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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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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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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16일 14시 07분 등록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 공항으로 달리는 택시 안에서 문득 깨달았습니다. 바다가 가까운 인도의 휴양도시에 머물면서도 바다 구경 한번 못했다는 서글픈 사실을 말입니다. 다행히도 공항으로 가는 길이 잠시 바닷가와 마주치는 덕에 기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5분의 여유를 얻었습니다. 몬순 기후 탓에 물이 맑지는 않았지만 짭조름한 파도 소리가 가슴을 시원하게 쓸어 내리는 듯하더군요.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아이가 다가왔습니다. 아이는 관광객을 상대로 기념품을 팔고 있었습니다. 파는 물건은 피리였습니다. 대나무와 비슷한 나무로 소박하게 만든 피리를 내밀며 아이는 20루피(1루피는 약 27원)라고 했습니다. 동남아 여행으로 단련된 제가 순순히 20루피를 주고 피리를 사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요. 곧바로 흥정에 돌입했습니다. 과감하게 절반을 후려쳤습니다. 10루피! 순간, 아이의 눈빛이 흔들리는 듯했습니다. 과했나 싶어서 조금 물러섰습니다. 2개에 30루피! 이 정도면 충분히 수긍할만하다고 스스로 흡족해하면서 말이죠.

다행히 아이도 새로운 조건에 응하더군요. 거래가 성사된 듯했습니다. 적어도 피리 2개 대신 30루피를 받은 아이의 얼굴에서 뭔가 잘못됐다는 불안이 감지되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아이는 제 영어를 잘못 알아들었던 모양입니다. 피리 2개를 달라고 했으니 당연히 40루피를 주겠거니 생각했던 거지요. 당황한 표정으로 허둥지둥 피리를 다시 달라고 하는 아이를 보자 덜컥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얄팍한 흥정의 언어로 순수한 마음에 상처를 낸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황급히 10루피를 더 주고는 택시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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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의 떨림을 따라 새로운 선택을 하겠다고 결심한 후, 속절없이 몇 주가 흘렀습니다. 솔직히 10년이나 머물던 자리이긴 하지만 제 몸 하나를 빼내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막상 멀리 인도로 갈 생각을 하니 고민할 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네요. 당장 집과 차부터 문제입니다. 그냥 두고 갈 수도 없고, 새 주인을 찾자니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비싼 운반비 때문에 세간들을 가지고 갈 수는 없는데, 보관료가 또 만만치 않네요. 하지만 이런 문제들이야 그저 조금 골치가 아플 뿐이지요. 진짜 문제는 회사 내에 있었습니다.

새로 발령을 받은 팀과 기존에 일하던 팀 사이에 생긴 묘한 힘 대결이 바로 그것입니다. 저를 보내는 입장에서는 인수인계가 충분히 이루어진 다음에 가기를 바랍니다. 당연하지요. 새 팀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와서 업무를 익히고 프로젝트를 준비해주길 기대합니다. 이 역시 당연합니다. 문제는 이 둘 사이에서 제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10년이나 해온 일을 잘 마무리하고 싶은 욕심과 새로운 일에 뛰어들어 멋지게 성공시키고픈 또 하나의 욕심이 강렬하게 충돌하고 있었습니다.

20루피짜리 피리를 2개 사면 40루피를 내야 합니다. 분명하지요. 적어도 순박한 인도 아이에게는 그렇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했으면 과거의 일은 마무리를 짓고 안녕을 고해야 합니다. 이 또한 분명합니다. 아름다운 이별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지만 때가 되었다면 단호해야 합니다. 어설픈 흥정으로는 상황을 개선할 수 없는 법입니다. 새로운 목표를 앞에 두고 자꾸만 뒤를 흘끔거려서는 달라질 수 없습니다. 변화할 수 없습니다. 이 편지는 여러분에게 보내는 제 마음인 동시에 스스로에게 거는 주술이기도 합니다. 달라지겠습니다.

바닷가에서 만났던 그 아이는 어찌 지내는지, 궁금하네요. 다음에 만나면 피리를 10개쯤 사야겠습니다. 마음 편지를 통해 인도산 피리 이벤트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기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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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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