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승완
  • 조회 수 3025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10년 9월 7일 02시 25분 등록

내가 환희를 느끼는 것은 너에게 가고 있다는 그 자체다. 마침내 너에게 닿아서가 아니라 너를 생각하며 걸어가는 그 자체가 나에겐 더없는 기쁨인 것이다.
- 이정하,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사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더불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게 그 사람은 ‘첫 사랑 그녀’이고, 그 장면은 그녀를 처음 만났던 순간입니다.

십대였던 여름의 어느 날, 햇살이 밝게 내리 쬐던 오후였습니다. 동네 골목길에서 한 소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의도적으로 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정말이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30m쯤 앞에 있던 그녀는 눈부셨습니다. 아마도 흰색 반바지에 같은 색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햇살에 눈이 부셨는지 찡그린 표정이었고, 저는 눈부신 그녀를 보며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첫사랑에 대한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만 이 장면만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살면서 문득문득 이 장면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러면 어느 새 미소 짓곤 합니다. 오랫동안 혼자 좋아하며 그녀를 보며 웃었고 또 울었습니다. 그녀가 내 마음의 중심에 자리 잡았기에 그녀는 또한 세상의 중심이기도 했습니다. 그때로 돌아가도 그녀를 사랑할 것 같습니다. 이뤄질 수 없음을 알아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결과가 뻔함에도 다시 시작해도 좋다고 느끼게 만드는 사랑, 어쩌면 그런 게 첫사랑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첫 사랑은 슬픔과 기쁨으로 혼색된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사랑이 슬픔인 것은 이 사랑이 이뤄지지 못하고, 더 잘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한 아쉬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이 기쁨인 이유는 그 사랑의 순수함과 그 사람에 대한 애틋함이 몇 개의 장면일지라도, 그 이후에는 느끼지 못한 마음으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첫 사랑은 내게 아픔과 희열을 함께 줬지만, 그 기억은 하나의 의미로, 몇 개의 장면으로, 그렇게 소중한 추억으로 살아 있습니다. 그녀는 그 장면들을 기억하지 못할 겁니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그런 의미로 남는다는 건, 그 사람보다 내게 더 소중한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나도 누군가의 첫 사랑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나 역시 첫 사랑 그녀처럼 그 누군가에게 그런 의미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없습니다. 그럴 수 없다면 그녀에게 아름다운 장면 하나로 기억되었으면 합니다.

사랑은 존재 그 자체로 빛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정하 시인의 가슴에 박혀 있다는 어떤 글이 내 가슴에도 박히는 오늘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비해 너무나 적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것에 비해 너무나 적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것에 비해 너무나 적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모습은 본래 우리의 모습보다 훨씬 적다."

sw20100907.gif

* 이정하 지음,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자음과모음, 1998년
* 이 책은 여러 차례 재출간(개정판) 되었고, 저는 초판을 읽었습니다.

* 홍승완 트위터 : @SW2123

IP *.255.183.127

프로필 이미지
나그네
2010.09.09 08:06:24 *.109.180.196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불끈 솓는군요. ^^
프로필 이미지
승완
2010.09.10 22:11:47 *.255.183.127
^_^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16 자기 탐색을 도와주는 책, <성격의 재발견> file [7] 승완 2010.10.05 3325
1015 비둘기의 목소리를 들으려면 [1] 부지깽이 2010.10.01 4271
1014 아픔, 신이 주는 성찰의 기회 [1] 김용규 2010.09.30 2796
1013 믿는대로 흘러간다 문요한 2010.09.29 3314
1012 <갈매기의 꿈>에서 배우는 헌신의 의미 file [2] 승완 2010.09.28 5853
1011 때로는 그저 결정을 내려야 한다 신종윤 2010.09.27 3247
1010 사랑하는 것을 아끼는 법 [1] 부지깽이 2010.09.24 3618
1009 성장의 궁극 file [3] 김용규 2010.09.23 2939
1008 사랑 없는 일은 공허하다 file [2] 승완 2010.09.21 3100
1007 친구가 되는 법 file [5] 신종윤 2010.09.20 2814
1006 그의 주검을 존중했더라면... [2] 부지깽이 2010.09.17 3079
1005 부러진 날개의 발견과 치유 file [4] 김용규 2010.09.16 3176
1004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유 [3] 문요한 2010.09.15 3480
1003 내면의 비범성을 표현하는 방법 file [2] 승완 2010.09.14 2898
1002 그 몸이 모두 남김없는 눈물되어 흐르는구나 [1] 부지깽이 2010.09.10 3399
1001 자자산방 file [14] 김용규 2010.09.08 3149
1000 당신의 실험일지에는 어떤 기록이 있습니까? [4] 문요한 2010.09.08 3033
999 그저 추울 때 부는 바람처럼 [1] 신종윤 2010.09.07 3117
» 그때로 돌아가도 그녀를 사랑할 것 같습니다 file [2] 승완 2010.09.07 3025
997 족제비는 정말 입으로 새끼를 낳을까 ? [6] 부지깽이 2010.09.03 37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