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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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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27일 12시 32분 등록

<스페인 기행>은 소설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스페인을 다니며 보고 듣고 겪은 일의 기록, 즉 여행기입니다. 그는 <스페인 기행>에서 1부 ‘스페인’을 마무리하며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나는 눈을 감는다. 그러자 상상 속에서 스페인의 거칠고 북적이는 만화경 같은 장면들이 솟아나온다. 나는 내 기억 속에서 갑작스레 얻게 된 영혼의 새로운 여행의 보물들을 정리하려 하고 있다. 나는 마음속에 그것들을 수학처럼 정확하게 간직하고 싶다.”

 

카잔차키스가 스페인 여행을 통해 얻은 ‘영혼의 새로운 보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알람브라 궁전, 코르도바의 이슬람교 사원, 부르고스의 거대한 대성당, 머리에 재스민을 꽂은 여인들, 발렌시아의 오렌지 길, 엘 그레코의 멋진 그림들과 고야의 냉혹하고 소름끼치는 장면들……. 코르도바의 발코니에서 잠깐 보았다가 이내 사라진 한 여인, 마드리드의 큰 거리에서 보았던 8월 밤의 보름달, 알리가다의 잘 익은 대추야자나무 아래에서 처음으로 맞았던 따스한 비. 그리고 전 국토가 붉은 전선처럼 뻗쳐 잇는 스페인, 굵은 핏방울, 쓰라린 생각들, 순간의 강렬한 즐거움들, 웃음, 눈물. 특히 스페인에서의 마지막 날. 빛나는 황소와 웃고 있던 여인, 두 뿔 사이에 꽂힌 칼, 신과 하나가 되도록 신을 죽인 사람.’

 

스페인 여행 체험에 관한 그의 압축본은 성소부터 유적지, 예술가와 작품, 날씨와 자연, 일상 속의 사람과 문화, 의례와 상징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이것은 그의 내면이 그만큼 넓고 깊다는 것을, 그것을 반영한 시선 역시 그렇다는 점을 확인시켜줍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여행자는 자신이 보는 것을 보지만, 관광객은 보고 싶은 것과 보러 간 것만 봅니다. 여행자는 자기 발로 길을 헤집으며 모험 속으로 뛰어들고 자기 눈으로 풍경을 발견하려고 합니다. 그에 비해 관광객은 가능한 편하게 돌아다니며 멋진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기를 바랍니다. 카잔차키스는 관광객이 아닌 여행자의 정신을 가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스페인 기행>의 1부와 2부의 내용은 완전히 다릅니다. 1부가 찬란한 삶과 사랑, 그러니까 ‘여자와 포도주와 태양과 꽃’에 대한 이야기라면 ‘스페인 내전’을 다룬 2부는 죽음과 고통의 현장, 다시 말해 인간들 간의 투우처럼 상처와 피로 가득한 ‘야만적 드라마’입니다. 그럼에도 전쟁과 죽음은 삶과 생명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듯합니다. 카잔차키스는 말합니다.

 

“나는 전쟁이 인간의 모든 슬픔과 기쁨을 극도로 강화시킨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고 사소한 일 하나가 전쟁에 휩쓸린 사람에게는 강렬한 기쁨을 줄 수 있다. 그냥 앉아서 한가롭게 전쟁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 즉 위험에 처하지 않은 사람은 그런 것을 느낄 수 없다. 여자와 포도주와 태양과 꽃의 진정한 의미와 그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죽음으로 가는 길에 있는 사람만 느낄 수 있다.”

 

그는 <스페인 기행>의 2부 ‘죽음이여 만세!’를 시작하는 ‘작가 노트’에서 자기가 직접 보고 듣고 겪은 일의 기록에는 증언으로써의 책임이 따른다고 강조합니다. 즉, “그것은 역사적 기록이자 인류에 대한 기여로서 가치를 지닌다. 거짓말, 과장, 무익한 서정시 등 감정의 자잘한 것들은 그런 인간의 고통 앞에서는 부적절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페인 기행>은 유명한 소설가가 쓴 한 나라에 관한 여행기로만 읽히지 않습니다. 이 책은 낯선 땅과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넘어 자신의 영혼을 탐사하고 삶의 진실에 가 닿기 위한 투쟁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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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스 카잔차키스 저, 송병선 역, 스페인 기행, 열린책들,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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