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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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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21일 00시 31분 등록

“이 시대에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에게는 단 두 가지의 길이 있을 뿐이다.
창작을 하거나 아니면 살인을 하는 길!”

- 소설가 김 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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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에리히 프롬(1900~1980)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내가 삶을 창조할 수 없다면 파괴할 수가 있다. 삶을 파괴하는 것도 역시 나로 하여금 삶을 초월하게 하는 것이다.” 프롬은 인간에게는 피조물로 태어난 자신의 상태를 초월하기 위해 자기 삶을 적극적으로 형성하려는 창조적 활동의 욕구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만일 어떤 인간이 억압이나 방해로 인해 무언가를 창조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프롬은 좌절된 창조성의 대안이 바로 ‘파괴성(destructiveness)'이라고 보았습니다. 파괴성 역시 본질적으로 세계 참여의 의미가 담겨있음을 역설한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창조와 파괴 양자의 사이에서 어느 하나만을 선택할 수 있을 뿐 다른 선택은 있을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창조성과 파괴성! 과연 어느 것이 인간의 본성일까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끝없는 논쟁을 낳는 문제들은 어쩌면 둘 다 답이거나 둘 다 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극과 극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창조성과 파괴성의 문제 역시 어쩌면 꼬리는 하나에 머리가 둘 달린 뱀처럼 두 속성의 뿌리는 본시 하나일지 모릅니다. 저는 모든 창조성이 파괴성의 승화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지 않고, 모든 파괴성이 창조성의 좌절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삶을 통해 파괴성이 승화되어 얼마나 놀라운 창조로 이어지는지와 반대로 창조성이 짓눌렸을 때 사람이 얼마나 파괴적으로 변모하는지는 많은 예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인간의 창조성이란 단지 탄생의 수동성과 우연성을 극복하려는 보상적 기능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것은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생명활동의 본질이라 생각합니다. 무릇 생명체란 제 안에 자라나고 꽃 피우고 열매 맺고 퍼트리려는 근본적 속성을 가지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 창조적 본능이 가로막힐 때 그 본능의 에너지는 고스란히 파괴적 본능으로 더해집니다. 지금 무언가를 창조하는 과정에 있습니까? 만일 그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면 반대로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혹시 무언가를 파괴하고 있는 것일까?’ 그 대상은 자신일수도 혹은 자신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 2006. 11. 21 週 2회 '당신의 삶을 깨우는' 문요한의 Energy Plus [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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