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김용규
  • 조회 수 2813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09년 12월 3일 01시 06분 등록

IMG_0331.jpg

언젠가 고백했듯 나는 사람들에게 숲을 읽어주는 일이 즐겁습니다. 숲의 생명 저마다가, 그리고 서로가 연대하여 빚어내는 삶의 언어를 읽어내는 일. 그 일은 나와 청자(聽者)의 삶을 돌이켜 새롭게 세우게 하는 일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숲에서 청중 대부분은 즐거워합니다. 때로 감탄하고, 때로 숙연해 하다가 눈물을 짓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는 것이 참 행복한 일이구나 느끼는 날이 많습니다. 하지만, 더러 크게 교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만나게 됩니다. 그들 대부분은 나의 강의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깊이 소통하지 못하고 있음을 숲을 거닌 지 오래 되지 않아서 우리 서로는 느낄 수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그렇게 깊은 소통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닌 공통적 특징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사회적으로 대단히 자신감 넘치는 사람들이거나 지적 호기심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편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숲이라는 자연의 생명 현상이 빚어내는 언어를 가급적 수치화하여 설명할 때 눈을 반짝입니다. 나무와 풀의 생명 현상을 통해 삶의 이야기를 전하기 전에, 나무 이름 풀 이름을 먼저 말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학명이나 속명까지 곁들여서 설명해 주면 조금 더 이끌려 오는 느낌일 때도 많습니다. 이런 이들을 만나면 나는 사실 조금 안타깝습니다. 불완전 소통의 찜찜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그들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본래의 알맹이를 채 보여주지 못했다는 아쉬움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에 대해 생각해 왔습니다. 대강 파악한 원인은 이렇습니다. 나는 생태적 관계 속에서 생명체 모두가 갖는 소중함과 그 눈부신 하모니의 놀라운 힘을 전함으로써 우리 삶을 성찰하고 반성하여 새로운 삶을 살도록 돕고 싶은데, 그들은 오직 생명 현상을 세분화하여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지적인 욕망을 채우려는 의도에 보다 큰 비중을 두기 때문이지요. 한마디로 이들은 대개 머리를 소위 합리성으로 가득 채운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근현대가 만든 가장 강력한 텍스트가 합리성일 것입니다. 나 역시 근현대가 중시하는 효율성, 과학성, 구체성여기에 심취해 살도록 배워왔습니다. 보다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증거들을 찾아 사물과 현상의 이치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리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풍토 속에서 학교 공부를 이어온 것이지요. 이른바 스마트한 사람들과 숲을 거닐면서 내가 느끼는 불완전 소통의 상당한 원인은 바로 이 합리성의 텍스트로 숲을 읽으려는 습관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합리성을 추구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예컨대, ‘개미의 이사 행렬이 길면 비가 온다는 속담보다는 기압을 분석하여 수치로 강수확률을 나타낼 수 있게 되면서 각종 산업은 내일의 일기에 대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합리성 추구의 텍스트에 갇히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즉 머리(사고)에서 가슴(감성)을 거쳐 손(실천적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은 정말 불행한 일입니다. 나무와 풀의 이름과 쓰임을 많이 아는 데 그치고, 그들과 우리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임을 느끼지 못하는 현상이 만연한 사회. 그러한 사회에서는 효율적인 목재 생산과, 조경 및 약재 산업의 성장은 촉진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효율적으로 이용을 하다가 맞이하게 될 우리 자신과 생명계 전체의 미래는 불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삶을 회고하면서 머리에서 가슴까지 이르는 데 70년의 세월이 더 걸렸다고 말씀하신 분이 고 김수환 추기경이셨던가요? 머리에 갇히지 않고 가슴에 이른다는 것. 그것을 나는 나 아닌 것들의 처지에 내 가슴이 함께 머무는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내가 강물 밖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아는 것이요, 또한 나무와 풀에 무관하지 않은 존재임을 깨닫는 것. 해서 그들과 조화롭게 사는 삶을 실천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오늘은 숲에 앉아 가만히 생각합니다. 인류로서 혹은 하나의 개인으로서 더 많은 부와 지위와 편리와 안전을 얻고자 합리성의 텍스트로 성장을 추구한 세월을 이제 되돌아 보아야 하는 때에 이른 것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참된 성장을 위해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손으로 꼭 필요한 여행을 시작해야 하는 때에 이른 것이 아닐까?

IP *.229.158.43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16 그치지 않는 눈보라는 없다 [1] 문요한 2009.12.23 2954
815 직업 탐색에 유용한 직업 정보서, <한 권으로 보는 그림 직업 백과> file [2] 승완 2009.12.22 3471
814 삶을 다시 살 수 있다면 [5] 신종윤 2009.12.21 2951
813 무슨 일이든 모두 아는 체 하지 않기를 file [4] 부지깽이 2009.12.18 3421
812 새 길 위에 서는 이를 위한 희망의 필수조건 file [1] 김용규 2009.12.17 2998
811 약점을 극복하는 지혜 문요한 2009.12.16 3029
810 워렌 버핏, “인생은 눈덩이를 굴리는 것과 같다” file [1] 승완 2009.12.15 6274
809 땀 흘릴 기회가 인센티브다 신종윤 2009.12.14 3212
808 옷과 알몸 file [4] 부지깽이 2009.12.11 2976
807 묵묵함의 위대함 file [3] [1] 김용규 2009.12.10 4287
806 칠 할이면 만족! [1] 문요한 2009.12.09 2703
805 꽃마다 각각의 한창때가 오듯이, 사람도 활짝 피어나는 때가 반드시 온다 file [6] 승완 2009.12.08 3839
804 설국(雪國)에서의 하루 file [1] 신종윤 2009.12.07 2718
803 나와 살고 있는 더 좋은 나 file [2] 부지깽이 2009.12.04 2777
» 참된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여행 file 김용규 2009.12.03 2813
801 자신의 틀과 싸워라 문요한 2009.12.02 3047
800 삶의 질문에 답하라 file [12] 승완 2009.12.01 4266
799 모유가 분유보다 좋은 이유 [1] 신종윤 2009.11.30 4249
798 살아야할 인생은 바로 지금의 인생 file [2] 부지깽이 2009.11.27 3609
797 개에게서 그것을 배우다 file [3] 김용규 2009.11.26 28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