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내가 꾸미고 세운 뜻 중에는 우리 마을을 정보화마을로 만드는 것이 있었습니다. 매년 전국에서 서너 곳 정보화마을을 선정하여 정부가 3년간 총 3억 원의 예산을 지원해 줍니다. 동네사람들에게 몇 차례 설명을 하고 행정안전부에 사업 안을 제출했습니다. 운 좋게 대상마을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더 많은 주민들에게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급되고, 주민들의 정보화 능력 향상을 위한 마을 교육장도 만들게 됩니다. 마을의 공동수익 증대와 주민편의 및 복지 향상을 위한 사업도 추진할 것입니다. 이제 막 예산이 투입되기 시작했고, 시설공사도 시작되었습니다. 몇 명을 제외한 마을사람들은 아직 실감을 하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주민 개개인과 마을을 위해 그토록 큰 예산을 지원받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혹은 대다수 시골 어르신들에게는 개념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사업이어서 그런지도 모를 일입니다.

나는 90년대 초에 농업문제를 테마로 석사학위 논문을 썼습니다. 그때 농업과 농촌이 자본과 도시의 안정을 위해 정책적으로 희생당하게 되는 현대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됩니다. 근자에도 그러한 기조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다른 산업의 이익을 보호하거나 관철하기 위해 농업의 영역을 양보(?)하는 사례를 우리는 여러 차례 목격한 바 있습니다. 혹자는 농촌에는 눈 먼 돈이 많다고 말합니다. 그 말은 이러한 농업희생의 맥락에서 최소한의 농업보호를 위해 정부가 농촌과 농가를 위해 지원하는 다양한 예산을 두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어떤 이들이 그런 예산을 눈 먼 돈이라고 인식하게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대다수 농민들은 그런 예산이 있는지도 모르고 사는데, 몇몇의 사람들이 그 예산을 독식하던 모습을 보았거나 심지어 특정인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횡령하거나 유용하는 사례가 보도되면서 얻게 된 인식이겠지요. 귀농해서 몇 년 살아보니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작은 마을에도 하나의 작은 정치판이 존재합니다. 나의 짧은 견해로는 정치란 결국 무수한 욕망이 품고 있는 이해관계를 다루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이 민주적이고 합리적일 때 세상은 조금 더 살만하고 평화로운 곳이 됩니다. 그간 구조적으로 희생되어온 농촌의 자립도를 높이려고 투입한 예산이 비민주적이고 불합리하게 집행되어 온 측면이 있어서 혹자들에게 농촌은 ‘눈 먼 돈이 떠다니는 곳’으로 인식되어 온 것이겠지요.

혼자 있는 시간. 왕왕 나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왜 이 숲으로 왔는가? 어설픈 중처럼 다만 홀로 충만한 삶을 살자고 이곳에 와 있는가?’ 사실 마을 일을 꾸미고 그들 삶에 개입하면서 내 삶은 쫓기기 시작했습니다. 내 삶을 떠받치는 농사와 강의와 글 작업이라는 세 개의 기둥이 균형을 잃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토록 멀리하고 싶은 마을의 작은 정치판에 본의 없이 내가 거론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다시 묻게 됩니다. ‘나는 어쩌자고 그들의 삶에 개입하는가? 내 삶의 기둥을 흔들면서까지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이 작은 마을의 자립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농촌 자립의 척도는 도시를 바라 떠나는 이들이 적은 마을, 떠나갔던 이들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삶과 문화를 잇는 정도입니다. 농촌이 지닌 공동체적 삶의 가치가 복원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농촌의 자립은 어떻게 가능할까? 나는 이제 막 그 실험의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정치인과 정책결정자들은 농촌이 자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여전히 몇 푼 안되는 돈의 지원에서 찾습니다. 우리 사회 대부분이 여전히 그러하듯 사람들은 아직도 돈에서 답을 구합니다. 사실은 사람에게 답이 있음을, 시민 또는 주민의 의식과 서로의 헌신과 배려가 먼저임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대가 귀농이나 귀촌을 꿈꾸는 이라면 농촌을 피난처나 구도의 장소로 삼지 마세요. 그대가 품은 정의로움과 그대가 키워온 노련한 경험이 함께 오도록 하세요. 지금 농촌에 부족한 것은 바로 그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