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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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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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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6일 18시 13분 등록

샤미르는 저희 회사가 고용한 현지인 운전기사입니다. 아직 어린 26살이지만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 엄연한 가장입니다. 가족 관계를 묻는 제 질문에 아내와 딸, 그리고 고양이 두 마리가 있다며 수줍게 웃는 순수한 청년입니다. 그의 하루는 새벽 5시에 시작됩니다. 시내에 머물 수 있는 형편이 아니기에 버스로 2시간이 넘는 거리를 출퇴근합니다. 8시까지 차주의 집에 도착하려면 아침 시간은 늘 빠듯합니다. 차를 몰고 저희 사무실 사람들의 출근을 돕는 것으로 본격적인 그의 업무가 시작됩니다. 언제 차가 필요할지 모르기 때문에 하루 종일 차에서 전화를 기다립니다. 운전과 더불어 기다림 또한 그의 직업의 일부입니다.

프로젝트 초반에는 일이 많아서 퇴근 시간이 불규칙하지요. 자연스레 샤미르의 퇴근도 늦어질 수 밖에요. 늦은 시간 일을 마친 직원들을 집에 데려다 준 후 차를 몰고 차주의 집으로 갑니다. 그리고는 다시 버스로 2시간을 달려 집에 도착하면 자정이 가깝습니다. 피곤하겠죠? 휴일도 없이 일하는 샤미르의 월급은 대략 6,000루피입니다. 한화로 치면 15만원 정도인데요. 출퇴근 버스 비용은 따로 받지만 식사는 직접 해결해야 합니다. 덕분에 샤미르는 점심을 거른다고 하네요.

저는 세계 경제와 환율에 대해 그다지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라면 거한 저녁식사 한번에 써버릴 만한 돈으로 한 달 동안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마음을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물론 물가가 싸고 소비에 대한 유혹이 덜한 곳이긴 하지만 급여 이야기를 하는 샤미르의 얼굴에 묘한 아쉬움이 스치는 걸로 보아 넉넉한 형편이 아니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인도를 여행하면서 울지 않는 사람은 없어요.”라는 작가 류시화의 말처럼 이곳에 와서 살아보니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맨발로 빗속을 뚫고 무거운 짐을 나르는 예쁜 계집 아이의 해맑은 미소 앞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반라의 차림으로 건설 현장에서 땀 흘리는 인부의 한숨 앞에서, 저는 주제넘은 연민에 휩싸입니다. 말 그대로 ‘주제넘은’ 연민일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종교와 전통을 통해 체념을 지나 초월에 이른 듯 보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정작 제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샤미르의 ‘기다림’입니다. 자신의 의지로 시간과 내용을 결정할 수 없는 일, 누군가의 부름을 기다리며 쉽게 자리를 비울 수도 없는 그의 일이 내내 마음에 걸립니다. 그의 일에도 희망과 미래가 있는지 확신이 서질 않네요. 영어 공부라도 해보라고 충고하지만 이 친구, 그저 웃기만 할 뿐입니다.

하루하루 감사하는 삶을 사무치게 배우고 있습니다. 의식주와 관련된 부분이 그렇고요. 무탈하게 지나가는 평온한 하루가 또 그렇습니다. 거기에 더해 일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행운에 대해 생각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해오면서 수많은 불만과 불평을 토하게 만들었던 그 일이 요즘 새롭게 느껴집니다. 문제는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습니다. 무엇을 하던 탁월함으로 향하는 길은 열려있게 마련이니까요.

고마운 샤미르가 점심을 거르지 않을 수 있는 방법부터 찾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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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화
2010.12.07 09:08:17 *.253.124.89
마음이 무거워지네요..내가 너무 많이 쓰고, 많이 바라는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삶은 많이 소유하는게 아니라, 풍성하게 존재하는거라던 글이 생각납니다.
그런 삶이 되도록 살아가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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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
2010.12.07 16:01:03 *.92.218.2
종윤님의 글 참으로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샤미르가 점심을 맛있게 먹고 있는 것에 관한 글을 기다리고 있을게요.
아울러 더 많은 인도이야기를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중국의 지식인들도 인도의 사상가들과 교류하며, 인도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도 사상가들, 차태르지, 아시스 낸디의 책들이 중국에서 번역되어 나오고 있네요.
다음 주에는 호미 바바와 차크라바티가 중국에 온다고 하네요. 
우리도 인도를 제대로 알고 이해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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