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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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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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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5일 02시 43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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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남도의 거의 끝, 나는 지금 완도군의 아름다운 섬 청산도에 와있습니다. 이곳 청산도의 느리게 걷는 길을 따라 자라고 있는 식물들의 삶을 살피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그 식물들의 삶의 방식을 이곳 주민들의 삶의 방식과 견주어 보기 위해서입니다. 청산도가 조성하고 있는 ‘슬로길’은 아름다움이 깊습니다. 아니 그 길 어디에서건 마주칠 수 있는 모든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노라면 섬 전체에 배어 있는 평화가 내 가슴으로도 조용히 스며듭니다. 몇 년 살고 싶어지는 참 좋은 섬입니다.

청산도의 다랑이 들판에는 이미 봄입니다. 어제는 노란 갓 꽃을 만났고, 오늘은 큰개불알풀이 피운 푸른 빛 꽃과 하얀색 냉이 꽃을 보았습니다. 내 오두막 산길에 쌓여 아직 얼어 있는 눈길을 언제 떠나왔나 싶을 정도로 이곳에는 먼저 봄이 당도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봄이 도착하는 선후는 있을지언정 모든 숲에 봄이 먼저 오는 장소와 원리는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청산도의 숲길에서도, 그리고 나의 산중 오두막에서도 봄은 항상 스러진 풀들 아래에 먼저 깃드는 것 같습니다.

두 곳 모두 사윈 풀들을 들춰보면 그 아래 봄이 가장 먼저 당도한다는 증거들을 빼곡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산방에서는 개망초, 점나도나물, 꽃다지 같은 풀들이 겨우내 그 사윈 풀들을 집 삼아 새 봄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곳 역시 종류가 다를 뿐 스러진 잡초 더미 아래에 키 작은 풀들이 봄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 모양이 얼마나 앙증맞던지 이곳에서도 그곳에서도 나도 모르게 손끝으로 톡 건드려 인사를 건넸습니다. 저들은 지난해 이미 잎을 지운 잡초(?) 더미 아래에 싹을 틔워 자리를 잡고 겨울을 견뎠을 것입니다. 스러진 풀 더미를 이불 삼고 살아 있을 수 있어서, 그런 저들이 저렇게 살아있어서 해마다 봄은 어김없이 땅으로부터 찾아왔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름내 수많은 풀들을 잡초라 괄시하고, 가을이면 스러진 풀 더미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잡초라 부르는 이 풀들이 있어 말라버린 풀 더미가 생길 수 있고, 다시 사윈 풀 더미가 있어 이른 봄을 준비하는 키 작은 풀들을 위한 퇴비도 있고 보온덮개도 있게 됩니다. 쓸모없어 보이는 모든 게 그렇게 제자리에 있어야 이것은 다시 꿀벌이 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습니다. 다시 꿀벌이 있어야 열매가 있게 되고 또한 모든 생명의 삶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봄은 이렇듯 잡초 덕분에 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찬가지, 우리가 나 아닌 무수한 다른 존재가 있어야 내가 있을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 모든 곳의 봄이 속삭이는 듯 합니다. 그것이 자연의 원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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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나무처럼
2010.02.25 04:52:11 *.64.107.166
갑자기 풀어진 날씨에..
출근길에 지나는 공원의 새소리들이 요 몇일 요란해지더군요.
아마 그들도 봄을 맞이하기에 바쁜가 봅니다.

나와 너가 다르지 않고 혼자는 살 수 없지만 오직 한 몸 """제대로""" 사는 것 조차 쉬운일은 아닌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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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0.02.26 07:17:27 *.102.107.122
어젠 하루 종일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포근해진 날씨에 외투도 없이 돌아다녔습니다.
정말 봄이 가까이 왔나 봅니다.
잡초가 열어주는 봄,..
때가 되면 어김없이 온다는 것이 새삼 신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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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1 15:18:26 *.67.223.107
용규씨에게도 박남준 시인의 시 한수
섬진강가 악양에서 길어다가 펼쳐놓습니다.

 미루나무가 서있는 강 길을 걷는다.
강 건너 마을에 하나, 둘 흔들리며 내걸리는 불빛들,
흔들리는 것들도 저렇게 반짝일 수 있구나
그래 별빛, 흘러온 길들은 늘 그렇게 아득하다
어제였던가 그제였던가
그토록 나는 강건너의 불빛들을 그리워하며 살아왔던 것이구나

 - 박 시인의 시집 <적막>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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