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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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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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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21일 00시 08분 등록

매주 수요일 나는 하루 종일 학생이 됩니다. 2년 째 매주 수요일에 농업마이스터 대학에 다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 한 해는 자자산방을 짓는 일과 농사일, 글 쓰기와 강의, 마을 일 등의 일상을 병행하면서 주 일회 하루 종일 학생으로 지내는 일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공부를 좋아합니다. 항상 그 날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다시 열 아홉 살이 되어 대학을 선택한다면 나는 세상이 인정해주는 대학을 가기보다 차라리 이 대학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습니다.

 

4년 간의 과정으로 입학했지만 내년부터는 그 대학을 더 이상 다니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 친환경학과의 두 개 과정이 모두 폐강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입학 당시의 모집요강을 무시하고 정부는 1년에 30만원 정도로 예고했던 등록금을 120만원으로 인상한다고 합니다. 또한 애초 4년제로 학생을 모집했는데 중간에 학칙을 만들고 또 수정하여, 2년을 마친 뒤 희망자만을 대상으로 다시 2년 간의 심화과정을 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정부는 또한 이 과정을 마친 농업 마이스터들에게 주겠다던 다양한 정책적 특전도 슬그머니 감춰버렸습니다. 운영도 매끄럽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교수는 농민들의 열정을 충실히 담아낼 수 없는 부실한 강의를 일삼았고, 대학과 캠퍼스의 행정과 운영도 혼선과 아마추어리즘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2년간 농업 정책의 사생아로 전락해 버린 이 과정에 아주 많은 농민 학우들이 절망하여 떠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포함, 10여명의 학생은 끝까지 남았습니다. 그 이유는 시행착오가 주는 혼선이나 일관성이 결여된 정부 정책에 대한 배신감보다 공부가 즐거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갑자기 네 배쯤 오르는 등록금의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2년간 공부를 더 하겠다는 우리반의 학생은 9명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20명이 되지 않는 반은 폐강하겠다는 학칙을 일방 공표하고 우리 반을 폐강의 위기에 몰아 넣었습니다. 애초 모집요강을 믿고 입학한 우리는 캠퍼스장과 학장에게 수 차례 모집요강을 준수하여 남은 2년간 더 공부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고 요구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20명을 만들지 못하면 폐강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분양광고를 믿고 아파트를 계약하여 중도금까지 낸 입주예정자에게 중간에 분양가를 높이고 입주자를 더 모집하지 않는 한 입주가 어렵다는 주장을 하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차츰 학교를 없애려는 것이 변경된 정책의 의도가 아닐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간 우리 농민학생들은 농사철의 바쁜 사정을 감수하며 공부했고, 정책의 아마추어리즘과 학사운영의 미숙함을 감수하면서도 최대한 즐겁게 전문 농업인이 되고자 공부해왔습니다. 결코 쉬운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학생들의 아쉬움과 허탈함은 분노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정부의 농업교육정책을 믿고 입학한 몇몇 다른 지방 캠퍼스의 농민들은 소송을 제기한다고 하고, 다른 어느 지방의 학생들은 지방언론에 사태를 고발했다고 합니다.

 

고요하고 충만한 삶을 살겠다고 숲으로 떠나온 나는 이 문제로 고민이 많습니다. 문제 많은 과정의 공부를 그만두고 역시 저들에게 기대할 일이란 아무것도 없어! 그저 홀로 공부하며 자족하는 삶이 더 충만하지 않겠는가!’ 마음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 날이 많습니다. 한편 세상의 부당함에 눈감는 것이 과연 충만한 삶일까 고민하는 밤도 또한 많습니다. 농업이 국가 산업 전체에서 계륵이 된 지는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농민은 농자천하지대본이 아니라 농자천하지골치덩이로 비치고 있다는 것이 의식 있는 농민들의 생각입니다.

애초 애정을 갖고 정책을 입안한 자는 담당부서를 떠났고, 새로 부임한 이는 농민들을 골치덩이로 보는지 실망 혹은 배신감, 또는 분노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고등고시에 합격하여 국가의 정책을 세우는 직업에 있는 모든 사람은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합니다. 펜을 들어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도 신중해야 합니다. 때로 그 혼자의 펜이 비수가 되어 수많은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줄 수 있으니까요. 그대 사용하는 펜은 부디 이웃과 세상과 생명에 대한 사랑을 잉크로 묻혀 꾹꾹 눌러 쓰는 펜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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