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승완
  • 조회 수 7722
  • 댓글 수 1
  • 추천 수 0
2012년 9월 25일 00시 01분 등록

로마의 캄피돌리오 광장(Piazza del Campidoglio)에서 나는 두 번 놀랐습니다. 이 광장에 오르기 위해서는 코르도나타(Cordonata)라는 돌계단을 거쳐야 합니다.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계단인데 모양이 특이합니다. 보통 계단은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위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사다리꼴로 보입니다. 그런데 ‘미켈란젤로의 계단’은 맨 아래 계단의 폭과 맨 위 것의 너비가 비슷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오르기 편해 보이지만 실제로 올라보면 꽤 높습니다. 이 계단 바로 옆에 산타 마리아 인 아라코엘리 성당(Santa Maria in Ara Coeli)에 오르는 계단이 있습니다. 코르도나타보다 아라코엘리 계단이 길고 가파르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두 계단의 길이가 동일하다고 합니다.

 

또 하나 신기한 점. 미켈란젤로의 계단 꼭대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계단이라기보다는 완만한 언덕처럼 보입니다. 두 경우 모두 원근법 파괴로 인한 착시효과입니다. 나는 궁금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왜 원근법을 파괴한 것일까?’

 

의문을 품고 캄피돌리오 광장에 들어서자, 이번에는 광장이 포근하게 나를 안아주는 느낌과 함께 편안함이 찾아왔습니다. 조금 전의 번잡한 로마의 느낌은 완전히 사라지고, 이곳에서 종일 앉아만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뭔가 다른 에너지장에 들어와 있는 듯했습니다. 광장의 바닥도 독특합니다. 바닥은 작은 사각형 형태의 쥐색 돌로 채워져 있는데 중간중간에 좁고 긴 사각형 모양의 흰색 돌을 삽입했습니다. 하나의 흰색 돌은 다른 흰색 돌과 연결되어 광장 곳곳으로 이어집니다. 나는 흰색 돌을 따라 천천히 걸었습니다. 좋았습니다. 광장에 처음 들어섰을 때보다 더욱 편안하고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는 사실을 아는 데서 오는 심리적인 효과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광장이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광장과 시에나의 캄포 광장과 함께 이탈리아의 3대 광장으로 꼽힌다는 명성도 한몫했을지도 모릅니다. 위대한 인물이 디자인하고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는 곳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러면 잘 알지 못해도 좋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죠. 다르게 생각하면 큰 기대만큼 실상이 따라주지 못하는 경우도 태반입니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할 가능성도 커집니다. 캄피돌리오 광장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건축가 정태남은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에서 캄피돌리오 “광장은 보면 볼수록 단순한 광장이 아니라 하나의 뛰어난 예술작품”이라고 평하면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광장으로 향하는 계단, 광장을 둘러싼 세 건물의 형태, 건물의 외벽 기둥, 곳곳의 높고 낮은 계단들, 광장의 바닥 포장 패턴 등 광장을 이루는 건축적 요소들이 전체적으로 통일감을 주면서도 조각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타당한 설명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늘에서 캄피돌리오 광장을 찍은 사진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걸을 때는 분명히 흰색돌이 직선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높은데서 보니 곡선으로 보입니다. 그냥 곡선도 아니고 기하학적인 형태입니다. 광장 바닥의 장식 패턴을 거북 등껍데기 무늬와 비슷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만 내게는 타원형 속에서 활짝 핀 꽃처럼 보였습니다. 전체적인 모습은 만다라(mandala) 문양입니다.

 

sw20120924_2.jpg sw20120924_3.jpg

 

미켈란젤로는 왜 이런 식으로 광장을 설계한 것일까요? 그가 인간의 시선이 아닌 신의 시선을 차용했다는 것이 내 추론입니다. 원근법은 인간이 보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가까운 것은 크게, 멀리 있는 것은 작게 보지만 절대자 신은 근경과 원경을 다르게 볼 이유가 없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의도적으로 원근법을 파괴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광장의 바닥도 같은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광장의 중심부에 별(태양) 문양을 배치하고 이와 비슷한 패턴으로 방사되어 나가는 만다라 패턴으로 바닥을 장식한 이유는 신성을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만다라는 완전한 균형과 전체성, 진실을 상징합니다. 또 하나, 높은 곳에서 봐야 바닥의 전체 문양을 온전히 볼 수 있도록 한 것은 신의 관점을 보여줍니다. 인간은 땅에 살고 신은 하늘에 삽니다. 위치가 다르니 보는 방향도 다릅니다. 미켈란젤로는 인간뿐만 아니라 신을 향한 경배로써 이 광장을 디자인한 것 같습니다. 내가 캄피돌리오 광장에서 안정감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던 이유도 미켈란젤로의 시선과 손길이 신의 그것을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인 듯합니다.

 

sw20120924_4.jpg

출처 : http://www.romadailynews.it

 

 sw20120924_1.jpg

* 정태남 저,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마로니에북스, 2008년

 

* 안내

<유쾌한 가족 레시피>의 저자 정예서 연구원이 <치유와 코칭의 백일간 글쓰기> 11기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본 과정은 100일간 매일 쓰기와 도서 리뷰, 오프 세미나 등 밀도 있고 풍성하게 진행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세요.

 

20120214-1.jpg

 

 

IP *.34.180.125

프로필 이미지
2012.09.27 03:05:56 *.49.128.164

승완님! 로마에서 보낸 편지군요.

이곳 코펜하겐에 오기 전에 축하의 인사는 전했지만 참석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입니다.

12월에 귀국하면 한 번 만나기로 해요.

오늘 마치 함께온 동료교사와 함께 미켈란젤로 이야기를 하면서 숙소로 돌아왔었어요.

그녀도 지난 주 로마를 여행하고 왔거든요.

미켈란젤의 시스타나 성당 천정벽화 이야기와 함께  예술과 신화,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를 함께나누었지요.

(그녀가 로마를 여행하는 동안 저는 북유럽을 여행했음0

 

늘 좋은 글 감사드리며

최정희 ^^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