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김용규
  • 조회 수 3410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10년 5월 13일 00시 00분 등록

분봉벌받기.jpg
분봉벌을 받고 있다. 토종벌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의 하나가 분봉하는 벌을 받아 앉히는 일이다.

요즘은 거의 종일 자리를 뜰 수가 없습니다. 오전 열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감나무 밭둑에 앉아 그들의 움직임을 주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정말 부지런합니다. 25cm 정사각형과 7cm의 높이를 가진 나무 상자 몇 개를 이어서 만들어준 그들의 집 내부를 들여다볼 수는 없습니다. 벌 상자 속에는 정육각형의 방들로 가득하고 방 안 대부분에는 꿀이나 양육중인 새끼벌, 혹은 차세대 여왕벌이 양육되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출입문은 벌들의 근면을 목격하기에 알맞은 장소입니다. 꿀 혹은 꽃가루를 가득 머금은 일벌들이 연신 들락거립니다. 외적을 지키는 경계병은 그 출입문 문턱에 앉아 완벽하게 경계를 섭니다.

 

꿀벌들은 딱 이 무렵 새로운 세대를 만들고 분가와 독립을 합니다. 벚꽃이 꽃비처럼 질 무렵, 그리고 산딸기가 숲의 온 바닥을 제 꽃으로 물들이기 시작할 무렵이면 어김없이 그들의 세대 확장이 시작됩니다. 나는 올해부터 본격적인 토종벌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때문에 새로운 집을 찾아 떠나는 여왕벌과 그들의 추종세력을 받아 빈 벌통에 앉히는 일은 1년 토종벌 농사 중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벌 한 통을 받아 앉혀 놓으면 대략 50만원에서 150만원을 수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작년부터 지켜온 6통의 벌과 4월 하순 새로 사온 7통의 벌을 합쳐 13통에서 시작했는데, 그 사이 21통으로 늘었습니다.

 

문제는 일주일에 두 세 번 외부 강의를 하는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하루에 보통 한 두 통의 벌이 분봉을 하는데, 홀로 살고 있으니 집을 비웠을 때 분봉(分蜂)을 하면 벌을 받을 수가 없고 그만큼 손실인 셈입니다. 어제도 강의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집을 나가 저녁에나 들어올 수 있는 나는 집을 떠나기 전 절박한 마음에 벌들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벌들아, 오늘 분봉하지 말고 내일 분봉하렴. 내일은 농업대학 수업도 가지 않고 너희들을 받을 테니, 그렇게 해주렴. 산 속에 가져다 놓은 다른 사람들의 빈 통으로 들어가면 가을에 너희들은 모든 꿀과 함께 목숨도 빼앗기고 말 거야. 너희들을 생명으로 대하는 나와 함께 사는 것이 낫지 않겠니?” 진심을 담아 그렇게 말을 건네고 강의 장소로 갔습니다.

 

분봉하는 벌들 대부분은 일단 벌통 주변의 적당한 나무에 앉습니다. 이때 농부가 그들을 받아서 새로운 벌통에 앉혀주지 않으면 미리 봐두었던 산 속의 빈 벌통이나 고목 같은 빈 나무 속, 바위 틈 등으로 떠나버립니다. 강의를 끝내고 서둘러 귀가했지만 시간은 이미 저녁 7시를 넘겼습니다. 혹시나 해서 분봉하는 벌들이 자주 앉는 느티나무 몇 그루를 둘러보았습니다. 역시 벌은 붙어 있지 않았습니다. 분봉이 없었던 것인지, 혹은 산으로 이미 떠난 뒤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어느새 점점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나무 앞에 서서 아쉬움 반, 걱정 반으로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거뭇한 한 무더기의 벌들이 미동도 하지 않고 높은 나뭇가지에 모여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절로 튀어나온 첫 마디는 이랬습니다. “고맙다. 벌들아. 정말 고맙다. 벌들아.”

 

후다닥 나무로 올라갔습니다. 빈 바가지를 대고 ~~ ~~, 함께 살자. 벌들아. 고맙다. 벌들아!”를 반복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벌들은 보통 알아서 바가지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어둠이 짙어질 때까지 그렇게 외치고 쓸어 담아보려 애썼지만, 벌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뭇가지를 흔들지 않아야 하고 또한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마네킹처럼 잡은 자세 때문에 땀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근육통도 점점 심해졌습니다. 배도 고팠습니다. 하는 수 없이 나무에서 내려왔습니다. 잠시 몸을 풀고 다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벌들에게 빌기 시작했습니다. “미안하다. 벌들아. 너희들이 얼마나 긴 시간을 이렇게 힘들게 붙어 있었겠니? 어쩔 수 없이 외출해야 했던 나를 이해하고 제발 들어가자. 미안하다. 벌들아. 그리고 기다려줘서 고맙다.” 진심을 담은 사과였습니다. 놀랍게도 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자 10여 분만에 모두 바가지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미리 준비해둔 빈 벌통에 그들을 조심스럽게 옮겨 담았습니다. 하늘엔 별이 총총 빛나고 있었습니다.

 

벌에게 말을 건네고 사과까지 하는 나를 그대는 이상하게 여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무수한 생명과 대등한 입장에서 살아보면 그대도 알게 될 것입니다. 때로 사람보다 말없는 생명들에게 감사와 사과의 힘이 더 잘 전달된다는 것을. 이런 경험 한 두 가지쯤 품고 살 수 있는 사람일 때 그도 이미 자연이 된 것임을 나는 압니다.

 

 

 

 

*** 안내 ***

<나의 방식으로 세상을 여는 법>의 저자인 박승오, 홍승완 연구원이 20대를 위한 ‘나침반 프로그램’ 진행합니다이 프로그램은 직업과 삶의 방향성을 정립하기 위한 자기탐색 프로그램입니다. 자세한 내용을 보시려면 아래 주소를 클릭하세요.

 

http://www.bhgoo.com/zbxe/276149

 

홍승완

- 경영 컨텐츠 전문가,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 kmc1976@naver.com / 010-4217-9451

- 트위터 계정 : @SW2123

- 괴짜들의 나침반 여행 : http://www.nachimban.com

- 변화경영연구소 : www.bhgoo.com

 

[저서]

* 나의 방식으로 세상을 여는 법(2009)

* 내 인생의 첫 책쓰기(2008)

*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는가(2008)

* 아름다운 혁명, 공익 비즈니스(2007)

* 구본형 아저씨, 착한 돈이 뭐에요?(2009)
IP *.229.156.10

프로필 이미지
백산
2010.05.13 22:10:13 *.7.250.40

자연을 닮아가네...
아닌 이미 일부가 된 거젰지?

올해는 낙엽이 지기 전에 그곳에 가고 싶네.
세월따라 
순리대로 살아가는 용규아우!
빛나던 눈이 늘 오늘처럼 새롭네....
아... 요샌, 왜 이렇게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지는지...


프로필 이미지
형산
2010.05.14 09:08:24 *.246.146.138
오래 전에 읽었던 '월든'을 다시 읽기 시작해서 오늘 아침에 마지막 장을 덮었다네.
예전에 바다 위에서 읽었을 때는 꽤나 지루하게 책장을 넘겼던 기억이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책도 어디로 가고 없어서 찾다 찾다 못 찾고 결국 새로 샀지.  --;

읽는 내내 흰까마귀 생각이 나더구만. ^^;
보기에 좋다, 그대 사는 모습. 샘 날 정도로...
위에 흰 산 성님도 왔다 갔네. 멀리 가시더니 더 자주 들어오시네 저 양반. ㅋㅋ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