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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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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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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5일 13시 46분 등록

"주원 아빠, 콩나물이랑 두부 좀 사다 주세요."

타이밍도 참 절묘합니다. 하필이면 보고 있던 TV 프로그램이 막 재미있어지는 순간에 아내의 호출이 날아듭니다. 내키지 않지만 어쩌겠습니까? 가정의 평화가 중요하지요. 밥도 얻어 먹어야 하고요. 아내가 쥐어준 천 원짜리 몇 장을 움켜쥐고 주섬주섬 집을 나섭니다. 나이가 들어 독립하면 어머니의 잔심부름에서 해방될 거라고 굳게 믿었던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아내의 심부름에는 그나마 달콤했던 심부름 값도 없다는 현실이 서글픕니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자마자 작은 고민이 시작됩니다. 이유는 가게의 위치와 아파트 단지 출입구의 절묘한 배치 때문입니다. 오른쪽으로 가면 조금 멀리 돌아 정문을 통해서 가게에 가야 합니다. 통상적으로 사람이 다니도록 만들어놓은 넓은 길이지요. 왼쪽으로 가면 샛길이 나옵니다. 원래는 화단이었던 곳인데 사람들이 담을 넘어 다니면서 만들어진, 길 아닌 길입니다.

이사를 온 초기에는 당연히 오른쪽을 택했습니다. ‘군자는 큰 길로만 다닌다(君子大路行)’고 유식한 체까지 해가면서요.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다 보니까 슬그머니 꾀가 나더라는 겁니다. 하루는 큰맘 먹고 왼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제법 키가 큰 풀 사이로 흙 바닥이 드러난 샛길을 지나 담장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는 사람이 있는지 좌우를 살핀 후에 황급히 담을 넘었습니다. 막상 넘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더군요. 저는 그렇게 담을 넘기 시작했습니다.

한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기술과 지식을 익히는데 10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흔히들 ‘10년의 법칙’ 혹은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부르는 이론들이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이론들이 우리가 어릴 적부터 부모님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공부 열심히 하면 좋은 대학 간다’는 말과 별반 다를 것 없다는 점입니다. 사실 우리가 정말로 알고 싶은 것은 ‘10년을 견디면 성공한다’는 결론보다는 그 ‘10년을 잘 견뎌내는 실질적인 방법’이지요. 힘들고 고통스러운 하루를 수천 번 반복해야 하는 거라면 10년은 정말 긴 시간일 겁니다.

습관의 중요성은 여기서 빛납니다. 담을 넘는 행위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은 불과 2~3번의 시도 만에 사라집니다. 우리가 흔히 ‘시작이 반’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심리적 장벽을 뛰어넘는 것이 그만큼 힘들고, 또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처음에 마음을 먹고 담을 넘기까지가 어려웠지 막상 심리적 장벽을 허물고 담을 넘으면 그 다음부터는 거칠 것이 없습니다.

담까지 이르는 길목을 막고 있던 화단이라는 물리적 장애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길은 결국 사람이 많이 지나다닌 흔적입니다. 처음엔 길이 아닌 풀숲을 헤치고 걷는데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횟수가 거듭되어 앞을 가로막던 풀이 줄어들면 그만큼 필요한 에너지도 덩달아 줄어들게 됩니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이르러 기존의 방식보다 낮은 수준의 에너지만으로 새로운 방식을 따를 수 있게 되면, 그때 새로운 습관이 자리잡게 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짧습니다. 습관의 도움이 없다면 무슨 수로 10년을 버티시겠습니까?

담 넘어 두부 사온 것에 대한 변명치곤 너무 궁색했나요? 5살짜리 큰 아이가 얼른 자라서 심부름의 고통(?)을 분담해주길 간절한 마음으로 바래봅니다. 최소한 재미있는 TV 프로그램을 볼 때만이라도 말입니다.




*** 안내 1 ***

변경연 웹진, 'Change2010' 7월호가 나왔습니다. Change2010은 '1인 창조기업 전문 웹진'을 지향하고 있으며, 실험과 놀이 정신을 바탕으로 연구원과 꿈벗의 재능 기부를 통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여기를 누르시면 7월호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수고한 웹진 팀원들과 필진들에게 많은 축하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 안내 2 ***

변화경영연구소의 박승오, 홍승완 연구원이 진행하는 ‘나침반 프로그램’을 소개합니다. 20대의 갈림길에서 인생의 방향을 찾기 위한 자아탐색 프로그램입니다. 개인적으로 주변의 후배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프로그램입니다. 자세한 내용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IP *.96.1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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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7.05 23:43:50 *.131.127.50

차칸아빠네... ^^
눈에 보이는 담만 넘은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있는 담도 없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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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민
2010.07.07 09:25:31 *.114.22.75
님께서 가신, 그리고 넘은 담은 이제 길입니다. 다소 불편한 길. 편히 다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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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10.07.09 01:38:30 *.67.223.107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참 잘했어요.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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