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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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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4일 08시 42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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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도 알듯이 한때 나는 침묵을 힘들어한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와 마주한 자리에 오랫동안 침묵이 흐르면 나는 그 시간을 혐오했습니다. 아마 침묵 사이에는 단절이 놓여있다고 여겼나 봅니다. 침묵은 늘 서먹함이요 어색함의 반증으로 생각하는 강박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의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침묵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밭 일을 하는 시간에도, 숲을 거니는 시간에도, 운전을 하고 장이 서는 날 읍내를 거니는 시간에도, 그리고 산방 거실에 앉아 어떤 작업을 하는 시간에도 나는 항상 침묵에 휩싸여 있습니다. 전화가 걸려오지 않는 어떤 날은 온종일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지내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어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변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어떤 이는 내가 자신에게 소원해진 것이 아니냐는 서운함을 비추기도 합니다. 다소 말이 없어진 나를 만나면 그대도 서운한지요?

 

예전의 나처럼, 그대가 사람 사이를 흐르는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이라면 나는 그대를 5월과 6월의 숲으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5~6월의 숲에 들어 나무와 풀꽃이 어떻게 대화하고 사랑을 나누는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4월의 숲은 현란합니다. 4월에 피는 온갖 꽃들은 화려한 빛깔로 매개자를 유혹하는 소통법을 사용합니다. 4월의 대표주자인 진달래와 산벚과 복숭아 모두가 붉은 빛깔을 세워 매개자와 소통합니다. 그들이 말을 건네는 방식에는 나마저 눈을 빼앗기곤 합니다. 4, 그들에게서는 마치 현란한 언변술을 보는듯 합니다.

 

하지만 5~6월의 숲에서는 좀체 눈에 띄는 꽃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고작 흰빛의 꽃들만이 두드러질 뿐입니다. 찔레와 아카시가 그렇고, 층층나무와 말채나무도 그렇습니다. 때죽과 쪽동백도 마찬가지군요. 나머지 대부분의 꽃들은 짙어진 녹색에 묻혀 잘 드러나지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6월의 숲에 들면 나는 그들이 건네는 말에 홀려 홀라당 자주 마음을 빼앗기고 맙니다. 그렇다면 왜 화려함이 사그라진 5~6월의 숲에 마음마저 빼앗기게 되는 것일까요?

 

그대의 짐작이 맞습니다. 바로 향기 때문입니다. 5~6월의 숲은 향기로 소통하는 대화법을 익혔습니다. 이미 녹음이 짙어진 상태이므로 더 이상 현란함을 갖춘 대화로는 매개자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리기 어렵다는 것을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이지요. 주변의 소란을 뚫고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방법으로 그들은 향기를 선택한 것입니다.

 

꽃과 수분 매개자들의 대화는 항상 침묵이었습니다. 특히 복잡함이 커지는 시간이면 그들은 향기를 담은 침묵으로 그들과 소통해 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대화법이 향기를 담은 침묵임을 그들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나는 나의 침묵 속에도 5월의 숲을 닮은 그윽한 향기가 담겼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대화법! 그것으로 그대의 심장 한 복판을 헤집고 들어가 그대가 내게로 왔으면 좋겠습니다.

IP *.142.18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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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9.06.04 09:01:06 *.190.122.223
침묵에 대한 글을 읽고 침묵 할 수 없음이 아이러니 합니다.

오늘 우화한 장수풍뎅이를 자연으로 돌려 보냈습니다.

번데기가 되는 과정 그리고 3주간의 침묵..

그리고 중생의 과정을 통해서 무언가 말을 했지만
 
저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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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06.05 21:49:14 *.229.131.187
요즘은 장수풍뎅이가 참 귀한데...
아이가 그 우화과정을 보며 소중한 공부를 했겠군요.

녀석들은 참나무류를 좋아하는 것으로 압니다.
참나무가 많은 숲으로 돌아갔으면 좋겠군요.

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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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호
2009.06.04 11:54:02 *.236.246.10
매주 목요일을 기다렸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지 기다렸습니다. 이내 반가워졌고, 그 이야기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이야기가 내게 어떤 말을 걸어오는지 듣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늘 침묵 가운데 이루어진다는 것 역시 오래되어 알게 되었습니다. 말씀이 있기 전에 늘 침묵이 있었을테니까요. 보내주신 이야기 너무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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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06.05 21:53:10 *.229.131.187
첫 책을 내고 서점에 배포된 바로 다음 날,
독자로부터 편지를 받으면서 참 기쁘고 깜짝 놀랬더랬습니다.
이학호님은 그래서 제게 더욱 특별한 기억을 새겨두고 계십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이학호님같은 독자가 있어 생산하는 글에 스스로 준엄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 준엄한 요청이 있어 항상 건강한 긴장과 함께 살게 됩니다.
부족한 글, 늘 격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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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4 17:35:56 *.71.76.251

  침묵은 웅변보다 강하다는 말,  다시 생각나고. 오월이 더 좋아지고,  참 좋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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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06.05 21:55:17 *.229.131.187
앤 공주님.

여러 사람과 추진하시는 새로운 모색이 참 좋아보입니다.
내실있게 성장하는 모색이 되시기를 빕니다.

오월이 더 좋아지신다니 저도 참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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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2009.06.06 11:54:07 *.73.2.147
그저 미소가.. 미소가.. 절로 지어지네요..
침묵은 향기로 나누는 대화라는 말이 깊이 깊이 스며들어요..
아... 아.... 좋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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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분
2009.06.11 03:25:26 *.82.96.246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오며
전 제가 모든 말들에 용서를 빌고 싶습니다.
'위해서 한 말'이든
주제넘게 '가르치려 한 말'이든 모두 제가 지은 말이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입안이 쓰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 향기대화를 배울 수 있을까요?

사람의 침묵은 어디서 향기가 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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