 기회가 많지 않아서 키스를 통해 종소리를 듣는 시간은 부실하지만, 다른 것에서 나는 더 많은 종소리를 듣습니다. 농사하는 시간에서도 듣고, 숲을 거니는 시간에서도 듣습니다. 이런 종소리는 아주 은은한 종소리지요. 키스만큼 강렬한 종소리를 만날 때는 사실 강의를 할 때입니다. 숲이 전하는 자연스러운 삶의 지혜를 듣고 싶어하는 분들을 만나 그들에게 숲의 비밀을 두서너 시간 강의할 때, 나는 여러 차례 아주 강렬한 종소리를 듣습니다.

 

쓸모 없는 도식화라는 점을 알지만, 여전히 머리로 종소리 잘 듣는 법을 이해해 보려는 사람을 위해 몇 가지 그 원칙을 정리해 봅니다. 첫째, 이끌릴 것. 그것을 온전히 좋아하여 그 대상에 이끌릴 것. 둘째, 늘 처음처럼 그 대상을 대할 것. 그리고 아낄 것. 셋째, 분별하지 말 것. 나 스스로 깊이 빠져들어 몸의 아래부터 채워나갈 것, 가슴을 채우고 자연스레 머리가 차오르도록 할 것. 상대가 반응하고 감응하는 것을 즐기며 더욱 더 그 대상을 구석구석 핥고 쓰다듬을 것. 온전히 그 순간에 헌신할 것! 그리하여 그대 삶에 날마다 종소리 울려 퍼지기 바랍니다.

IP *.20.20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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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화
2010.11.11 09:21:01 *.253.124.89
잘 읽었습니다.ㅎㅎㅎ
선생님 책 "숲에게 길을 묻다" 다 읽었습니다. 전라남도에서 독후감 공모전을 한다기에
선생님 책을 읽은 소감을 써 볼 계획입니다.
제가 저자를 만난 다음 읽은 최초의 책이기에  저에게는  소중한 책이죠^^
선생님이 옆에서 강의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던대요..
선생님, 목포 공공도서관에서 강의 요청 왔나요?
제가 강사 추천해달라기에 강력 추천 해드렸는데..
혹 오시게 되면 연락 주세요~
남도의 맛있는 밥을 한번 사겠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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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1 20:50:29 *.20.202.217
그날 숲에서 나눈 이야기 때문에 책을 읽으셨던 게군요.
고마운 일입니다.

그러잖아도 목포공공도서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12월에는 도서관의 다른 스케줄로 어려울 듯 하고,
해를 넘긴 어느 날 인연이 닿으면 내려가려 합니다.

목포에 계신가요? 아니면 광주에 계신가요?
전화번호를 책 표지 안쪽에 있는 메일로 보내주시면 그쪽 지역으로 내려갈 일 있을 때 함 뵙겠습니다.

독후감 공모전에 꼭 입상하시길... ^^
남도의 맛있는 밥 부담없이 얻어먹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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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수
2010.11.11 12:59:23 *.168.105.169
백오, 뭘 그런 걸 말로 설명할려고 그러시나? 종소리는 현장에서 직접 보여줘야쥐! 쯧쯧... 울 스님이 늘 하시는 말씀.
하지만 종소리를 듣고 난 후에도 종소리에 매달려 있어서는 안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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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1 20:53:07 *.20.202.217
그 이 귓전에 종소리 내가 울려줄 수도 없고... 허허.
말씀대로 그게 꼭 소리가 나야 하는 것도 아니고... 허허.

요즘은 다들 삶에 너무 많은 방정식을 적용하여 답을 찾으려 한다는 느낌이 크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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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미
2010.11.15 10:42:44 *.44.124.42

선생님, 어제 숲강의 감사 드립니다.
축복어린 시간 보내고 왔습니다.~

치유의 숲

숲에는 현자가 산다.

저마다 싹트는 마음을,

햇빛 찾아 줄기 내는 마음을,

꽃피워 유혹하는 마음을,

잎 떨어뜨려 바닥 덮는 마음을,

앙상한 가지로 눈감고 선 마음을,

투명한 손길로 다독이는 그.

숲속의 모든 생명은 제 운명을 견디며

제 몸에 간간히 놓였다 가는

그 투명한 손길을 기억하고 있다.

그렇기에 한 계절에 매달리지 않고

다음 계절의 도래를 미리 아는 것이다.

투명한 손길은 패인 상처에도 살며시 놓였다 가서

저마다 생명은 치유의 샘을 찾아낸다.

숲에서 사는 이는 투명한 손길이 스친

자리를 보듬다 스스로 숲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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