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신종윤
  • 조회 수 2814
  • 댓글 수 5
  • 추천 수 0
2010년 9월 20일 05시 37분 등록

감리 역할을 맡은 컨설턴트들은 프로젝트가 가진 생태적인 위험 요소들을 조목조목 파고듭니다. 고객들은 당장 결과물을 달라고 야단이고요. 하도급업체들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를 않습니다. 이들 사이에 끼어서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짬짬이 현지 사무소로 쓸 건물도 알아봐야 하고, 가족들을 데리고 와서 살 집도 찾아봐야 합니다.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큰 프로젝트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았습니다. 당연히 기대감과 부담감이 절묘하게 오버랩 되고 있지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무엇 하나 놓칠 새라 신경이 곤두섭니다.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면 온몸이 노곤합니다. 할 일이 잔뜩 있지만 진도는 더딥니다.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골아 떨어지기 일쑤입니다. 이런 생활이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힘이 좀 드는군요.

혼자 멀리 인도로 오고 보니 참 많이 다릅니다. 먹는 음식과 잠자리가 그렇고요. 만나는 사람들과 하는 일이 또 그렇네요. 매일 같은 사무실에서 같은 사람들과 비슷한 일을 하던 지난 10년을 생각해보면 지금 제게 벌어지고 있는 일 하나하나가 새롭고 즐겁습니다. 하지만 문득 얼마 전까지 저를 감싸고 있던 안락함을 그리워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역시 변화는 쉽지 않네요.

매튜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인도 내 협력회사의 현장 대리인 정도라고 하면 맞겠네요. 호텔로 찾아오겠다고 전화를 했더군요. 긴장된 마음으로 필기구를 챙겨서 로비로 나섰습니다. 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면서 말이죠. 로비에 도착한 저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편안한 외출복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나타난 그는 8살짜리 아들, 죠셉과 함께였습니다.

산책을 나섰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공원이 있더군요. 저녁 무렵의 한가로움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로 천천히 걸었습니다. 산책을 마친 우리는 바닷가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해변을 따라 길게 늘어선 음식점 가운데 한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낯선 바닷가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곁들여 맥주를 한잔 들이키니 짜릿한 한숨이 쏟아집니다. 얼마쯤 지나자 바닷가를 따라 달리며 소리치는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엄마!~" 죠셉에게 물으니 '엄마'와 '아빠'라는 말은 우리 나라와 똑같다고 하네요. 신기하죠?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배우는 두 단어를 공유한다고 생각하니 이곳 사람들에게 마음이 기웁니다.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습니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려면 알 속의 새끼와 알 밖의 어미가 동시에 부리로 알을 쪼아야 한다는 뜻이지요. 큰 일을 하려면 언제나 타인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움을 받으려면 손을 내밀어야지요. 지나치게 예의를 차리는 사람과는 사귀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걸음 깊이 들어가 친구가 되는 것! 멀리 인도에서 동료를 넘어 친구가 되는 법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지난 주, 마음 편지를 보내지 못했습니다. 현지 인터넷 사정이 열악해서 메일 한 통 보내는 것도 쉽지가 않네요. 여러분의 이해를 구합니다.)

 sunset.jpg


IP *.181.3.226

프로필 이미지
2010.09.20 11:42:52 *.118.59.12
이번주가 추석 명절입니다. 선배야 소식 반갑네요..^^
송편드시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한가위 보름달과 함께 하세요.
건강하시고요^^
프로필 이미지
범해
2010.09.20 11:47:13 *.67.223.154
종윤씨.....
눈에서 멀어지니 마음으로 더 가까이 가야겠네.
잊지않고 편지 보내주어 고맙고....  그런데 인도에서 살아야하는 일이..점점 더 확실해지고 있나봐요.
공간의 변화는 활력을 주고 재미도 있지만.....자꾸 뒤돌아보게 만들기도 하지요.
추석엔 어디서 달을 보게되나요?
우리 동네에도 뜨는 바로 그 달을 볼 수 있나요?..... 어디에 있든 건강하게 종윤씨딥게 잘 지내기를 바랍니다.
프로필 이미지
은주
2010.09.20 19:34:36 *.42.252.67

나는 인도에 가서 나를 찾아 돌아왔다.

종윤이는 무엇을 얻어 돌아올까?

 

객지에서 가장 힘들고 외롭게 만드는 것은 건강을 잃을 때가 아닌가 싶어.

아프지 않게 자기 관리잘하도록 해. 물론 잘 하겠지만……

 

프로필 이미지
김명희
2010.09.21 14:43:59 *.92.203.54
신종윤님!
생각보다 일찍 건너가셨군요. 그런데 현지 사무실로 쓸 건물부터 알아봐야 한다니 완전히 <개척자>의 신분으로 가신 것이네요. 수고가 많으시겠습니다. 중국 못지 않게 거대한 시장 인도, 그곳에서의 새로운 삶에 신의 가호가 함께 있기를 기원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예종희
2010.09.21 15:24:14 *.199.3.133
종윤~` 잘지내지?

답장을 보냈더니 되돌아 오네.. 인터넷 상황이 많이 않좋은가봐..
항상 건강 잘돌보고 일상에서 승리하기를.. 

랭리 밴쿠버에서...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16 자기 탐색을 도와주는 책, <성격의 재발견> file [7] 승완 2010.10.05 3325
1015 비둘기의 목소리를 들으려면 [1] 부지깽이 2010.10.01 4271
1014 아픔, 신이 주는 성찰의 기회 [1] 김용규 2010.09.30 2796
1013 믿는대로 흘러간다 문요한 2010.09.29 3314
1012 <갈매기의 꿈>에서 배우는 헌신의 의미 file [2] 승완 2010.09.28 5853
1011 때로는 그저 결정을 내려야 한다 신종윤 2010.09.27 3248
1010 사랑하는 것을 아끼는 법 [1] 부지깽이 2010.09.24 3618
1009 성장의 궁극 file [3] 김용규 2010.09.23 2940
1008 사랑 없는 일은 공허하다 file [2] 승완 2010.09.21 3100
» 친구가 되는 법 file [5] 신종윤 2010.09.20 2814
1006 그의 주검을 존중했더라면... [2] 부지깽이 2010.09.17 3079
1005 부러진 날개의 발견과 치유 file [4] 김용규 2010.09.16 3176
1004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유 [3] 문요한 2010.09.15 3480
1003 내면의 비범성을 표현하는 방법 file [2] 승완 2010.09.14 2898
1002 그 몸이 모두 남김없는 눈물되어 흐르는구나 [1] 부지깽이 2010.09.10 3399
1001 자자산방 file [14] 김용규 2010.09.08 3149
1000 당신의 실험일지에는 어떤 기록이 있습니까? [4] 문요한 2010.09.08 3033
999 그저 추울 때 부는 바람처럼 [1] 신종윤 2010.09.07 3117
998 그때로 돌아가도 그녀를 사랑할 것 같습니다 file [2] 승완 2010.09.07 3026
997 족제비는 정말 입으로 새끼를 낳을까 ? [6] 부지깽이 2010.09.03 37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