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구본형
  • 조회 수 5316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06년 9월 8일 06시 42분 등록

요즘 며칠이야 말로 한국의 가을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날씨입니다. 이런 날은 도저히 방안에 그대로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인생에 대한 모독입니다. 이런 생각이 물밀듯 밀려오면, 나는 얼른 커다란 모자를 쓰고 밖으로 나옵니다. 나에게 작은 뜰이 하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가능한 만큼 모두 옷을 벗어 버립니다. 그리고 바람이 나를 스쳐가게 만듭니다. 햇빛을 내 몸으로 담아 보려 애를 씁니다. 책을 한 권 들고 나오 긴 하지만, 내가 그 책을 찾을 때는 그 한가한 무료함에 지칠 때 뿐입니다.

언젠가 어느 성당에서 신부님을 한 분 뵌 적이 있습니다. 배가 불룩하게 나온 신부님인데 참 좋은 분입니다. 그 분은 이런 날에는 창문을 열고 커튼을 걷고 햇빛이 최대한 방안으로 밀려들도록 해 둔답니다. 그리고 옷을 모두 벗고 방안을 어슬렁거립니다. 그러면 영혼이 얼마나 자유로워지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그 신부님 방에는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쓰여진 액자가 하나 책상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어떤 외국인 신부가 한국말로 개발새발 쓴 액자랍니다. 그 액자 속의 글귀와 발가벗고, 깊게 방안을 무찔러 들어오는 가을 햇빛 속을 천천히 걸어다니는 배불뚝이 신부님을 함께 연상하는 것은 참 재미있는 그림입니다. 나도 그 기분을 압니다. 나도 가끔 해보는 짓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햇빛이 꽝꽝 쏟아져 버리는 날에는 내 영혼이 어디 있는 지 물어 봐야 합니다. 너 어떻게 살래 물어 봐야 합니다. 그러다가 ‘냅 둬. 나 이대로 살래‘ 하고 외쳐야 합니다. 이렇게 좋은 날엔 여기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입니다.

내 살갗 한 쪽을 스쳐가는 태양의 입자 하나와 내가 만났다는 경이로움에 취하면 됩니다. 질문도 없고 대답도 없습니다. 존재만 있습니다. 이런 날엔 갑자기 칠흑 어둠 속에서 ’응애‘하고 햇살 속으로 쑥 태어난 기분입니다.

오늘은 걸치고 있던 모든 어두운 것들 다 집어 던지고 바람과 햇빛으로 몸을 씻는 날이면 좋겠습니다.
IP *.189.235.111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56 나의 영혼이 다시 빛날 때 [6] 문요한 2010.07.07 3649
955 소명에 헌신한 한 사람의 이야기 file [5] 승완 2010.07.06 3128
954 10년의 세월을 무슨 수로 버티나 [3] 신종윤 2010.07.05 3683
953 왜 제우스는 늘 여자의 뒤를 쫓아 다닐까 ? [1] 부지깽이 2010.07.02 4934
952 소용없는 것의 소용에 대하여 [1] 김용규 2010.07.01 2644
951 두 배 이상 관찰하라 [7] 문요한 2010.06.30 2748
950 외면의 지리학이 내면의 지리학과 하나가 되는 길 file [1] 승완 2010.06.29 2868
949 월드컵의 추억을 가슴에 묻으며 file [2] 신종윤 2010.06.28 2821
948 당신은 어디로 생각하오 ? [7] 부지깽이 2010.06.25 3275
947 삶이 웅덩이에 빠져 갇혔을 때 [3] 김용규 2010.06.24 2852
946 포기는 삶을 이어준다 [1] 문요한 2010.06.23 3212
945 나무는 겨울에도 자란다 file [4] 승완 2010.06.22 3204
944 관계를 위한 10년의 법칙 [4] 신종윤 2010.06.21 4516
943 금지된 것을 찾아 나서는 여행 [2] 부지깽이 2010.06.18 3336
942 평범함을 굴복시킨 그것 file [1] 김용규 2010.06.17 2661
941 상상속의 관중을 지워라 문요한 2010.06.16 5456
940 ‘산천과 사람, 스승과 제자의 원융(圓融)’ file [2] 승완 2010.06.15 2857
939 매도 알고 맞으면 덜 아프다 [2] 신종윤 2010.06.14 3555
938 잃어버린 구슬을 찾는 법 [5] [1] 부지깽이 2010.06.11 3930
937 넘어져보는 경험 file [12] 김용규 2010.06.10 3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