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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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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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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16일 00시 07분 등록
brokenwing.jpg

백오산방 마당에 매실나무 두 그루가 심겨 있습니다. 지난해와 올 봄 그들은 부실하게 꽃을 피웠습니다. 이 두 그루의 나무는 백오산방 입주를 기념하며 심은 나무들 중 하나입니다. 기념으로 나무를 심을 때는 거의 대부분 전정을 해야 합니다. 기념식수는 항상 어딘가로부터 나무를 옮겨와 새로운 곳에 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무를 이식할 때는 통상 원래의 뿌리 중에 일부를 잘라내어 분을 뜨게 됩니다. 이식 때 하는 전정은 나무가 본래 지녔던 뿌리를 잃었으니 그것에 맞추어 지상부의 가지를 잘라줌으로써 균형을 맞춰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나무는 보다 빨리 지상부와 지하부의 균형을 찾게 되기 때문입니다.

 

산방 마당의 매실나무 역시 이식 전정을 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것을 잃은 채 첫 겨울을 난 매실나무는 이듬해 봄 자신의 매화를 엉성하게 피웠습니다. 여름이 가고 다시 가을이 찾아왔을 때 나는 또 그 매실나무의 가지를 강하게 전정했습니다. 뿌리가 더 깊고 넓게 활착하기를 바랬기 때문입니다. 해가 바뀐 올 봄, 녀석은 역시 부실한 매화를 피웠습니다. 첫 해에 두 개의 매실을 얻었고, 올 봄 네 개의 매실을 얻었습니다. 두 해 동안 녀석은 억압 속에 있었던 셈입니다. 그래서 꽃과 열매도 적었습니다. 하지만 두 그루의 나무가 이번 여름을 나는 모습은 놀라웠습니다. 새롭게 뽑아 올리는 가지가 얼마나 힘차고 장한 지 마루를 온통 가리고 말 기세입니다. 저들이 마음껏 제 하늘을 열어가는 모습이 너무도 또렷한 형세입니다. 나무가 기쁨으로 가득한 한 해를 보내는 모습입니다.

 

수형을 잡고 장기적으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새롭게 뽑아 올린 저 가지들을 또 다시 잘라주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조급한 마음에 부합하지 않을 뿐이지, 나무는 스스로 균형을 찾아 저답게 꽃피우고 저다운 열매를 맺을 줄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사람도 비슷한 면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억압했던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만 있다면 사람 역시 마음껏 제 가지를 뽑아 올려 드디어 제 꼴을 향한 삶의 질주를 제 속도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억압하는 면이 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나는 그것을 지극히 원초적인 방법으로 알아냈습니다. 내게 그것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균형 추를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희로애락의 균형 추를 살핀다는 것은 내가 희로애락의 네 가지 감정선 중에서 어느 측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가를 헤아려 보는 것입니다. 예전의 나는 분노와 슬픔에 민감했습니다. 상대적으로 기쁨과 즐거움에 대한 표현은 늘 부러진 날개처럼 꺾여 있어 부실했습니다. 운전 중에 나오는 댄스뮤직을 들으면 온 몸을 들썩이는 나의 딸 녀석이 가진 그 즐거움을 누리는 감정선이 내게 있어서는 끊겨 있었습니다. 반가운 이를 보고도 기쁨을 드러내는 모습을 사용하지 못하는 편이었습니다.

 

매화나무가 한껏 자라는 모습을 보는 요즘 나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일상의 대부분이 평정의 상태면 부처일까? 그 고요한 충만이 삶의 대부분을 채워야 이 삶이 행복할까? 아니면 평정에 발 딛고 서서 기쁨과 분노와 슬픔과 즐거움을 시시각각 나답게 드러내며 사는 것이 더 행복할까? 나의 어느 결정적 시기를 억압으로 지배했던 과거와 만나 화해하고 나서 나는 부러진 날개를 상당 부분 치유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감정의 네 가지 축으로 드러나는 희로애락의 균형 추를 비교적 조화롭게 매만지며 살고 있습니다. 그대는 어떠신지요? 희로애락에 대한 반응에서 어떤 부분이 자유롭고 어떤 영역이 부자유한지요? 그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요? 혹시 어느 한 쪽 부러진 날개를 접고 비대칭의 여행을 계속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그러다가 평생 그렇게 늙고 시들어가는 것은 아닐지요?

IP *.20.20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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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0.09.16 07:56:25 *.36.210.149
그때 그때 꼴리는 대로 살면 균형일까 아닐까?

목이 매게 슬픈 날 슬프게 울고, 웃기는 날 찢어지게 활짝 웃고, 분노가 치미는 날 정당함을 위하여 끝까지 싸울 것을 다짐하며, 즐거운 날 혼자라도 느끼는 기쁨에 상처 받거나 외로워 하지 않는 일상이면 어떠리. 그것이 가식이 아닌 바에야. 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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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
2010.09.16 13:18:07 *.246.146.18
항상 나를 울렁이게 만드는 흰 까마귀의 글...
엄나무, 아카시 나무의 어린 시절을 지났으니 이제는 가시를 떨구어야 할 나이이건만 쉽지 않은데,
그대는 산방에 앉아 균형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어찌 보면 通! 하신 것 같기도 하고.
선선해지는데 자자산방에서 한껏 늘어지고도 싶지만 머네 멀어. 시간도 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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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화
2010.09.16 13:37:46 *.253.124.89
매실나무를 보면서 이런 걸 생각할 수도 있네요.. 나무는 우리사람들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자기식대로 자기시간대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늘리고 자신을 만들어 간다는 말씀. 저도 나무처럼 천천히 차근차근 내 걸음에 맞춰 저를 만들어가야겠습니다. 서두르지 말구요..저도 나무같은 사람이 되고싶습니다^^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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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민
2010.09.17 08:41:38 *.114.22.75
상상해 봅니다.
하늘을 온통 자기 영역으로 삼아 사방 팔방 가지를 뻗는 매실나무의 힘찬 움직임을.
그러나 그것은 애정어린 마음없이는 보이지 않는 모습임을.
속에서 끊임없이 끓어오르는 기운을 가지에 담아 뻗는 매실나무를.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혹 누구일까 생각되시면 2007인지 2008인지 적벽 봄소풍때 번외 참가했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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