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김용규
  • 조회 수 4276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09년 11월 5일 00시 47분 등록

IMG_0571.jpg

토종 꿀벌의 집이 동안 모은 꿀로 가득 찼다. 육각형 칸을 채우기 위해 꿀벌은 8 송이의 꽃을 찾아 다녔을 것이다. 달콤한 꿀을 베어 물면 8 송이 꽃의 향기와 꿀벌의 고마움이 몸으로 들어오는 느낌이다.

 

입동을 닷새 앞둔 날. 이 숲에 첫 얼음이 얼었습니다. 심어둔 배추와 무우, 부추와 파, 그리고 숲 언저리의 산국과 감국을 빼고는 식물 대부분의 잎이 쇠했습니다. 자연은 모든 생명에게 이제 더 추워질 것을 예고하는 중입니다. 추워지면 산방은 분주해집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난방을 해결하는 일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철물점에서 새 톱을 하나 장만하고 고장난 톱도 수리를 맡겼습니다.

 

마지막 가을걷이도 했습니다. 심어두었던 야콘을 캤는데, 사흘쯤 묵혔다가 그 맛을 보려 합니다. 그리고 가장 마음 설레는 가을걷이도 했습니다. 어떤 가을걷이에 그토록 마음 설렜을까요? 그건 토종벌통에서 꿀을 따는 일이었습니다. 먼저 채취할 벌통을 두드려 그 소리를 들어보았습니다. 모두 꿀이 가득 찼을 때 나는 둔중한 소리를 냈습니다. 각각 여덟 켜의 벌집에서 네 켜를 수확하기로 했습니다. 나머지 네 켜는 꿀벌들이 겨울을 날 식량과 집으로 남겨두기로 했습니다.

 

형님을 모셔 함께 작업을 했습니다. 형님은 나와 함께 유년시절 아버지의 양봉 일을 도우며 배웠던 노하우를 살려 지금도 소규모 양봉을 하고 있습니다. 날이 추워진 탓인지 아니면 그들도 이 때가 되면 그것을 인간과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 탓인지, 벌들에게는 사나운 저항이 없었습니다. 한 켜 한 켜를 가득 채운 벌집을 커다란 함지박에 모은 뒤, 꿀이 가득 찬 벌집을 조금 떼어 입안 가득 넣었습니다. 달콤함 중에 이런 달콤함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첫 키스의 기억을 닮았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 달콤함으로 치면 그것의 경험을 넘어섭니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맛입니다.

 

꿀벌은 놀랍도록 정교한 정육면체의 방을 짓고 연결하여 그곳에 꿀을 채웁니다. 어떤 연구에 의하면 그 한 칸의 방에 꿀을 가득 채우기 위해 꿀벌들은 무려 8천 송이의 꽃을 오간다고 합니다. 그러니 벌꿀 한 조각을 베어 문 나의 혀는 8천 송이, 아니 수만 송이의 꽃이 품었을 그들 꿈의 향기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토록 형언할 수 없는 달콤함을 느끼고 절로 탄성을 쏟았을 것입니다.

 

토종 꿀 한 되(2Kg)의 가격은 최소 25만원부터 거래됩니다. 꿀을 뜨기도 전에 이 산방의 토종 꿀을 사겠다는 분들이 줄을 섰습니다. 얼마 되지 않는 꿀을 선착순으로 분양해 드리는 중입니다. 꿀을 가져 가시는 그 분들께 나는 이 꿀은 8천 송이의 꽃으로부터 받는 선물임을 기억하며 드시기 바란다. 그 꽃들의 메신저 역할을 해준 꿀벌들의 노고를 기억하며 음미하시기 바란다.’는 이야기를 건네드렸습니다.

 

나는 벌꿀을 팔아 올 한 해 고스란히 부채로 남은 농자재 비용을 갚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특수한 종이로 만들어진 화폐는 과연 어떤 가치를 담고 있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돈을 건네고 벌꿀 한 되를 받습니다. 화폐처럼 훌륭하게 교환가치를 대변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돈으로 우리가 꿀벌의 노고와 8천 송이 꽃들이 품은 꽃가루와 꿀과 향기도 살 수 있는 걸까요?

 

꿀벌들의 선물로 빚을 갚게 된 나는 그들의 겨울나기를 준비해 주고 있습니다. 벌통을 어루만지다가 문득 우리가 화폐의 교환가치 너머에 있는 생명들의 정직한 노동과 사랑과 꿈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쌀 한 톨에 담긴 농부의 땀과 꿈을 볼 수 있고, 그 한 톨의 쌀이 품었을 햇살과 바람과 빗물을 볼 수 있다면, 그런 눈을 모두가 조금씩 키울 수만 있다면, 세상은 조금 더 아름다워지겠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숲을 읽어주는 일을 하는 지금 내 삶을 나는 사랑합니다. 점점 더 교환가치에만 익숙해 가는 사람들에게 그 너머를 보는 마음을 키워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8천 송이 꽃으로부터 받은 선물에 보답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IP *.229.228.225

프로필 이미지
김미영
2009.11.05 06:36:37 *.31.156.126

가을 겉이에 바쁘신 일 손이, 그들의 겨울나기를 준비하시는 따뜻한 마음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생각케 하는 글, 고맙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정명윤
2009.11.05 11:16:28 *.20.125.86
사람에게 숲을 읽어주는 일~~~^^  너무 멋지네요...그리고 사랑하는 그일을 응원하며, 한잎 베어문 꿀처럼 달콤함을 읽고 갑니다. 제주에서......,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