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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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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8일 23시 22분 등록

IMG_2156.jpg

청명해야 마땅한 절기이거늘 볕 만나기가 요즘 밤하늘 반딧불 보기만큼 힘듭니다. 비가 얼마나 잦고 심하게 퍼붓는지 산방으로 올라오는 길 여러 곳이 파여나가 보통 차로는 왕래가 어려운 정도입니다. 햇볕 한 줌 들 때마다 빨래를 해서 널어보지만 오늘로 널었던 빨래를 네 번이나 걷어서 다시 하고 또 널기를 반복했습니다.

 

비가 잦으니 산중의 일상도 늘어지기 쉽습니다. 삶이 처져서 이렇게는 안되겠다 싶은 날, 습관처럼 즐기는 기괴한 행동이 하나 있습니다. 홀딱 벗습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마당으로 나섭니다. 볕 좋은 날엔 샤워를 마친 뒤 수건 한 장 들고 데크 위에 서서 몸의 물기를 닦으며 젖은 머리를 텁니다. 부는 바람의 자유로움을 몸의 잔 털들이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벌거벗은 채로 의자에 앉아 책 몇 장 읽다가 들어오기도 하고 음악에 맞춰 몸을 맡겼다가 들어오기도 합니다. 폭우 대단하던 사나흘 전에는 다 벗은 채로 퍼붓는 빗속을 서성이다 들어왔습니다.

 

그대는 혹 다 벗고 자연에 서 있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아시는지요? 처음의 경계심을 넘고 찾아오는 그 자유함의 극치를 느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바람이면 바람대로, 햇살이면 햇살대로, 퍼붓는 비면 그 비 그대로 몸의 감각은 무방비함의 즐거움에 젖습니다. 무엇보다 자유롭습니다. 모든 억압이 몸으로부터 떨어져나가면서 구석구석 세포들이 열리는 느낌입니다. 1만년 전의 인간 유전자가 그러했듯, 우리의 몸과 마음이 본래 이렇게 자유롭고 거침없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그렇게 숲을 뛰노는 자유한 짐승들의 주파수대역과 같은 대역에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됩니다.

 

산방 생활이 어느덧 만 2년입니다. 누구나 원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내키는 대로 살아가기의 삶 속에서 가장 좋은 순간 중의 한 장면이 바로 위의 장면입니다. 나는 최근 이 자유로움의 행복과 충만함을 그대와 나누기 위한 공간 하나를 마련했습니다. 말 그대로 삶의 길 위에 함께 서있는 벗들을 위한 방입니다. 마을의 총각 목수들이 깎은 기둥과 보로 구조를 만들었고, 이 곳의 흙을 써서 손으로 찍고 말린 흙 벽돌로 벽체를 만들었습니다. 이 방 역시 창이 좋습니다. 너른 군자산을 그대로 품어 방으로 들이고 서산으로 향하는 햇살을 길게 머물게 할 작은 창도 마련해 두었습니다. 아담한 욕실도 하나 두었습니다. 나는 특히 나무를 지펴 방을 데울 아궁이 공간과 어우러지게 놓은 툇마루를 좋아합니다. 그 툇마루에 눕거나 앉아 책을 읽어도 좋고, 탁주 한 사발을 치고 빈대떡을 뜯어도 정말 좋습니다. 때로는 그곳에서 사랑을 나누어도 참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이 방을 자자산방(自恣山房)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내 오두막 전체의 일부이므로 그냥 백오산방의 사랑채로 부를 수도 있으나, 따로 그렇게 특별한 이름을 두고 싶었습니다. 자자(自恣)자기 마음대로 함혹은 승려들이 하안거를 마치며 자신이 지은 죄를 다른 승려들 앞에서 고백하고 참회하는 행사를 뜻하는 말입니다. 나는 그대를 이 방으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이 방에 머물며 그대도 나처럼 마음대로 살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라 권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자유로워지고 스스로 고백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그대 걷고 싶은 길 위에 당당하게 설 힘을 얻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자자산방이 늘어지고 지친 삶을 추스르는 공간이면 좋겠고, 그대 품은 이야기 글이나 그림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하는 공간이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자산방에 오면 스스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추운 계절에는 스스로 불을 지펴야 할 테고, 스스로 야채를 뜯고 음식을 하고, 스스로 정리를 하며 지내야 할 것입니다. 그대 오시는 날에는 나는 다만 그대의 자자(自恣)를 돕는 투명인간으로 있고 싶습니다. 그대 언제 다녀가시겠습니까?

IP *.20.20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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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0.09.09 03:53:06 *.197.63.182
조오타! 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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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니
2010.09.09 08:56:00 *.249.156.43
마음이 조용해지는 자자산방이네요...
지금은 중국에 있는데 이제 한국 갈 기회가 있으면 꼭 한번 자자산방에 들리고 싶네요.

언제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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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nda
2010.09.09 09:35:48 *.94.41.89

어느날.. 꼭 자자산방에 가고 싶습니다.

오늘 저의 소원목록에 추가했습니다. 소원이 이루어 지는 공간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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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건재
2010.09.09 10:04:05 *.253.157.159
형,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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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2010.09.09 13:18:51 *.30.254.21
6기 연구원 최우성 입니다.
꿈벗 소풍때 뵙고 인사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내년 봄 연구원 과정 끝내고
'기타' 어깨에 들러매고 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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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10.09.24 11:15:06 *.20.202.217
얼굴과 이름을 연결하지 못하는 장애가 제게 있습니다.
그래도 그때 뵈면 반갑게 기억을 찾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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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
2010.09.09 13:37:04 *.182.176.74
첫 느낌이 마치 저에게 보내진 초대장 같았습니다.^^
홀딱 벗는다는 글에 처음엔 어머나! 하다가, 곧 얼마나 좋을까 부럽고 궁금해졌습니다.
온전한 자유로움을 원하면서도 살짝 두려워진 제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한 번 다녀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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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화
2010.09.09 14:49:22 *.253.124.89
완전 부럽다~ 홀딱 벗고 자연과 함께,,저도 꼭 해볼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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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10.09.09 18:54:52 *.157.60.10
형, 왠지 글을 읽는 내내 미소가 지어지네요.
산으로 커튼을 치니 다른 인테리어는 필요 없겠구요,
자자 산방, 이름 참 좋네요. 코~자자 산방도 되구요.
정민이와 꼭 가겠습니다. 물론 부모님 허락은 안 받구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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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10.09.24 11:13:36 *.20.202.217
나 요즘 정민씨가 무섭다.
정민씨한테 진 빚을 갚아야 하는데 빚쟁이가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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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한
2010.09.10 09:03:13 *.41.37.43
축하합니다! 자자산방 이름 참 잘 달라붙네요.
백오산방, 자자산방. 몇년후 또 어떤모습일까, 어떻게 만들어 나가야 할까 참 기분좋은 상상입니다.
지난번 갔을때 보니 정말 산이랑 바다녀석 의젓함을 넘어 믿음직스럽게 자랐더라구요.
강아지들도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겠지요.
제 아이도 아내의 뱃속에서 9주째 잘 자라고 있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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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수
2010.09.13 16:36:59 *.168.105.111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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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10.09.24 11:11:52 *.20.202.217
이제 정말 어른이 되시는 거여! 자식은 그렇게 큰 선물이더라고구.
진심으로 축하드리네.
조만간 전부 한 번 모일 예정이고, 함께 산마늘도 심을까 하는데 시간 되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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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수
2010.09.13 16:27:56 *.168.105.111
소원대로 살고 있네요.
며칠전 절에 갔더니 울 스님도 용규씨처럼 지내고 계시더군요.
스님이 절을 더 깊은 산속으로 옮기셨거든요.
아침에 일어나서 태극권 3시간씩 하시고,
빗물받아서 샤워하시고....

절이 완성되어서 한가해지면 괴산에 놀러가겠습니다. 스님모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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