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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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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15일 04시 10분 등록

이번 주에 어머니 모시고 캄보디아 시엠립에 다녀왔습니다. 감사일기를 쓰며 만든 행동  목록 중의 하나를 실천한 것입니다. 앙코르와트 유적지와 톤레삽 호수 수상마을을 돌아보는 4박 5일의 평이한 일정이었습니다. 여행이 직업인 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또 하나의 여행일 뿐이었지만 저의 어머니에게는 일생일대의 사건이라 할 만한 첫 해외여행이었습니다. 어떤 곳을 여행하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91세가 되도록 해외여행 한 번 해보지 않은 어머니에게 해외여행 경험을 선물하는 것이 이 여행의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91세, 국내도 아니고 국외를 여행하기엔 만만치 않은 나이입니다. 실제로 공항에서든 여행지에서든 저희 어머니 또래의 노인을 단 한 분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여행지에서 어머니는 세계 각지에서 온 젊은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어머니 말대로라면 '노인네를 우습게 아는 우리나라 젊은애들과는 다른' 반응을 여행지의 젊은이들은 보여주었습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그레잇’ ‘원더풀’을 연발하였고, 어머니를 안아주는 이도 많았습니다. 너무 오래 살아서 자식들에게 폐만 끼치고 있다,며 빨리 죽어야할텐데,를 입에 달고 사시는 어머니에게 이번 여행은 자신의 정체성을 뒤흔들게된 꽤나 특별한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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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롯해 자식들이 다들 자기 살기 바빠 혼자 살아오신 어머니 해외여행 한 번 시켜드리지 못했습니다. 좀 형편들이 나아져 여행을 시켜드리려고 보니 이제는 어머니 나이가 너무 드셔서 다들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겨울, 어머니를 모시게 된 것이 저에게는 행운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틀니가 흔들려서 음식을 씹을 수 없으시다는 어머니를 위해 임플란트를 해드리려고 한 달 잡고(어렵게 맘을 먹어야했습니다) 모셔왔는데, 생각보다 치료가 오래 걸려서 3개월을 저희 집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16살 봄에 어머니 품을 떠난 후 처음으로 그렇게 오랜 시간 의도치않게 어머니와 보낸 셈입니다. 몇 달을 바짝 붙어 지내며 어머니의 새로운 점을 많이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아는 것보다 에너지가 많은 분이었습니다. 혼자 집에 계신 것이 안쓰러워 웬만한 일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다녔는데 어머니는 차 타는 것을 여행으로 알고 즐기셨습니다.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따라나서시고 보이는 모든 것에 대해 '좋은 귀경 했다'며 감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차가 막힐 때 제가 졸린다고 보채면 높낮이가 불분명한 창들을 불러주기도 했습니다. 남편 일찍 여의고 할머니 시집살이를 한 마디 불평없이 견뎌내신 참하디 참한 어머니 안에 그런 노래가 숨어있을 줄 몰랐습니다. 나와 다르다 생각한 어머니 속에 제가 많이 있었습니다.


아무튼 구순 노인답지 않게 어머니의 건강상태는 장시간 비행기를 타도 무리없을 정도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그래서 일을 내기로 했습니다. 동네 주민센터에 가서 주민증을 새로 발급받고 사진관에 가서 여권 사진을 찍어 여권도 발급받았습니다. '이 나이에 무슨 해외여행이냐'며 손사레를 치던 어머니도 서서히 저의 열의에 물이 들어, 여행을 결정하시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악재가 등장했습니다. 어머니가 차 문에 손을 치어 제법 크게 다치신 것입니다. 병원에 다니며 손이 아물기를 기다리느라 보름 이상을 까먹어야 했습니다. 이제는 집에 가야 쓰겄다,는 어머니를 빨리 모시고 여행을 다녀와야하는데, 그러는 동안에 집안에 또 다른 우환이 생겼습니다. 큰 오빠 암이 재발해 폐암 말기라는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5년 전에 수술한 위암이 작년에 완치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터라 갑작스런 재발 소식이 믿겨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에게는 모두 알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오래전 둘째 오빠를 교통사고로 먼저 보낸 어머니가 얼마나 오랫동안 힘들어하셨는지를 모두 기억하고 있는지라, 큰 오빠 본인마저도 절대 어머니에게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그 때부터 제 고민은 시작되었습니다. 오빠가 아픈 걸 알면 어머니는 절대 여행을 가자고 하시지 않을 것이고 이번에 여행을 못하면 언제 다시 하시게 될지 장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빠가 회복되길 빌고 또 빌지만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머닌 모든 죄책감을 자신이 떠안고 그날부터 식음을 전폐하실 분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머니의 건강도 보장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입니다. 어머니 손을 간절히 잡는 순간이 저절로 늘어났습니다. 고민 끝에 언니와 상의를 했습니다. 오빠가 저런데 여행을 가도 될까, 일말의 불안을 떨칠 수 없는 나에게 언니는 그러니까 이번에 더욱 여행을 다녀와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언니의 지지가 하도 강력해 흔들리는 맘을 다잡고 계획대로 여행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많이 걷지 않는 평이한 코스로 5박 이내의 일정에,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과 바로 출발할 수 있는 상품을 고르다보니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가 선택되었습니다. 고맙게도 어머니가 믿고 의지하는 고모님도 제 설득에 넘어가주셔서 같이 여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출발을 기다리는 며칠 동안 어머니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설레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여행 간다니 솔직히 좀 걱정 되지?'

'아니, 하나도 걱정 안되여.'

'정말?'

'니가 가는데 뭐가 걱정여. 고모도 같이 가고.'


저에 대한 어머니의 신뢰가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정작 걱정에 사로잡힌 건 어머니가 아니라 저였습니다. 잘 감당하실 거라 믿고 일을 저질렀으면서도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지' 하는 염려가 자주 저를 엄습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오빠 걱정으로 어두워진 제 표정을 들킬까, 어머니 앞에서 수시로 과잉 모션으로 재롱을 떨어야했습니다.  


3일 전부터 여행 가방을 펼쳐놓고 옷장을 뒤져 어머니에게 어울릴 만한 저의 여름옷을 죄다 꺼냈습니다. 패션쇼를 열었습니다. '외국 사람들은 젖가슴이 훤히 드러나보이는 옷을 남의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입고 다닌다'는 나의 말에 충청도 보은 출신의 어머니는 '남새시럽다'면서도 목선이 훤히 드러나는 옷을 서슴지 않고 시도했습니다. 선글라스에 스카프, 챙이 넓은 모자까지 쓰고 벗기를 반복했습니다. 평소라면 절대 입지 않을 것들을 걸치며 어머니는 시종일관 즐거운 표정이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보며 우리 두 모녀는 오장육부가 틀어지도록 웃고 또 웃었습니다.


아무튼 우리 어머니, 편도 6시간의 비행을 잘 감당하시고, 음식에도 별 어려움을 겪지 않으셨습니다. 아침은 선택이 많은 호텔 뷔페에서, 점심과 저녁은 주로 한국식당에서 먹은 탓도 있지만 워낙 식성이 까다롭지 않으신 덕분입니다. 계단이 많고 넓은 앙코르와트 유적지 안에만 못들어가셨을 뿐, 다른 유적지는 툭툭이를 타고 다니며 로컬 가이드가 내내 옆에서 손을 잡아준 덕에 무리없이 여행을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여행 다녀온 게 믿기지가 않는다.'

다른 날과 다름없이 오늘 아침, 식사를 하시면서 어머니는 신기한 듯 말씀하셨습니다. 해외여행이, 다녀오기 전에는 엄청난 일처럼 여겨졌는데 다녀오니 별 게 아니라는 걸 아신 것입니다. 부산이나 제주도 다녀오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을 느끼신 것입니다.

'해외여행도 별 거 아니지?'

'그러게말여.'

'나 외국에 한달씩 나갔다와도 마찬가지 기분이야. 그러니 엄마는 이제부터 내 걱정 하지 마.'

'알았어.'

비행기 사고 소식이 잦으니 어머니는 일로 밖에 자주 나가는 막내딸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제 테이프 끊었으니 앞으로 자주 여행해야지.' 

'아서, 한 번이면 됐어. 창리(어머니 사시는 동네이름입니다)에 외국 댕겨온 사람 두 사람 밖에 없어. 자랑할 게 생겼으니 이제 나는 다시 안해도 돼.'

'이제 우리 엄마도 해외여행 해 본 할머니가 되었네.'

‘ㅎㅎ’

 

그나저나 어머니를 집에 모셔다 드려야하는데, 겁이 납니다. 제가 23일에 다시 해외에 나가야 합니다. 어머니를 더 모실래도 형편이 안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제가 더 모시고 있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빠 일을 영영 모르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모르게 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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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16 11:51:41 *.124.106.117

어머님이 예쁘십니다.  로이스님도 예쁘시고.. ^^;

어머님도 건강하시고, 오빠분도 하루빨리 쾌유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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